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달>의 전영성 감독님과의 인터뷰입니다.
Q1. 안녕하세요 전영성 감독님, 간단한 자기소개와 작품 소개 부탁드립니다.
전영성 감독 : 안녕하세요. 영화 <낮달>을 쓰고 연출한 전영성이라고 합니다. <낮달>은 고양이가 모두 사라진 섬으로 떠나는 딸을 아빠가 따라가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이 영화로 관객분들을 만나뵐 수 있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Q2. <낮달>의 시작은 무엇인가요? 작품의 시작점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전영성 감독 : 저는 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만들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대학원 자기소개서에 영화로 사랑을 이야기하는 '사랑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쓴 것도 기억이 납니다. 이번에는 아빠와 딸이 서로 다른 사랑을 하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사실 어릴 적 아버지와 사이가 너무 안 좋았었는데, 자라면서 그 미움이 다 사그라들어서 이제는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때가 왔다- 하는 용기가 생긴 것도 같습니다. <낮달>을 완성한 후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함께 영화를 보았는데, 그 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Q3. 작품 초반의 낮달의 인서트 컷과 사라진 고양이, 후반부의 슈퍼 사장님의 대사에서 영화사 전반적으로 다루고 있는 주제가 ‘존재함’인 것 같았습니다. 분명 존재하지만 알아차리기 어려운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는데요, 작품에서 이런 메세지의 대상이 된 존재는 달, 고양이, 가족인 것 같습니다. 왜 이 세가지를 선택하셨는지, 혹시 작품 속에 이런 존재가 더 있다면 무엇인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영성 감독 : 어느 날, 나 자신이 하찮게 여겨질 만큼 절망스러운 날에 끝내 붙잡아 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저에게는 첫째가 가족, 둘째가 고양이였습니다. 둘 모두 분명 존재하지만, 일상을 바쁘게 살아내다보면 존재함을 알아채기 어려운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몸과 마음이 무너지는 날에는 가족이 보고 싶기도, 길에 고양이 한 마리가 나타나줬으면 하기도 하는 것이죠. 그 모습이 어두컴컴한 밤에서야 환하게 빛나주는, 그래서 위로의 순간을 주는 달과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그치만 낮에도 이 우주 어딘가에 달이 떠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라고 이야기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Q4. 작품 속 스코어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기타가 주를 이루고 있는 어쿠스틱한 사운드를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스코어에 대한 전반적인 기획과 에피소드에 대해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전영성 감독 : 저는 <낮달>이 관객들이 각자 잊고 살아온 관계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관객들에게 가장 친숙한 사운드를 사용하고자 했고, 기타와 피아노 두 악기 중 고민을 하다 아빠인 '석우' 캐릭터와 기타 소리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기타를 선택했습니다. 후반 작업을 하면서 가장 공들인 것이 음악 작업이었습니다. 잔잔하면서도 미스테리하고, 또 간간이 웃기기도 했으면 좋겠는 마음에 그 감정선을 조율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습니다. 음악 감독님과 가장 많이 한 이야기가 "... 너무 과하게 슬픈가요?", "... 너무 과하게 통통 튀나요?" 였던 것 같습니다.
Q5.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중심으로 그 두 인물의 충돌이 이야기 속 대부분의 에피소드를 차지한 것 같습니다. 그런 충돌은 아버지의 딸에 대한 사랑, 배려에서 나온 행동들을 딸이 그렇게 받아들이지 못함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 같은데, 이런 두 인물 설정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전영성 감독 : <낮달> 시나리오를 처음 쓰기 시작하면서, 가장 첫 줄에 적은 문장이 있습니다. '그래야겠다고 혹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사랑'이 그것입니다. 아빠는 계속해서 딸과 가까워지려 하지만 되려 방해만 됩니다. 결국 상황들을 겪으며 딸을 멀리서 지켜볼 수 있게 되고, 그때 오히려 딸과 나란히 걸을 수 있게 됩니다.
딸은 자신의 일을 잘해내고 싶은 마음에 아빠를 밀어내려 하지만, 결국 아빠의 다른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때 딸은 밤하늘에 뜬 달을 바라보고, 고양이도 마주할 수 있게 됩니다.
Q6. 작품 속 두개의 풀샷이 기억에 오래 남았습니다. 다큐를 찍으러 가던 낮에 장비를 들고 나란히 걸어가는 인물들의 모습과, 하루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인물의 모습이었는데요, 두 장면 모두 어딘가로 향하는 인물들을 멀리서 담고 있지만, 낮의 장면은 나란히 가는 인물사이의 거리에 주목하게 되었고, 밤의 장면에서는 함께 걷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두 씬에 대해서 말씀부탁드립니다.
전영성 감독 : 그 두 개의 풀샷으로 딸과 아빠 사이의 변화를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낮의 장면에서는 딸에게 더 다가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 그리고 밤에 장면에서는 딸이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아빠와 거리를 좁히는 모습을 담고자 했습니다. 사실 영화에서 딸과 아빠가 화해하는 모습이 직접적으로 보여지지 않기 때문에 정말 신경써서 촬영한 컷이기도 합니다.
Q7. 수아는 고양이에 대한 다큐를 찍습니다. 다큐를 찍으러 다니는 내내 수아는 고양이가 없다는 말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 이유에 대해서만 찾아다녔는데요, 그렇게 사람을 만나러 다니던 수아는 내심 고양이가 있기를 바랬을까요? 마지막 장면에서 웃는 모습에서 수아가 과연 무슨 감정이었을지 궁금합니다.
전영성 감독 : 수아 역을 맡아주신 황의정 배우님께서 촬영 전 날 밤 제게 같은 질문을 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감독님, 마지막 장면에서 수아는 어떤 감정일까요? 환하게 웃을까요, 피식 웃을까요, 아니면 안심해서 짓는 미소일까요?" 당시 제가 했던 답을 이곳에 적겠습니다.
: 이 날은 수아에게 너무 힘든 날일 거예요. 실수도 하고, 일이 안 풀리기도 하고, 그럼에도 잘해보려고 아등바등하는데 친구들은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할 것만 같고. 그럴 때 나쁘게 말하면 가장 만만한 사람인 아빠에게 화살이 돌아가죠. 그러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할지라도 수아는 아빠에게 "방해되니 돌아가달라"고 뱉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정도로 힘든 날인데도 수아가 계속 그 섬에 남아 있는 이유가 뭘까요. 수아는 인지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고양이가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은 건 결국 그 고양이들이 걱정되고, 어디로 갔는지 알고 싶고, 더 나아가 보고 싶은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수아가 인터뷰 첫 질문으로 항상 "고양이 어디로 갔는지 아세요?"라고 묻는 건 아닐까요. 그런 수아가 마침내 고양이를 발견하고서는, 농약을 먹고 죽은 것도, 장마에 휩쓸려 간 것도, 힘들게 바다를 헤엄쳐 넘어간 것도 모두 아니고 너희들은 이 곳에 상처 없이 잘 살아 있었구나-하는 감정을 느낀 거라 생각해요.
Q8. 영화를 만드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전영성 감독 : 제가 하는 생각들과 느끼는 감정들을 관객들과 함께 하고 싶어 영화를 만듭니다. 그래서 관객분들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신 혜화동로터리 영화파티 팀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습니다. 사랑은 사람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은 가장 솔직하면서도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사랑을 느끼는 방식, 그것을 표현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정말 다릅니다. 이 세상엔 70억 개의 사랑하는 방식이 있을 것입니다. 그 각자의 이야기들을 영화로 만들고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혹은 관객들이 제 영화를 보며 자신과 다른 사랑의 방식을 발견하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영화를 만들며 '영화적'인 순간을 맞이할 때,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들과 함께 할 때, 사소한 디테일로 토론할 때, 관객에게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이 닿을지 고민할 때 심장이 두근거리고 자부심을 느낍니다. 앞으로도 영화를 하겠습니다.
Q9. 마지막으로 <낮달>에 대해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전영성 감독 : 관객분들께서 이 영화를 어떻게 봐주실지 항상 긴장되고 궁금합니다. 요즘 하늘이 맑아 낮달이 떠있는 날이 많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든 후로 저는 낮에도 달이 떠있다는 것을 자꾸 느끼는 것 같습니다. 영화를 봐주시는 여러분 곁에도 항상 달과 같은 존재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