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감선생님이 외부에서 걸려온 신원미상의 학부모 전화 한 통을 받고 나에게 잘못했으니 사과하라고 했다. 나는 잘못한 게 없으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상황을 조사해서 거짓 민원으로 나를 괴롭힌 사람을 찾아 사과받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민원인이 신분을 밝히지 않고 학교에 바로 전화해서 작은 일로도 시비를 걸고 감정적으로 분노하며 따질 수 있는 이 시스템이 나는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다음날, 수업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아이들한테 말했다.
"얘들아, 혹시 선생님이 지난 시간에 너희들을 가르치다가 욕을 했니? 선생님은 그런 적이 없는데 어제 교무실로 민원 전화가 왔다고 해서 선생님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려고 해."
그러자 여러 명의 아이들이 동시에 여기저기서 목소리를 높였다.
"선생님 욕 안 하시잖아요~!"
"우리 들은 적 없어요!"
"야, 누가 전화한 거야?"
나보다 더 목소리 높여 나를 변호해 주는 아이들의 대답에 순간 울컥했지만 꾹 참았다.
"여러분이 들은 적 없다니 다행이네요. 누군가 선생님을 다른 사람과 착각하고 잘못 전화했나 봐. 자, 그럼 수업합시다~! 지난 시간에 숙제 안 해왔던 사람들은 검사받으러 수업 끝나고 연구실로 오세요."
무사히 수업을 마치고 나서 연구실로 갔더니 4명의 아이들이 숙제 검사를 받으러 왔다. 그런데 갑자기 퍼뜩, 교감선생님이 어제 나한테 했던 말이 생각났다.
"선생님이 숙제 안 해온 애들한테 미친놈이라고 했다면서? 학부모가 그러던데?"
아, 이 아이들 중에 누군가 집에 가서 말을 잘못 전달했을 수도 있겠다. 생각이 들어 아이들에게 물었다.
"얘들아, 혹시 이 중에서 지난 시간에 선생님이 욕을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니?"
그러자 한 남학생의 눈빛이 확 달라지며 "선생님이 그랬잖아요?" 하는 거다. 그 아이는 우리 학교 연구부장 선생님의 조카였다. 와.. 뒤통수를 세게 맞는 느낌이었다.
다른 아이들은 교실로 보내고, 그 아이에게 말했다.
"선생님은 그런 적이 없는데? 아까 친구들 이야기 들었지?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는데 너만 들었다고 한다면 네가 잘못 들은 거 아닐까?"
그러자 그 아이는 "난 들은 것 같은데.." 하고 중얼거리더니 "그 전화도 우리 엄마가 한 거예요~!" 하고 당당히 말하는 거다. 황당했다. 선생님보다 자기 엄마가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하는 그 오만함이 눈빛에서 느껴졌다.
"선생님은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어. 그런데도 네가 계속 선생님이 욕을 했다고 주장하고 너희 어머니가 학교에 항의를 해서 선생님은 큰 상처를 받았어.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얘기한다면 선생님도 정당한 조사를 요청해서 선생님의 억울함을 밝힐 거야. 그리고 그 말에 대한 책임을 물을 거야. 그렇게 해도 넌 떳떳할 수 있겠어?"
단호한 눈빛으로 아이를 보며 말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잠시 생각하더니 대답했다.
"제가 잘못 들었나 봐요~"
너무 화가 났지만 그래, 잘못 들었을 수도 있지. 애니까. 라고 생각했다. 사실 확인도 없이 다짜고짜 교무실에 전화해서 화를 내고 항의한 부모의 잘못이니까.
"그래. 오해가 풀려서 다행이다. 집에 가서도 부모님께 잘못 들은 것 같다고 말씀드리고, 앞으로도 우리 수업 즐겁게 하자!"
그리고 쉬는 시간이 끝나 아이를 교실로 보냈다.
수업을 다 마치고 교감선생님을 찾아갔다.
"교감선생님, 어제 제가 욕했다고 민원 전화 온 학부모 말만 믿고 저한테 사과하라고 하신 거, 제 얘기는 듣지도 않으신 거에 대해서 사과해 주세요. 아이가 잘못 들었다고 방금 얘기했어요."
그러자 교감선생님은 당황한얼굴로말핬다.
"아니, 나는 학부모가 화내면서 얘기하니까 진짠 줄 알았지. 그리고 어제 연구부장도 자기 조카가 들었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2명이 들은 거잖아, 응? 그러면 당연히 선생님이 잘못한 거라고 생각했지."
"제가 아니라고 했잖아요. 제 얘기는 왜 안 들어주세요? 그리고 연구부장님 조카 엄마가, 그러니까 연구부장님 언니가 그 전화한 민원인이에요."
그러자 옆에 앉아있던 연구부장이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아니 선생님~ 뭔가 잘못 알았겠지. 우리 언니 그런 전화할 사람 아니야~"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그럼, 교무실 전화기에서 발신번호 기록 확인해 볼까요?"
나는 바로 전화기 앞으로 가 발신번호 내역을 확인했다. 그리고 연구부장한테 언니 전화번호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번호가 똑같았다.
"아니 연구부장,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응?"
교감선생님이 갑자기 연구부장을 향해 화를 냈다.
"교감선생님, 연구부장님, 저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나서 그냥은 못 넘어가요. 저한테 확인도 하지 않고 제 잘못이라고 몰아가면서 사과하라고, 네 잘못이라고 저한테 함부로 하신 거 교권보호위원회 열어서 책임 물을 거예요. 그리고 학부모한테도 사과받을 거예요."
그리고 교무실을 나가서 그 학부모에게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어머니, 안녕하세요. 저 OO초등학교 영어전담교사입니다."
"그런데요?"
"방금 아드님과 이야기 나누고 제가 수업시간에 욕을 한 적이 없는데 아이가 오해해서 잘못 들었다고 얘기했어요. 어머니께서 저에게 확인도 하지 않으시고 교무실에 전화해서 항의하신 것에 대하여 사과받으려고 전화드렸습니다."
그러자 앙칼진 높은 목소리가 핸드폰을 넘어 귀에 꽂혔다.
"아니 지금 뭐 하자는 거야?? 내 아들한테 애들 앞에서 창피준거예요?"
이 학부모는 그 순간에도 내 상처나 억울함은 생각도 않고 자기 아들이 행여나 상처받았을까만 생각하고 있었다.
"아니요. 연구실에서 따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더 큰 목소리로
"아니 그럼 우리에만 수업시간에 따로 불렀다는 거예요? 수치스럽게?"
하는 거다.
"아니요. 쉬는 시간에 얘기했습니다. 어머니, 아이가 상처받는 거 너무 걱정되고 싫으시죠? 그런데, 저는 어땠겠어요. 저는요. 어제부터 너무 억울하고 속상하고 화가 나서 잠이 안 왔어요. 어머님은 자기가 하지도 않았는데 누가 욕했다고 사과하라고 하면 어떠시겠어요? 저는 결백하거든요. 그래서 전화드린 겁니다."
내 안에서 어떻게 이런 용기가 났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나의 결백함을 이 무례한 학부모에게 꼭 밝히고 싶었다.
"지금 우리 애가 학원 갔으니까, 내가 이따 물어볼게요. 근데, 선생님이 욕한 거 맞으면 나, 가만 안 있을 거예요!!! (뚝.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 그날 저녁, 연구부장한테 전화가 왔다. 미안하다고, 자기 언니가 그럴 줄 자기는 정말 몰랐다고. 내가 말했다. 그러면 내일 언니분께 오후에 학교로 오셔서 사과하시라고 전해달라고, 나는 상처가 너무 커서 꼭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선생님~ 그냥 내 전화로 끝내면 안 될까? 우리 언니 굉장한 사람이야~ 교장실에 찾아가면 일 더 커질 수 있어~!"
기가 찼다. 굉장한 사람이 뭐지? 잘못을 해도 사과를 하지 않는 굉장히 무례한 사람이라는 건가?
"부장님, 저는 학부모도, 부장님도 저한테 이러시는 게 이해가 안 가요. 내일 언니분한테 사과하러 오시라고 하세요. 아니면 저 교총에 연락하고, 교권보호위원회 열고,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취해서라도 제 억울함 밝힐 거예요."
다음날. 나는 교감선생님과 연구부장한테 사과를 받았다. 그리고 오후 2~3시쯤. 학부모가 교무실로 왔다.
"어머~ 선생님~~ 안녕하세요. 이렇게 인상이 좋으신 분이셨구나. 학교에 와서 보니 신뢰가 가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 아이 잘 가르쳐주셔서. 제 아이가 오해를 했나 봐요 호호호. 정말 감사합니다."
대체 뭐가 감사하다는 거지?
난 생각했다. 감사하다는 말은 죄송하다는 말이 죽어도 하기 싫은 그 학부모가 대신 선택한 말이었다. 그 학부모는 나의 결백을 인정하고, 감사하다는 말을 수십번하고는 교무실을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