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후, 하늘이 어둑하고 빗방울이 떨어지는 스산한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 아들은 친구와 놀고 싶다며 전화를 한다. 엄마 마음 같아서는 그냥 집에서 따뜻하게 쉬면서 독서도 하고, 같이 보드게임도 하고, 티비도 보면서 느긋하게 보냈으면 좋겠는데 아이는 안 그런가 보다.
나와 직장 동료인 아이의 친구 엄마께서 감사하게도 아이를 집으로 초대해 주셔서 아이를 친구네 집에 데려다주고,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3시간 후 데리러 가겠다고,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한 뒤 갑자기 주어진 자유시간에 미뤄두었던 집안일을 했다. 그러고 나서도 시간이 남아 올해 배워보기로 마음먹은 오일파스텔 그림을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에서 6~7천 원이면 살 수 있는 24색 오일파스텔과 A4용지 한 장을 꺼내놓고, 유튜브로 '오일파스텔'을 검색했더니 다양한 영상이 나온다. 그중에서도 꽃을 좋아하는 나의 시선에 들어온 건 튤립 꽃다발 그리기 영상이었다. 영상에 나오는 사람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은 색깔의 오일파스텔을 가지고 있어서 똑같은 색감을 구사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내가 가진 색깔들 중에서 어울리는 것들로 조합하여그려보기로 했다.
영상을 보며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시작했다.
그리는 과정에서 이게 맞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일단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완성해 내자, 하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그렸다. 그림에 집중하는 동안에는 잡생각이 전혀 들지 않고 오로지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 참 좋았다.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누워있으면 오만 잡생각이 다 들기 마련인데 그림은 나를 '지금, 현재' 순간에 몰입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림을 그리면서 영상의 그림과 내 그림이 다르게 보일 때에도 '뭐 어때? 나만의 방식으로 그리면 되는 거지. 저 사람도 저 사람만의 작품 세계가 있듯이, 나에게도 나만의 색깔이 있는 거니까 일단 그림을 완성시켜 보자!' 하는 깡이 생긴다. 그러면서 은근히 이런 대견한 생각을 하며 그림을 완성하고 있는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이 확 올라간다.
비단 그림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도 모두가 같을 수 없기에,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을 굳이 나와 비교하면서 부러워하거나 의기소침해하지 말고 '나만의 삶'을 살아가면 그거야말로 정말 멋진 인생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의 튤립꽃다발 완성!
완성된 그림이 유튜브 영상의 느낌과는 사뭇 다르지만 그래도 나는 썩 마음에 들었다. 포기하지 않고 내 손으로 완성한 나만의 튤립 꽃다발이라 그런지 더 의미 있고 예쁘게 보인다.
문득, 중학교 1학년 때 한자 교과서에서 배웠던 공자의 문장이 생각난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兒)"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혀가는 기쁨은 실로 엄청나다. 앞으로 또 어떤 새로운 배움이 내 마음을 설레게 할지 벌써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