brunch

달콩이와의 해후

여행일기

by 배심온

지인이 가족 여행을 가는 동안 강아지를 돌봐 줄 수 있느냐는 부탁을 해왔다.

강아지 이름은 달콩이.


전에 지인의 집에 놀러 갔을 때 달콩이는 내가 움직이기만 해도 짖어대고, 자기 몸에는 손도 못 대게 했었다. 우리 집에서 잘 지낼 수 있을지 우려했더니, 엄마가 없으면 그러지 않을 거라며 달콩이를 우리 집에 데려다 놓았다.


"달콩아 밥 먹자"


하루 세 번씩 누나 목소리로 녹음되어 있는 자동 배식기를 비롯해서 장난감이며 간식이며 배변판이며 달콩이 짐은 한 보따리였다. 산책하다가 슬쩍 달콩이 엄마는 사리지고, 이제 달콩이는 나를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집에서는 절대로 대소변을 보지 않는 달콩이를 위해 나는 좀 더 일찍 일어나서 출근 전에 달콩이와 아침산책을 해야 했고, 퇴근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달콩이를 산책시키는 거였다. 열흘 간 모임도 자제했다. 어쩔 수 없었던지 내가 좋았던지 아무튼 달콩이는 열흘 동안 내 옆에서 잠들고 일어났다. 달콩이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예전 우리 봄이 처럼 나를 반겨주었다.


열흘 간의 여행을 마친 지인은 다음날 데려가는 게 어떻겠냐는 나의 제안도 마다하고, 도착하는 날 밤늦게 달콩이를 데려갔다. 마지막 밤 산책을 함께하고는 달콩이와 헤어진 거다.

며칠은 허전했다. 우리 봄이가 떠난 지 육 개월쯤 지났을 때라, 강아지의 따뜻한 살결과 귀여운 눈동자, 따라다니는 모습들이 더욱 눈에 선했다.


달콩이가 자기 집에 가고 사 개월쯤 지난 어느 날, 눈이 펑펑 오던 날, 달콩이를 보러 지인의 집에 갔다. 나는 달콩이의 반응이 몹시 궁금했다. 나를 기억하기는 할는지 조바심이 났다. 달콩이네 집 앞에는 우리 봄이가 타고 다니던 유모차가 있어서 그걸 보면 또 가슴이 먹먹했다. 문이 열리고 인기척에 한번 짖던 달콩이는 나의 발로 다가와 냄새를 맡더니만 그냥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나는 달콩이를 안고 뒤로 자빠지듯 누워서 달콩이의 대환영 인사를 받아야 했다. 얼굴을 핣고 격하게 꼬리를 흔들며 숨을 헐떡거릴 정도로 반가워했다.


눈이 펑펑 내리는 창밖을 보며 달콩이 엄마와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달콩이는 내내 나의 무릎에 안겨 있었다. 나는 그날부터 달콩이 이모가 되었다.


친정을 다녀오면서 달콩이네 집에 들른다. 달콩이가 다리를 살짝 삐어서 조심해야 하는데, 나를 만나면 또 격하게 움직일까 걱정이 되어 나는 지인의 집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달콩이 엄마가 잠깐 안고 공용응접실로 데리고 나왔다. 달콩이는 멀리서 유심히 보더니 바로 알아보고 나에게 안긴다. 또다시 격하게 환영해 준다.

달콩이는 딱 열흘 간 자기를 돌봐준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 기특하고 감동스럽다. 얼굴을 쓰다듬고 달콩이 눈을 들여다보며 잠깐의 정을 나누고는 달콩이는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조심해야 할 다리를 조금 절룩거린다. 격한 만남의 후유증이다. 얼른 나아야 할 텐데.


달콩이와의 해후를 마치고서야 나는 지인과 대화를 시작한다.


2025. 5. 20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6화해바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