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름, 나는 아들을 아이의 할머니께 맡기고 외국으로 어학연수를 왔다. 한 달이 되는 기간 동안 외국의 멋진 자연경관을 만끽하고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공부를 하며 힐링하고 가야지, 하는 생각도 잠시. 나는 이곳에서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극심한 고통을 겪었다.
강의실이라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매일 같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호텔에서 2인 1실을 쓰고, 공부하는 와중에 없는 시간을 쪼개어 여행을 다니고 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사람들은 자신의 밑바닥을 드러내기시작했다.
일주일이라는 시간 동안 서로 조금 친해졌다고 생각하니 더 이상 조심하지 않고 자신의 짜증과 예민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이 타인과 얼마나 다른 존재인가를 끊임없이 느끼며 이것이 '다른' 것인가? 이건 저 사람이 '틀린'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특정한 타인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이 글 속에서는 그 특정한 타인을 '그 언니'로 지칭하여 에피소드를 적어보려 한다.
그 언니는 나보다 나이가 두 살이 많고 아들이 셋 있는 사람이었다. 아들 셋을 남편에게 맡기고 왔다는 말에 '와, 이 언니 남편 진짜 잘 만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는 말투가 차가웠지만 때때로 따뜻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언니와 함께 그룹을 만들었다. 그런데 일주일간 같이 다니면서 보니 그 언니는 내가 만나 본 모든 사람을 통틀어 최고의 '꼰대'였다.
예를 들어 같이 여행을 다니면서 내가 구글 지도를 켜서 방향을 찾고 있으면 그 언니는 "역시 젊은 애가 잘 찾네~ 난 길 안 찾아도 되겠다!" 하면서 얄팍한 칭찬을 내리꽂으며 오롯이 나의 노력에 무임승차했다. 나와 두 살 차이밖에 안 나는데 '젊은 애'라는 호칭이라니...
일주일간 언니의 그런 행동을 보면서 나는 참고 참다가 언니에게 "언니, 구글 지도 없어? 핸드폰에 기본으로 다 깔려있을 텐데.. 우리 앞으로 3주나 더 여행 다녀야 하는데 깔아놓는 게 도움 되고 좋지 않을까?" 하고 말했다. 혹시라도 언니가 기분 나쁠까 봐 억양과 말투에 신경을 쓰면서 최대한 부드럽게 말하려고 애쓰며 눈치를 보면서. 나의 물음에 그 언니는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나 추후에 내가 안 사실은 그 언니는 나의 이 질문을 '공격'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며칠 후 처음으로 그 언니가 밖에 나가서 혼자 쇼핑을 하고 들어왔을 때, 나는 언니가 이 머나먼 외국에서 혼자 나갔다 왔다는 게 대단하기도 하고, 구글지도를 한 번도 안 써본 언니가 혹시 어려움을 겪진 않았는지 걱정이 되기도 하여 그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 어제 괜찮았어? 구글 지도 이용한 거야?"
그러자 그 언니는 갑자기 꽥 소리를 질렀다.
"야! 나 혼자서도 정말 잘하거든? 나 원래 가족여행할 땐 내가 다 찾아! 여기선 내가 할 필요가 없으니까 안 하는 거야! 알아? 네가 했었으니까 안 한 거지 난 원래 이런 거 잘한다고!!!"
하고 말하며 씩씩거렸다.
그 순간 나는 '아, 이 언니가 지난번 나의 말을 공격으로 받아들였었구나' 하고 느꼈다. 인정욕구가 높고 자존감은 낮은 그 언니는, 동생인 내가 감히 자신에게 조언하는 게 싫었던 거다.
나는 짐짓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언니에게 말했다.
"그랬구나. 멋지다. 잘했어, 언니. 나는 언니가 혼자 밖에 나갔다 오면서 혹시 헤매진 않았는지 걱정돼서 물어본 건데 잘 다녀왔구나."
하고 말했다. 그 언니는 나의 칭찬에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나는 그 언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나한테 그때 속상하다고 말해줬으면 좋았을 걸, 왜 가만히 있다가 이제 폭발하며 터뜨리는 거지?'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 언니와 대판 싸웠다. 속상하고 서운하고 스트레스받았던 일이 쌓이고 쌓여서, 속에 있던 마음들을 다 얘기했다.
"언니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어. 나는 언니를 나보다 나이 많은 연장자로서 존중하려고 했는데 이제 그러고 싶지가 않아.
지난번에 산에 갔을 때 내가 너무 추워서 떨고 있었는데 언닌 차가운 손을 내 목에 계속 대면서 장난쳤지? 나 그때 너무 춥고 싫었는데 언니니까 참았어.
그리고 지도 얘기도, 나는 우리가 여행 기간이 많이 남았으니까 같이 찾으면 좋을 것 같아서 얘기한 건데 왜 갑자기 화를 내? 난 항상 언니한테 말할 때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하느라 늘 긴장되고 머리가 아파. 예민한 언니 심경 건드려서 또 터질까 봐. 알아?"
그러자 언니가 "어, 그래? 더 얘기해 봐. 어디 한 번 계속해봐!" 하고 소리 지르면서 헛웃음을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내가 타지에서 모두를 위해 감수했던 희생까지 비웃으며 "야, 너 까놓고 솔직히 말해서 그거 너를 위해 한 거 아니야? 니가 뭔데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을 해? 니가 뭔데!!!" 하고 악다구니를 쓰며 말했다.
나는 그 언니가 나를 존중하지 않는 그 태도에 넌덜머리가 났다. 머리 꼭대기까지 화가 난 나는, 이제 그 언니한테 '언니'라는 호칭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극심한 꼰대였던 그 언니는 나의 '너'라는 호칭에 눈깔이 뒤집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밖으로 나갔고, 다음 날 사람들에게 내가 '감히' 언니인 자신에게 '너'라고 말했다며, 앞뒤 상황설명을 제외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말하고 다녔다.
그 때문에 나를 경솔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나는 이제 다 내려놓았기 때문에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나의 진심을 알아줄 사람들은 그 언니의 말이 아닌, 나의 말과 행동을 보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 테니.
후에 '너'라는 호칭을 쓴 것에 대하여 내가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언니를 찾아가 사과했으나 언니는 받아주지도, 나에게 사과하지도 않았다. 그 또한 어쩔 수 없이 나와 그 언니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하며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호텔에 들어와 혼자 조용히 마음정리를 하다보니 내가 싫어하는 그 언니에게는 나 스스로가 갖고 있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그건 바로, '참다가 터뜨린다는 것'이었다. 그 언니가 무례한 행동을 할 때, 나는 그 언니의 눈치를 보면서 참았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하면 그 언니도 (나의 의도와는 다르지만) 내가 지도에 대해 물었을 때 불쾌했지만 한 번 참고, 그다음에 빵 터뜨렸던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눈치를 보면서 참지 말고 그때 그때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참다가 크게 터뜨려서 타인과 나를 불편하게 하지 않도록.
한 달간의 어학연수 기간 중 이제 절반이 지났다. 그동안 나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런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 많이 생기고, 너무 눈치를 보고,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으며 열흘 남짓 되는 기간 동안 몸무게가 3킬로 이상 빠졌다.
역시 최고의 다이어트는 마음고생이다.
내 인생에서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런 상황들의 연속에 그저께는 수업 중에 숨을 못 쉴 정도로 호흡이 가빠지고 눈물이 나서 조퇴를 하고 미술관과 성당에 다녀왔다.
성당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은 뒤 기도하기 시작했다.
'하나님, 부디 제가 어떠한 시련과 고통에도 스스로 무너지거나 쓰러지지 않고 잘 견디고 버텨 더욱 단단하고 큰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이 고통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저의 부족함을 스스로 깨닫고 성장하게 도와주세요. 성장의 기회를 주심에 정말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나니 마음이 너무나 편안해졌다. 신은 고난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려고 이런 경험을 주시는 거구나, 하고 생각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이 있어도 나는 그 시련을 기회삼아 더 크고 단단하게 성장할 거다.
Be grateful for the chance to grow.
모든 시련과 고통을 이겨낸 진짜 강한 사람만이 타인에게 친절할 수 있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나는 나의 부족함을 똑바로 마주하고, 반성하고, 더 크고 단단하게 성장하여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으며 타인에게 영원히 친절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