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길을 선택한 너에게, 불안보다 희망을

12살 소녀가 24살 숙녀가 되어 찾아온 날

by 오후의 햇살

2011년, 우리는 학교에서 만났다. 열정 가득한 초임 교사였던 나와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보며 눈을 반짝반짝 빛내던 5학년 학생으로. 그것이 우리의 첫 만남이었다.


12년 전 그때는 '놀토'가 있었다. 주 5일 근무제를 시범운영하는 시기였기에 한 달에 2번, 토요일에도 격주로 학교를 나갔다.

"선생님 이번 주 놀토예요? 아, 학교 오고 싶은데."

어릴 적부터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꿈을 이룬 스물넷의 나는 열정이 넘쳤고 아이들에게 행복한 추억을 가득 만들어주고 싶었다. 그 마음이 전달되었는지 고맙게도 아이들은 노는 날에도 학교에 오고 싶어 했다.


놀토(쉬는 토요일)에도 나는 아이들과 종종 공원에서 만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얼음땡 등 아이들이 좋아하는 놀이를 같이 하고, 롯데리아에 데려가서 햄버거를 사주며 재잘재잘 신이 나서 말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수업이 끝나도 5~6명의 아이들은 늘 교실에 남아서 내가 가르쳐준 교실놀이를 하다 가고, "선생님 뭐 도와드릴 것 없어요?" 하면서 교실 뒤쪽 환경게시판을 함께 꾸미고, 고민이 있으면 남아서 함께 눈물을 흘리며 상담을 하기도 했다. 그 시절 우리는 모두 서툴렀지만 그 모습 그대로 참 예쁘고 반짝거렸다.



그리고 2021년, 학교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나는 어느새 11년 차 교사가 되었고, 너는 스물두 살 대학생이자 교생선생님으로 우리 학교에 왔다. 10년 만에 다시 본 우리는 꺄악 소리를 지르며 두 손을 맞잡고 방방 뛰었다.


"선생님~ 너무 보고 싶었어요! 어쩜 이렇게 그대로세요?"

"00아, 너야말로 너무 예쁘고 멋지게 잘 컸다. 내가 키우진 않았지만 이렇게 잘 커줘서 너무 고마워!"

교생실습을 마치고 떠나면서 그녀는 나에게 예쁜 손글씨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쓴 편지를 주었다.



'선생님, 10년 동안 잘 지내셨어요?'

편지를 읽다가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열두 살 감수성이 풍부한 어린 소녀였던 제자가 어느새 10년이 지나 나와 같은 교대 후배가 되어 이제 몇 년 후면 함께 동료 교사로서 일하게 된다니.. 너무나 가슴이 벅차고 행복했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하고 바른 마음을 가진 멋진 어른으로 잘 자라줘서 정말 고마웠다.



2년 뒤인 2023년 여름, 우리는 다시 만났다. 보고 싶다는 그녀의 연락에 나는 바로 약속을 잡았고 12년 전 우리가 선생님과 학생으로 처음 만난 학교가 있는 추억의 동네에서 보기로 했다. 그녀가 케이크가 맛있다는 화이트와 우드톤의 아기자기한 카페를 추천해 주었다.


약속 시간은 오후 1시 45분. 가게 앞이 공사 중이라 먼 곳에 주차하고 약속시간에 맞춰 가게에 도착했는데 먼저 도착해 있던 그녀가 큰 통유리창으로 내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문을 열고 카페 밖으로 마중을 나왔다. 밝은 색으로 염색을 하고, 청바지와 흰 티셔츠를 입고 웃음 가득한 얼굴로 나를 맞는 그녀에게 여름날 햇빛에 반짝이는 푸른 나무 같은 싱그러움이 가득했다.


우리는 반가운 마음에 한참 서로를 보면서 깔깔대며 웃다가 음료와 달달한 케이크, 마카롱을 주문했다.

"선생님, 1인 1 케이크예요?"

"그럼~ 마카롱도 주문해야지! 뭐 좋아해? 선생님이 사줄게! 일단 자몽 오렌지 케이크 하나 하고.. 하나는 네가 골라봐."

"음.. 저는 쑥 케이크요!"

"어머, 쑥케이크 나도 너무 좋아하는데! 우리 진짜 잘 맞는다! 하하하"



주문한 음료와 디저트를 놓고 마주 앉아 그동안 어떻게 지냈냐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자는 여러 가지 힘든 일이 겹치면서 휴학을 했고, 외국에서 한 달 살기 프로젝트도 하고, 에버랜드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대안학교에서 자원봉사로 교사 활동도 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 나이에만 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하다니 너무 멋지다고 말하는 나에게 그녀는 남들은 다 열심히 잘 사는데 자신은 휴학을 하고 뚜렷한 성취가 없이 보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 교권 추락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는 상황에 대해서 불안해했다.


"00아, 내가 10년 넘게 교사를 하다 보니 수업 연구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내가 좋은 사람이 되는 거야. 수업하는 건 교사로서 기본으로 하는 거고, 나는 아이들에게 옳은 것과 그른 것에 대해 알려주고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면서 아이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멋진 선생님이라고 생각하거든. 일단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있어.


그러려면 나 스스로가 굉장히 다양한 경험을 쌓고, 많이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해 보고 힘든 일을 겪으면서 넘어졌다 일어서기도 하면서 자신에 대하여 잘 알고, 바른 가치관을 가진 단단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그런 면에서 너는 너무 잘하고 있고, 그 경험이 너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줄 거야.


지금 교권 추락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것도 나는 너를 위해 너무나 잘된 일이라고 생각해. 오랫동안 곪아왔던 문제가 이제야 터져서 수면 위로 떠올라 개선의 필요성이 사회적으로 논의되고 있으니 희망이 있잖아? 그러니까 앞으로 네가 교사로 일할 학교는 전보다는 조금 더 나아질 거야. 선생님도 서울 집회에 다녀와서 희망을 느꼈거든. 앞으로 선생님도 선배로서 더 열심히 노력해 볼게!"



다행히 그녀는 나의 말을 듣고 환하게 웃었다. 나도 함께 웃었다. 나는 이제 그녀의 선생님, 친구, 언니, 선배, 동료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 할 학교를 더 행복하고 안전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다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