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기
일상에 활기를 넣는 방법으로 나는 꽤 오랫동안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삼고 있다.
직장생활을 했으니 퇴근 후, 일주일에 한 번씩 백화점의 문화센터에서 배움을 이어갔다.
중간중간 공백도 있었지만, 그 세월도 20년 가까이 된다. 이제 직장을 그만두고 나니, 취미생활에 더 집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고, 그동안 그걸 놓지 않고 끌고 온 자신에게 잘했다고 토닥이고 싶어진다.
전공과 관계없이 타고난 소질이 있었던 건 아니다 보니, 세월이 길다 하여 특별히 능력이 생긴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세월이 그냥 흘러온 건 아니라는 생각은 하게 된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라 캔버스만 들여다보고 있거나, 선생님의 손길만 기다리던 옛날과는 달리, 과감하게 스스로 표현해 볼 수 있는 용기도 생겼고, 과거에는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도 조금씩 해결이 가능해지니, 나름 뿌듯함도 느낀다.
가끔 회의가 들 때도 있다.
왜 그림을 그리는 가에 대해.
늘어나는 캔버스를 보면서 전시회라도 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걸 팔면 가격을 얼마로 매길까 쓸데없는 고민을 하기도 한다. 오래 앉아있다 보면 허리도 아프고, 그림 도구들을 펼치고 치우는 일은 번거롭다. 그림을 그릴 별도의 공간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즐겁다. 다섯 시간, 여섯 시간도 그냥 앉아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어떤 잡념도 없이.
그거면 충분하다.
그러고도 시간이 또 흘러 흘러 내 그림이 더욱 나아지고, 작품으로 인정할 만하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화가로 이름을 알리는 사람들은 그 그림이 얼마에 팔려나가느냐로 사회적인 평가를 가늠한다. 또 한 가지, 자신의 그림이 어디에 걸려있는지도 그 그림의 가치를 가늠하는 기준으로 삼는 듯하다.
한때 그림을 배웠던 화가 한 분의 이야기다.
동료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이 어디에 걸려있는지로 자부심을 느끼는 상황에서 당신의 그림은 딱히 내세울 만한 곳에 내걸린 게 없었다고 한다.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단다.
당신의 그림이 어느 대중목욕탕에 걸려있다고.
화가는 스스로 위로를 했다고 한다. 목욕하는 여인네들을 위안할 수 있음에 그 또한 만족할 일이라고ᆢᆢ
나의 그림도 그리는 것 자체로 끝나지 않고, 누구라도 위안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
식탁 위 벽지에 생긴 흠집을 가리려고 완성된 작품 하나를 걸었다. 새빨간 사과 여섯 알이 그려진 내 그림 덕분에 식탁이 풍성해 보인다. 집안이 화사해졌다.
나 스스로 내 그림에 위로가 된다면 우선 그것으로 만족이다.
2025. 8.3 뜨거운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