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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가 알아본 사람

여행일기

by 배심온

강아지들은 사람 말을 어디까지 알아들을까?


사람마다 두뇌능력에 차이가 있듯이 강아지들도 그럴 것이다. 말을 알아듣는 영리한 개도 있지만, 대부분은 반복되는 훈련이나 뉘앙스로 상황을 파악할 것이다. 강아지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도 많을 것이다.

나와 14년을 함께 했던 강아지, 봄이가 있었다. 봄이는 삼촌이라는 단어도 산책으로 알아듣고 좋아라 꼬리를 흔들고 몇 바퀴 회전을 하곤 했다. 스피치 종인 봄이는 상당히 까다로워, 식구 외에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 하얀 털을 만지게 허락하지 않았다.

평생 이발은 단 한번, 아빠의 강압으로 거의 털을 찝히다시피 흉한 모습으로 끝났다. 병원에서도 이발을 하려면 마취를 해야 가능할 정도니 봄이의 일생에 제대로 된 이발은 없었다.


개가 짖는 건 두렵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봄이는 낯선 사람에게는 막무가내로 짖어대고, 덩치가 자기보다 반도 안 되는 강아지를 만나도 꼬리를 내리고 도망가기 바쁜 겁쟁이였다.


아파트에서 살면서 혹시나 주위분들의 항의가 있으면 어쩌나 노심초사했었고, 불편한 점이 있었을 텐데도 너그러이 지나가 주신 이웃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컸다. 봄이가 나를 향해 짖는 경우는 딱 그때뿐이다.


출근한다고 나갔다가 잊은 게 있어서 다시 집안으로 들어올 때.


그때는 가차 없이 짖어댔다. 내가 나가기도 전에 시무룩해하며 사라지던 봄이가 다시 나타난 나에게는 야무지게 짖어대니, 왜 그런지 궁금했다. 마치 "한 번에 딱딱 못하나"라고 꾸짖는 것도 같고, "애써 보내줬더니 왜 또 나를 힘들게 해"라고 원망하는 것도 같았다.


봄이를 데리고 산책에 나서면 마주 오는 사람들의 입꼬리가 올라가는 걸 보게 된다. 봄이는 사람들을 미소 짓게 만든다. 봄이는 새하얀 얼굴에 새까만 눈동자와 새까만 콧방울, 그리고 그냥 있어도 웃는 듯한 입술을 가졌다.


살림을 도맡아 하며 직장생활을 하는 게 힘에 부쳐 몇 년간 집안일을 해주는 분의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심하게 낯을 가리는 봄이도 지속적인 만남으로 아주머니와 친해지게 되었다. 청소기를 돌릴 때는 그 소리를 무서워해 여전히 이리저리 도망치느라 바쁘지만.


봄이와 성내천을 산책하다가 아주머니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봄이는 아주머니를 알아보고는 꼬리를 치며 반가워했지만 아주머니는 난처한 기색이 역력했다. 지인들과 함께 걷다가 난데없이 강아지가 아는 척을 하니, 아주머니는 지인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곤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아주머니의 입장이 이해가 되어 얼른 봄이를 안고 제 갈길을 갔다.


봄이가 가족 외에 반갑게 알아챈 사람은 그분이 유일한데, 외면을 당하고 말았다.


봄이는 그 아주머니가 왜 그랬는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2025. 6.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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