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했지만 여전히 나의 멘토인 시어머니

서로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는 만납니다.

by 오후의 햇살

"오늘 시간 되시면 같이 나가서 저녁 드실래요?"

"그래, 어디로 갈래?"


금요일 퇴근 무렵, 내가 보낸 카톡 메시지에 어머님께서 바로 답장을 보내셨다. 오늘은 꼭 내가 보은의 밥을 사드려야지, 마음먹으면서 오랜만에 정시 퇴근을 했다.


이번 주에 학교가 2학기 개학을 하고 학년 업무와 교육과정, 체험학습 계획 수립, 학부모 설문조사 기안 등등 학년부장 교사로서 일이 너무 많아서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야근을 하게 되었다. 일찍 가보려고 죽어라 일했지만 여의치 않아서 저녁 8시까지 내가 학교에서 일하는 동안 초등학교 저학년인 아들이 집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걱정이 되어 중간중간 연락을 할 때에도 "난 괜찮아, 엄마 천천히 해." 라면서 의젓하게 나를 기다려주던 아이가 비가 오면서 천둥이 치고 번개가 치자 무섭다며 전화를 했다. 이틀 동안 학원이 끝나고 다시 학교로 돌아온 아들과 함께 저녁 8시까지 교실에서 버티다가, 고생하는 아이를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어머님께 연락을 드렸다.


"내가 학원 끝나고 시간 맞춰 데리러 갈게. 우리 집에 데려가서 저녁 먹이고 놀아주고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덕분에 목요일은 마음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이혼하고 4년 동안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가 아프거나 내가 일이 너무 많을 때엔 친정 부모님이나 여동생의 도움을 받아 고비를 넘겨왔는데 올 해에 지역 만기로 이동을 하게 되면서 친정 식구들의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년에 지역 이동을 앞두고 어느 지역으로 이동을 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을 했었다. 아이가 많이 크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아프면 출근을 해야 하는 나 이외에 아이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은 꼭 필요했다.

교사는 학기 중에 연가나 병가를 쓰면 보통 학교 내 다른 교사가 그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에 정말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연가나 병가를 쓰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 결국 다시 돌아가야 하나? 내가 첫 발령을 받았던 그곳으로...



어머님과 나는 나의 초임 발령 학교에서 만났다. 나는 파릇파릇 에너지가 넘치는 20대 신규교사였고, 어머님은 세련되고 업무능력이 뛰어난 50대의 존경스러운 교무부장님이었다. 2년간 그 학교에서 근무하면서 우리는 나이를 뛰어넘어 멘토와 멘티로, 때론 직장동료로 때론 친구처럼 좋은 관계로 지냈다.


교무부장님은 신규 교사들을 데리고 본인의 차에 태워 직접 운전을 하시면서 지역의 맛집을 소개해주시기도 하시고, 학교의 업무도 친절하고 꼼꼼하게 가르쳐주셨다. 나중에는 집에도 초대해 주시고 그곳에서 따뜻한 차와 맛있는 과일도 내어주시며 무한한 사랑과 친절을 베풀어주셨다.



그 해의 추석 무렵, 우리 반에서 학교 폭력 사건이 일어났다. 엄밀히 말하면 학교 일과시간 이후에, 학교 밖인 학원에서 일어난 싸움이었지만 학생이 학교에 소속되어 있기 때문에 학교폭력이라고 했다. 나는 양쪽의 부모님과 통화하며 상황을 중재해 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주말에도 학부모는 나에게 전화해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그러다 한 학생의 학부모가 자기 아이가 병원에 있으니 찾아오라고 했다. 주말에 병원에 찾아가서 만난 아이는 멀쩡했다. 하지만 학부모는 아이가 많이 다쳤다며, 어쩔 거냐며 나를 몰아붙였다. 하.. 속이 시커멓게 타는 것 같았다. 그때, 교무부장님이 병원에 나타나셨다. 어쩔 줄 몰랐던 나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오신 것이다.


"어머님, 저는 00초 교무부장입니다. 많이 속상하셨겠어요. 아이는 좀 어떤가요?"


아이의 상태를 묻고, 대화를 통해 학부모의 감정을 가라앉히고 난 뒤, 교무부장님이 말씀하셨다.


"어머님, 지금 여기 계신 담임선생님 좀 보세요. 학교에서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열심히 하기로 소문난 교사입니다. 그건 어머님도 보셔서 아시지요? 본가가 타지에 있어서 주말에는 선생님도 타지로 가셔야 하는데 지금 아이가 걱정돼서 집에도 못 가고 주말에도 병원에 오시고, 상담도 열심히 하셨잖아요. 아이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난 것은 안타깝지만 열심히 해결하려는 선생님의 탓을 하면 안 됩니다."


나는 울컥, 눈물이 쏟아지려는 것을 꾹 참았다.

'정말 멋진 분이다.. 나도 저렇게 멋있는 교사가 되고 싶다..'

교무부장님 덕분에 학부모는 감정을 가라앉혔고 일은 순조롭게 잘 해결됐다.



내가 20대 중반을 갓 지난 어린 나이에 결혼을 결심한 이유는, 이렇게 멋진 교무부장님과 가족이 되고 싶었던 마음이 참 컸다. 학교를 떠나기 전에 "선생님, 내 아들 한 번 만나볼래? 부담 없이 편하게 오빠처럼 생각하고 밥 먹고 오면 돼" 하고 말씀하셨던 교무부장님의 말씀에 마음이 두근거렸다.


교무부장님과 가족이 되고싶다는 생각에 남편 될 사람의 치명적인 단점이 보였음에도 어리석게 눈을 감았다. 결혼 준비는 추진력이 강한 교무부장님이 일사천리로 도와주셨다. 집 계약부터 신혼여행, 예물 선택, 복잡하고 정신없는 그 모든 것들을 교무부장님은 척척 다 해결해 주셨다.



.. 그랬던 우리가 지금은 전 시어머니, 전 며느리가 되었다. 결혼생활은 끝났지만 어머님과 나의 추억은 그대로 남아있다.

나를 바라보는 어머님의 눈빛에서 혼자 손자를 키우는 나에 대한 안쓰러움과 미안함, 고마움이 보인다. 나는 그 마음이 감사하고, 죄송하고, 아프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는 만난다. 이 관계를 무어라 정의하면 좋을까.. 이렇게 지내도 되는 것일까.. 몇 년 동안 고민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어머님은 내 아들에게 최고의 할머니이시고, 나는 어머님 손자를 열심히 키우고 있는 내 아들의 엄마이니까.

우리는 여전히, 이 아이의 가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