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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Jan 07. 2024

엄마에 대한 복합적인 마음에 관하여

세상에서 가장 고마운 존재임이 분명한데 나는 왜 예쁘게 말하지 못할까

 흔히들 딸과 엄마는 특별한 관계라고 한다. 10년 전 선배 언니가 결혼 직후에 나에게 했던 말이 생각난다.

"난 결혼하고 나서야 찐사랑을 알았어. 이 세상에서 나를 제일 사랑해 주는 사람은 엄마라는 걸. 남편은 내가 아파도 밥을 먹지만, 엄마는 내가 아프면 밥을 못 드시더라. 세상에 찐사랑은 엄마밖에 없다, 너?"

 언니의 말에 끄덕이긴 했지만 그때 아직 20대 중반의 어렸던 나는 언니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던 내가 결혼을 하게 되고, 아이를 갖게 되면서 나는 언니의 말을 이해했다. 임신한 나는 이상하게도 엄마가 해주시던 음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엄마께 전화해서 엄마가 해준 김치만두, 닭볶음탕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바로 재료를 사다가 요리해서 내가 먹을 수 있게 갖다주셨다. 겨울에 딸기가 먹고 싶다는 나에게 지금 딸기가 너무 비싸서 못 사준다는 남편의 모습과 비교가 되면서 아, 이래서 언니가 찐사랑은 엄마 사랑밖에 없다고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전 임신했을 때 엄마가 해주신 맛있는 김치만두


 만삭의 나에게 자신의 고등학교 친구들, 회사 사람들을 대접해야 한다며 두 번이나 집들이를 요구남편 때문에 고민을 할 때에도 엄마는 당신이 음식을 다 해서 신혼집에 차려줄테니 걱정 말라며 출장 뷔페처럼 찌개부터 메인요리, 밑반찬, 디저트로 나갈 샐러드까지 다 요리해서 우리 집에 갖다 주셨다. 지금 생각해도 이렇게까지 해주는 엄마가 어디 있을까 싶을 정도로 우리 엄마는 헌신적이고 가족을 끔찍이 위하는 존경스러운 슈퍼맘이다.


10년 전 엄마가 요리해서 갖다주신 집들이 한 상 차림





 그런 엄마와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내가 아이를 낳고부터였다. 엄마는 첫 손주가 너무 예뻐서 자주 신혼집에 들러 아이를 보고 싶어 하셨고, 남편이 바빠 내가 혼자 아이를 보는 걸 안쓰러워하며 도움을 주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그 마음이 너무 앞서서 주말에 나와 남편이 집에 같이 있을 때에도 비밀번호를 누르고 갑자기 집으로 들어오시거나, 아침 7시에 전화해서 안부를 물어보시며 가족의 잠을 깨우시기도 했다. 문제는 엄마뿐만 아니라 시아버지도 매 주말마다 아이를 보고 싶어 하셨고, 밤낮으로 영상통화를 걸고, 본인이 사는 지역에 와서 자고 가길 원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남편은 엄마 때문에, 나는 시아버지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고 더 자주 싸우게 되었다.


 내가 엄마와 10년 동안 실랑이했던 또 다른 갈등의 원인에는 '반찬'도 있었다. 엄마는 당신께서 한 요리를 자식들에게 주기적으로 나눠주는 것을 사랑이라 생각하셨고, 나는 냉장고에 자꾸 다 먹지도 못할 음식들이 쌓여 가는 것이 너무 큰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엄마께 마음만 받겠다고 했지만, 엄마는 가져온 음식을 다시 가져가라는 거냐며 화를 내셨다. 그러면 나도 언성을 높여서 이렇게 엄마가 가져온 음식을 다 못 먹고 냉장고 정리할 때마다 곰팡이가 생긴 음식을 버릴 때면 너무 죄책감이 든다고, 엄마는 자기만족을 위해서 주는 거라고, 이건 날 위한 게 아니라고 모진 소리를 했다.


 하지만 엄마와의 갈등이 정점에 달했던 원인은 나의 이혼이었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잘하는 나를 굉장히 자랑스러워하셨다. 모임에 갈 때마다 아줌마들이 어쩜 그 집 딸은 그렇게 공부를 잘하냐고 물어보면 엄마는 "글쎄~ 공부하지 말라고 해도 그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스스로 하더라고요. 호호호" 하면서 어깨를 으쓱해하시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런 내가 한 번에 교대에 합격하고, 바로 임용고시에 붙어 교사가 되고, 20대 후반에 잘 사는 집안의 안정된 직장에 다니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좋은 아파트에 살면서 예쁜 아이까지 낳았으니 엄마에게 나는 엄마의 자부심 그 자체였다.


 그러던 딸이 너무 힘들어서 이혼을 해야겠다고 하자 엄마는 굉장히 혼란스러워하고 불안해하셨다. 오히려 과묵한 아버지께서는 내 딸이 그렇게 힘들게 버텨왔으니 너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말씀하신 반면, 엄마는 밤에 잠이 안 올 정도로 머리가 아프다며 두통과 우울을 호소하셨다. 그리고 내가 이혼한 사실을 2년이 넘도록 꽁꽁 숨겼다. 친척들에게도, 엄마 친구들에게도, 그 누구에게도 큰 딸의 이혼 소식을 말하지 않았다. 그런 엄마를 보며 나는 나의 존재가 엄마에게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은, 부끄럽고 숨겨야 할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엄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 게 아니라 내가 자랑스러운 딸이었기 때문에 사랑한 거였구나.. 하는 생각마저 들어 배신감이 느껴졌다.






 어느 날 엄마와 함께 카페에 간 나는 엄마에게 울면서 이야기했다.

 "엄마, 나는 그냥 나 자체로 존중받고, 나의 삶을 살고 싶어요. 엄마한테는 이제 내가 자랑스러운 딸이 아니야? 내가 이혼했다는 게 그렇게 부끄러워요? 엄마는 왜 친한 친구에게도 내 이야기를 안 해요? 정말 친한 사이라면 서로의 아픔도 함께 나눠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 친한 친구 맞아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며 말하는 나에게 엄마는 그게 아니라 당신은 내 딸이 구설수에 오르는 게 싫어서 그러는 거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보다는, 엄마가 남들에게 그동안 딸 자랑만 해왔는데 이제 와서 자존심이 상하기 싫어서 말하지 못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로 나는 유난히 엄마에게 툴툴거리면서 이야기하는 나를 발견한다. 세상 그 누구에게도 이렇게 못되게 얘기하지 않는데 나는 엄마가 조금만 나에게 잘못을 하면 그걸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꼭 집어 날카롭게 이야기하면서 엄마에게 상처를 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후회한다. 엄마가 그렇게까지 잘못한 건 아닌데 내가 왜 그렇게까지 말했을까... 하면서.


 카페에서 엄마와 대화하고 1년의 시간이 지난 뒤 엄마는 나에게 결연한 표정으로 당신의 친한 친구 몇 명과 가까운 친척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하겠다고 말씀하셨다. 내 딸이 그래야 편하게 살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뭐 어려운 일이냐면서. 그 얘기를 듣고 나는 울컥 감사한 마음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가 나를 위해 자존심을 포기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건 엄마에게는 굉장히 어려운 일이라서 지금도 엄마의 친한 친구들 몇 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나의 이혼 소식을 모른다. 벌써 5년이 지났는데도 말이다.  이제는 내가 이해하기로 했다. 그래, 나도 내 삶을 살고 싶은 것처럼 엄마도 엄마의 방식대로 나를 지키고 싶으신 거겠지 하면서. 머리로는 그렇게 이해를 하는데 내 안의 위로받지 못한 영혼은 그대로 있어서 불쑥불쑥 화가 나고 슬퍼진다.


 이번 주말에도 엄마의 조언을 듣고 일처리를 하다가 일이 맘대로 안되자 나는 화륵, 엄마한테 화를 냈다. 그냥 내 생각대로 했으면 이만큼 손해는 안 봤을 텐데 엄마의 말을 들었다가 더 크게 손해를 봤노라고 짜증을 팍 냈다. 사실 엄마의 잘못이 아닌 걸 알면서. 그리고 마음이 불편하니까 집에 와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상처를 줄 때도 있지만 가족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하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좋은 어른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예쁘게 말하지 못할까. 이혼한 지 5년이나 지났지만 내 안의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못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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