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불러내도 되나?

여행일기

by 배심온

핸드폰을 켜면 안 되었다. 소리를 내도 되고, 음악을 들어도 되지만.

반딧불이는 오직 빛에 반응을 하나보다.


오전에 비가 내린 탓에 달은 없고 습하여 반딧불이를 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날이란다.


관광객 20여 명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지선을 타고 맹그로브 나무 숲 속으로 계속 들어갔다. 배를 운전하는 사람과 한국인 가이드 한 명. 그리고 반딧불이를 불러내줄 라쟈. 이들이 반딧불이 투어를 진행하는 사람들이다.


숨을 죽이고 조용히 있어야 하나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반딧불이 많이 모여있는 곳에 가까이 가서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마니마니'를 외치면 된다는 것이다. '마니마니'는 말레이시아어로 '이리 와'라는 뜻이란다.


그럴 리가 있나.

반딧불이 사람 말을 알아들을 리가 없을 테니, 결국 반딧불이는 소리에 반응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단지 여행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좀 더 드라마틱한 상황을 만들기 위해 가이드가 만든 이벤트인 듯했다.


맹그로브 나무는 수중 식물로 그 뿌리가 물속으로 10m까지 뻗어 들어가 심해심층수를 머금고 있단다. 지구에 산소를 제공하는 소중한 자원이다.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지점을 벗어나 맹그로브 숲 속 깊숙이 들어가면서 인공조명은 사라지고 강과 숲 구별이 어려워질 정도로 어둠이 짙어진다.


강가의 맹그로브 나무에 반짝이는 것들이 보인다. 조금씩 움직이다가, 마니마니 외침에 우리가 탄 배 쪽으로 날아온다.

사람들 사이로, 어깨 위, 모자 위로도 내려앉는다. 두 손으로도 반딧불이를 잡을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의 움직임은 빠르지 않았고, 무해했다.


가이드는 모자나 옷으로 살짝 잡아서 구경한 후 소원을 빌고 놓아주라고 했다. 처음에는 잡는 것이 망설여졌으나 워낙 가까이 다가오는 데다가 그 빛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건지 궁금하여 두 손을 모아 잡아보았다. 내 두 손 안에 들어온 반딧불이는 그가 내뿜는 빛 때문에 형체를 알아볼 수는 없었다. 두 손을 벌리면 서두르지 않고 다시 날아간다.


이들이 왜 사람에게로 날아들까.


라샤의 춤 때문이었다.


말레이시아인들은 대체로 체구가 작았다. 키뿐만 아니라 몸집도 가늘다. 반딧불이 투어를 돕고 있는 라샤도 17살인데도 어린아이 정도의 작은 체구를 가졌다. 가이드는 라샤가 전생에 반딧불이였고, 지금도 반딧불이와 교감을 한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라샤의 손에는 반딧불이와 같은 빛을 내는 작은 조명기구가 들려있었다. 반딧불이가 많이 있을 것 같은 나무에 배가 다가가면서부터 라샤의 춤은 시작된다.


라샤는 마주 모은 두 손 안에 조명기구를 켜고 이리저리 팔을 휘저었다. 길게 뻗었던 두 팔을 몸 쪽으로 천천히 당겼다가 다시 뻗는 행동을 오른쪽 왼쪽 번갈아가며 반복했다. 선미에서 춤을 시작하다가 점차 배 후미까지 이동을 하면서 반딧불이를 배 쪽으로 유인하는 거였다. 라샤 두 손 안에서 빛나는 조명은 어둠 속에서 마치 커다란 반딧불이처럼 보였다.


아는지 모르는지 관광객들은 계속해서 마니마니를 외치며 날아드는 반딧불이에 환호했다. 그리고 두 손을 뻗쳐 허공의 반딧불이를 두 손에 담아 들여다보고는 각자의 소원을 빌었는지 어쨌는지, 빌 소원이 많았는지 잡고 또 잡고 한다. 다가오는 반딪불이를 저리 가라는 듯 손사래를 치는 친구는 왜 자꾸 잡냐고 나를 나무란다.


한 시간 정도 반딧불이 투어를 마치고 차량으로 이동하여 공항으로 향했다. 옆자석에 앉은 젊은이가 자기 주머니에 반딧불이가 있다며 가슴께 주머니를 열어보였다. 주머니 밖으로 나온 반딪불이는 버스 안에서도 몇 번 반짝이더니 금세 빛을 잃었다. 등받이에 붙은 반딧불이는 다리와 침이 없는 작은 모기처럼 생겼다. 버스에 실려가는 반딧불이는 다시 날 수 있을지, 다시 그 빛을 낼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반딪불이를 직접 본 적이 없다. 말레이시아 반딪불이는 우리나라 것보다 훨씬 작으며 0.4센티미터 정도 된단다. 마니마니 외침에 배로 날아드는 반딪불이는 모두 수컷이라고 한다. 그들이 날아오는 이유는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라는데, 아마도 라샤의 불빛 춤이 강력한 유혹이었나 보다.


저녁식사는 일몰을 감상할 수 있는 곳에서 했다. 하늘에 구름이 가득했으나 아무도 염려하지 않았다. 구름이 있든 없든 석양은 아름다웠고 다양한 풍경을 선사했으니까. 한 시간도 더 되는 자유시간 동안 관광객들은 사진 찍는데 여념이 없다. 석양이 반영되도록 만들어놓은 작은 못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린다. 정확한 대칭을 이루도록 이것저것 훈수를 두던 랴샤 손에는 어느덧 관광객들의 핸드폰이 들려있다. 라샤가 찍은 사진을 보고 너도나도 라샤에게 핸드폰을 맡겨 인생샷을 건진다. 해가 지고 반딧불이 투어를 시작할 때 우리에게 반딧불이를 불러내준 이가 바로 그 카메라맨 라샤였다.


'개똥벌레'. '나는 반딧불' 등 투어에 어울릴 만한 음악까지 곁들여 하룻밤 낭만적인 체험을 했지만, 계속해서 의문은 남는다.


우리가 반딧불이를 불러내도 되는가?


2025.6. 19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03화열무는 왜 열무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