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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Nov 26. 2024

국어시간에 받은 감동적인 편지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오늘 국어시간에는 '내 인생에 큰 영향을 준 존경하는 사람을 떠올려보고, 그 사람에게 진심을 담은 편지 쓰기' 활동을 했다.

 아이들은 저마다 고심하며 글감을 떠올리기 위해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애를 썼고, 나는 아이들에게 30분 정도 시간을 준 뒤 다 쓴 사람부터 나와서 발표해 보도록 했다.


 우리 반 아이들 24명 중에 7명은 부모님이나 가족에게 편지를 썼고, 놀랍게도 17명은 담임교사인 나에게 편지를 썼다.


 열두 살,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한 해가 끝나가는 이 시기에 나를 존경하는 사람으로 꼽아준 것이 고맙기도 하고, 편지의 당사자가 되어 코앞에서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연이어 들으니 민망하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나의 마음에 가장 크게 와닿은 것은 감수성이 풍부한 모범생 하진(가명)이의 편지였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저 하진이에요.
5년 동안 이렇게 현명하시고 아름다우시고 너그러우신 선생님을 처음 보았어요. 그래서 너무 기뻤어요.

선생님을 만나서 공부를 작년보다 더 잘하게 되고, 또 선생님이 알려주신 '기분이 안 좋을 때 산책하기'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저는 전보다 정신이 맑아지고 여러 곳으로 산책하고 있어요.
 그리고 '슬플 때 미소 짓기'도 요즘 하고 있어요.

선생님 덕분에 역사가 재미있어졌어요.
예를 들어 원래 문화유산을 외우는 게  너무 싫었는데,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대로 나라의 발전 흐름에 따라 문화유산을 외우니 너무 재밌고 흥미로워요.
제가 공부를 잘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편지 내용을 보고 내가 가장 놀랐던 부분은 하진이평소에 내가 했던 작은 말들까지 모두 귀담아듣고, 실천하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1학기에 상담할 때  아이는 스스로를 예민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늘 걱정이 많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고 나에게 털어놓았다.

 나는 아이에게 선생님도 그렇다고 이야기해 주며, 생각이 많을 때에는 밖에 나가서 산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해 주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시간이 남거나 짬이 나면 종종 책에서 읽은 내용 중에서 좋은 부분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곤 했는데, 한 번은 '미소를 지으면 뇌가 행복하다고 착각을 하기 때문에 슬프거나 힘들 때에도 억지로 미소를 짓다 보면 근육의 움직임으로 뇌를 속일 수 있다'는 말을 해주며 힘들 때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 말을 하면서 나는  익살맞은 미소를 지으며 아이들에게 "자, 여러분도 슬프거나 힘들 때에는 이렇게 웃어보세요. 선생님도 자주 하는 방법인데 꽤 도움이 된답니다." 하고 이야기했었다.

 하진이는 내가 순간순간 했던 그 말들을 기억하고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여기서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사실은, 이 작고 귀여운 아이가 무엇이 슬퍼서 요즘 '슬플 때 미소 짓기'를 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내가 스치듯 했던 말들이 아이가 힘들 때 도움이 되었다니 고맙기도 하고, 다행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아이들이 집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 중에 가장 오래 함께 있는 사람은 바로 선생님이다. 특히 초등학교 선생님은 담임이 거의 모든 과목을 다 가르치기 때문에 종일 아이들과 붙어있으면서 일상생활을 함께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좋은 교사'가 되려면 우선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무심코 하는 행동이나 말투, 나의 가치관이나 습관까지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다 아이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사실은 늘 내가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부여한다.


 1년 동안 내가 아이들과 함께하면서 단 한 명에게라도 긍정적인 변화와 감동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아이의 인생을 통째로 바꿀 수도 있는 귀한 터닝 포인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열일곱 명이나 되는 아이들의 진심 어린 편지를 받고 나는 또다시 부지런히 노력하고 성장해서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은 시간 동안 나와 함께하는 이 아이들에게 행복하고 따뜻한 기억을 더, 더, 많이 주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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