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는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터벅터벅.. 무거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등줄기에서는 주룩, 땀이 엉덩이까지 흘러내렸다. 검은 원피스를 입고 하염없이 길을 걷다가 경복궁역 앞에서 나처럼 검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 사이로 막 누군가가 빠져나간 빈자리를 발견하고는 그곳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같이 노래합시다! 모두 큰 소리로 함께해 주세요!"
앞에 선 앳된 얼굴의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파르르 손을 떨며 말했다.
"배운다는 건~ 꿈을 꾸는 것~ 가르친다는 건~ 흐흑.. 희망을 노래하는 거어 흐흑.."
노래를 부르는 내 목소리가 젖어들고 있었다.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터지면서 10년 전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만삭의 몸으로 어둑한 학교에 홀로 남아 컴퓨터로 음악을 들으며 업무를 하고 있는데 상담을 신청한 태주(가명) 어머님이 교실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들어오셨다. "어서 오세요." 책상 두 개를 마주 보게 배열하고 어머님과 마주 앉아서 상담을 시작하는데 벌써 어머님의 눈가가 촉촉해지셨다.
"선생님, 저희 아이가 3학년 때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변한 거 아세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다 선생님 덕분이에요. 감사합니다." 하고 말씀하시며 눈물을 글썽이셨다.
개학날 처음 태주를 보았을 때 나는 아이한테 뭔가 상처가 있구나 생각했었다. 친구들 뿐만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도 불안함과 경계심이 가득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일까? 하고 생각하면서 걱정되는 마음에 몇 주 동안 유심히 관찰하고 일부러 다가가서 농담도 걸고 발표도 많이 시키고 칭찬도 듬뿍 해줬다.
처음에는 흥! 하고 별로 눈도 안 마주쳐주던 아이가 점점 변하는 게 느껴졌다. 발표도 이젠 내가 시키기도 전에 손을 들어 열심히 하고, 일기도 아주 예쁜 글씨로 정성껏 써오고, 친구들과도 쉬는 시간마다 함께 모여 놀고, 지난 기말고사에서는 전체에서 몇 개 안 틀릴 정도로 성적도 매우 좋아졌다.
게다가 글을 쓰는 능력도 뛰어나서 국어시간에 글을 써서 발표하면 내가 감탄할 정도였다. 특히 사물을 사람처럼 표현하는 의인법을 뛰어나게 구사해서 우리 반 시인이라고 공식별명도 붙여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어머니께 주욱 해드리면서 "참 별처럼 예쁘고 잠재력이 많은 아이예요." 하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했더니 어머님께서 멍한 표정으로 "너무 안 믿겨요 선생님.. 다른 사람 얘기 같아요." 하고 말씀하셨다.
태주는 1학년때 큰 상처를 받아 학교에 가는 걸 불안해하고 힘들어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아버지께서 집을 나가시고 어머니께서 태주를 혼자 양육하시게 되면서 두 모녀가 함께 까만 밤을 사는 것처럼 힘드셨다고 했다. 태주가 3학년에 올라올 때 엄마는 태주와 같이 기도를 했단다. 제발 좋은 선생님을 만나게 해달라고..
얘기를 듣는데 나도 너무나 마음이 아파 눈시울이 붉어지고 눈물이 고였다. 태주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태주 어머니께서 지금 아이가 이렇게 학교를 열심히, 즐겁게 다니고 있는 게 엄마로서도 너무 기쁘시다고 얘기를 하시면서 계속 눈물을 지으시는데 문득 내가 처음 교직에 들어왔을 때가 생각났다. 힘들고 소외된 아이들을 도와주겠다고,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학교를 만들겠다는 꿈을 갖고 매일 설레어하면서 출근하던 그때 그 마음이.. 그리고 이 날의 기억이, 교사로서의 나의 열정을 모닥불처럼 환하게 불타오르게 해 주었다.
그 마음으로 10년을 살아왔는데.. 지금 나는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그보다 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학교를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다. 나의 꿈이었던 이곳에서 내가 앞으로 10년을 더 일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