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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여행일기

by 배심온

아버지의 고향은 황해도 신천군이다.


북한의 행정구역도 변해서 황해도는 황해남도와 북도로 나뉘고, 함경도와 평안도 사이를 량강도와 자강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구획해 놓았다.


황석영의 <손님>이라는 소설의 배경이 바로 황해도 신천군이다. 소설가는 기독교와 자본주의를 손님으로 간주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알베르트 까뮈의 소설에도 <손님>이 있다. 튀니지 옆나라 알제리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과정에서 이념과 실존의 갈등을 그린 소설이다. 외딴 학교의 교사가 주인공이다. 그는 아랍인 살인자를 법정까지 호송해야 하는 임무를 맡게 되는데, 아무도 없는 곳에서 살인자를 풀어준다. 죄인은 스스로 법정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고, 주인공 교사는 배신자로 몰린다는 짧은 소설이다.


나는 도시마다 숙소를 구해 손님으로 머물면서 여행을 하고 있다. 친정에는 아직 학교를 그만두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여행을 떠난 사실도 말하지 않았다. 그걸 알면 친정 엄마는 내가 귀국할 때까지 걱정하며 기다릴게 뻔하기 때문이다.

시칠리아의 카타니아에서 라구사로 이동하는 동안 나는 상상 속에서나 그려봤을 법한 멋지고도 생경한 풍경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만약 이곳에 혼자 떨어져 있게 되면 나는 어떻게 살게 될까?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아버지는 한국전쟁 통에 인민군으로 참전했다가 포로가 되었고, 포로 교환 시 남한에 남기를 선택하신 분이다. 금방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돌아갈 거라는 생각에 고향에서 가까운 강원도 바닷가에 정착하신 거다. 나중에 내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60이 넘어서야 아버지는 북한에서 결혼을 했었고 돌쟁이 딸 하나를 둔 채 전쟁에 끌려가게 되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셨다. 엄마뿐만 아니라 식구 누구도 그 사실로 아버지를 탓한 사람은 없었다. 언급을 삼갈 뿐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도 20년이 지났다. 이틀 후 다가오는 일요일이 아버지 기일이다.


아버지는 평생 손님으로 사신 건 아닐까?


영화 "해바라기"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안토니오는 전쟁 중에 잃었던 기억을 되찾아 고향 나폴리로 돌아온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이름의 아이를 낳고 새 삶을 살고 있는 전부인을 만난 후 다시 이별을 고하게 된다. 그리고 러시아행 기차에 오른다.


안토니오. 그가 내 아버지다.


2025.3.21. 밤이 늦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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