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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Mar 18. 2023

가치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난 연둣빛의 싱그러움을 좋아한다.

                                                                      

특히 비가 온후 연둣빛은 편안함과 안정감을 넘어 설렘까지 준다. 한바탕 소리를 내어 꺼이꺼이 울고 난 후에 찾아오는 후련함 그 느낌과 닮았다. 어쩌면 나는 그 자연 속에서 꺼이꺼이 울었고 뒹굴었고 그리고 포기하고 잠들었던 시간들이 익숙하기 때문일 것이다. 연초록의 자연과 함께 한 시간들이 가져다주는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다.


<심리학이 어린 시절을 말하다>의 저자 우르슬라 우버는 어린 시절에 겪은 경험과 그 후의 삶에는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성인이 느끼는 공포와 불안장애는 어린 시절에 느낀 또 다른 공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그럼 나는 과거 어떤 삶을 살았기에 연초록이 이렇게나 편안할까? 불안하고 공포스러울 때 연초록은 나에게 무엇을 제공했을까? 그리고 엄마는 그  자연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기에 저리도 몸서리를 칠까? 엄마는 내가 좋아하는 시골을 유난히 싫어한다. 징글징글하다고 하셨다. 차라리 도시에서 죽어라고 일하는 게 시골에서 노는 것보다 더 편안하다고 하셨다.


엄마에게 자연은 일이다. 지켜보고 있으면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는 일,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막막함과 부담감을 주는 일일 뿐이었다. 멈추고 싶은데 그 멈춤에 대한 선택 스위치가 자신에게 없었다. 할머니가 쉬라면 쉬고 멈추라면 멈추고 그렇게 착한 며느리로 인정받고 싶어 했던 시간들에 의해 그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지금도 몸이 그렇게 반응한다. 일을 놓고 쉬지 못하게 하는,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하려고 발버둥 치는 몸으로 변해버리는 것이다.  엄마는 어쩌면 자연이 싫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자신의 몸마저 마음대로 통제하지 못하는 그 불안함과 막막함이 싫었던 것이다.


"너 낳기 2시간 전까지 콩밭을 멨다. 나도 참 멍청했어~. 일을 조금이라도 해야 되는 알고 밥 해 먹고 설거지하고 나면 정신없이 밭으로 달려갔다. 그날도 그랬어. 그날도 ~"


내가 태어나는 날도 엄마는 콩밭을 메다 느낌이 이상해서 살피니 양수가 터져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 직접 물을 끓이고 나를 낳으셨다고 했다. 그리고 그때 곁을 지켜준 것은 내가 상할머니라고 불렀던 우리 할머니의 시어머니 왕할머니였다. 왕할머니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때까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동반자였다.


"너를 낳고 들었던 첫마디가 아이고 어쩐다냐~였다."

'아이~고~ 어쩐다냐' 그 말 한마디가 내 존재를 규정하는 또 하나의 조각이 되었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그 시선으로 어른들은 나를 보았나 보다. 꽤 오랜 시간 내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보고 있었으니까~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아이' 70년대 초, 그 시대에는 아들이면 잔치를  하면서  환영받고 딸이면 눈치를 주지 않아도 눈치를 봐야 하는 시대였다.


'아이고 어쩐다냐'라는 말로 사람들에게 언급되지 않기 위해  나는 가급적이면 존재감 없는 아이로 살려고 했나 보다.  있는 듯 없는 듯 착하고 순한 아이,  궁금해도 질문하지 않는 아이, 질문하지 않으면 내 이야기를 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 해내지 못하면 가치 없는 아이가 될까 봐 시키는 일은 죽어라고 열심히 해내는 아이. 그런 아이로 성장했다. 


이제야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알 것 같다. 그런 나를 어른들은 착하다고 했고 어떤 이는 안쓰러운 눈으로 봤지만 그 누구도 구해주지 않았다. 엄마마저도 구해줄 힘이 없었다. 그때 나는 또 알았나 보다. 세상은 어차피 혼자라는 것을. 혼자 살아내야 한다는 것을.


딸을 낳았다는 이유로 엄마는 이틀 만에 나와 다시 밥을 하고 콩밭을 메고 밤에는 삼베를 짰다고 한다. 엄마가 나를 품에 안는 시간은 유일하게 젖먹이는 시간. 그런데 그 시간도 엄마는 불안하고 할머니 눈치를 보느라 나와 눈을 맞추지 못했고 예쁜 것도 몰랐다고 한다.


그럴 수 있다. 스물한 살 엄마가 무엇을 알았을까? 자기 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배워왔던 순종을 무기로 썼을 뿐이었다. 내 존재와는 관계없이, 내 가치와는 상관없이 엄마는 본능대로 몸이 반응하는 대로 살았을 뿐이다. 어른에게 순종해야 한다고 어린 시절부터 배워왔을 테니까.


할머니는 힘이 있었기에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내보일 수 있었고 감정을 조절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 그렇게 가족을 통제하려 했고 그런 할머니의 눈치를 보고 살아온 엄마는 감정을 억압하고 포기하고 살았기에 내 간절함이나 내가 보내는 신호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았으리라.


태어나는 것만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 있는 삶의 시작인데 난 여자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존재를 부정당하고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삶을 살려고 했던 것이다.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태어날 때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는 자존이 흔들리기에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한다. 


그래서 무엇을 잘못하면 내가 무능해서 가치 없다고 생각했고, 가치가 없으면 버려질까 봐 가정에서도 지나치게 많은 책임을 지려했고, 친구관계에서도 좋은 사람이고 싶어 나는 다 괜찮다고 내 욕구를 포기했으며 직장에서도 그것을 해내지 못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어떻게든 해내려고 지치고 힘들고 불안한 내 마음과 몸을 외면했었다.


책임을 조금 덜 져도, 내 욕구를 표현해도 어떤 일을 해내지 못해도 난 괜찮은 사람이고 가치 있는 사람인데 그 역할과 나를 동일시했고 결국은 내가 나를 무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른들이 한 그대로. 사대가 정한 대로 내 가치를 정해놓고 있었다.  


이제 내 가치는 내가 정하기로 선택한다. 그래서 누군가가 내 가치를 함부로 정하려 들면 난 당당하게 말할 것이다. 내 가치는 내가 정하겠다고. 그것을 못해도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해도 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다만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내가 더 노력하겠다고.

"넌 존재만으로도 충분해. 고개 들고 어깨 펴고 당당하게 살아"



마음을 보듬어 줍니다.


아이야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지금 이대로 충분해.

네가 느끼는 감정을 알아주고 원하는 것을 이야기해도 괜찮아

엄마가 충분한 돌봄을 못했던 것은 사랑하지 않아서도

네가 딸이라 가치가 없어서도 네가 부족해서도 아니란다.

그저 몰라서였고 약해서였고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그 시대와 상황과 엄마의 가치관의 문제였어. 그러니 너는 그냥 그대로 너의 감정과 감각과 욕구를 존중하면 되는 거야.

반드시 무엇을 잘해서 너의 가치를 상대에게 증명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괜찮으면 다 괜찮아.

너는 그 모습 그대로 충분하단다.



아이들은 경험을 감정으로 기억한다. 영유아기 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누군가가 물어보면 말할 수는 없다. 잘 기억나지 않으니까~ 그런데 몸은 기억한다. 그래서 사랑을 많이 받고 긍정적인 관심을 받은 아이는 어떤 사람을 만나도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고 그 말과 행동을 다른 사람들이 긍정적으로 봐줄 거라고 기대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관심과 사랑을 받지 못하거나 부정적인 경험을 한 아이는 타인에게 자기의 생각과 감정을 말하는 것을 주저하고 말하지 않는다. 말해도 들어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거나 말해도 된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어린 시절 어른들이 나를 대하는 방법으로 자신을 내면화한다.


나의 영유아기의 경험이 나를 가치 없는 사람, 증명해야만 존재할 수 있는 사람, 무언가를 더 해내야만 가치가 있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인식하게 했나 보다.  아프고 슬프다. 이젠 이대로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으로 나를  존중하고 대해야겠다.


나무님들은 어떤 어린 날의 경험을 기억하고 있나요? 잘 기억나지 않으신가요? 저도 그랬어요. 잘 기억나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는 대로 기억난다면 난대로 우리를 새롭게 규정하기로 해요. 기억하시지요? 생각 바꾸기. 생각이라는 것은 그 시간과 경험에 대한 해석이잖아요.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아이"는 "가치가 증명되는 아이"로 바꾸어 생각해 봐요. 나는 오늘부터 그냥 있어도 가치가 증명되는 아이예요. 소중한, 사랑받기에 충분한, 그리고 존중받는 사람으로 사는 거예요. 내가 먼저 나를 그렇게 대해주면 되는 거예요.  나무님들도 함께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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