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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나무 Mar 16. 2023

10개월의 태교가 내 인생에 준 영향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스물한 살의 엄마는 양쪽 모두가 반대하는 결혼을 결국은 해내셨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였는지 당신들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였는지 어른들에 대한 반항이었는지는 모르지만 결국 결혼식은 진행되었다. 결혼식을 올리자마자 아버지는 군대에 가고 아버지가 떠난 자리에 남겨진 것은 시할머니와 시부모님과 시누이 셋의 식사에 대책임과 월급을 주지 않고 마음껏 부릴 수 있는 그 집안의 든든한 일꾼의 자리와 뱃속의 아이인 나였다.

눈사람이 엄마와 나를 닮았다.

남편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스물한 살 꽃색시만 남겨두고 아버지는 떠나셨고 그 빈자리는 무서운 책임감과 부담감 그리고 외로움과 두려움뿐이었던 것이다.


'태교는 무슨 태교~' 이런 상황인 엄마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랐나 보다.

물론 할머니 할아버지 고모들 모두 다 함께 일하고 함께 고생했지만 그게 엄마의 고단함을 희석시켜주지는 못했다. 그나마 엄마를 숨 쉬게 만든 것은 아버지가 군대에서 보내오는 편지들이었다. 초등학생이 되어 라면박스 가득 넘쳐나는 러브레터를 보고 어렴풋이 짐작했었다. 이 편지들이 엄마를 버티게 했구나라는 것을.


200미터 떨어진 곳에 외갓집이 있었지만 엄마는 할머니 허락 없이는 갈 수가 없었다. 우물가에서 외할머니를 만나도 혹시나 두려워서 서로 길게 이야기도 나누지 못하셨다고 할 정도로 긴장하고 조심하셨던 게 기억난다. 그래서 나 또한 옆에 외가를 두고도 가지 않았다. 가면 안 될 것 같은.....


 그래서 외할머니를 편안해하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외갓집이 마음껏 좋아하고 가고 싶을 때 언제든 가도 되는 곳이라고.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외갓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질 때까지 난 외갓집을 20번이나 갔으려나~ 습관이라는 것이 정말 무섭다. 옆에 있어도 발길이 닿질 않았다. 외갓집은 나에게는 조심스럽고 긴장되는 곳이었다.


"조금만 더 자고 싶었지~그런데 무서웠다. 너그 할머니가. 그런데 내가 자고 일 못하고 하면 혹시라도 너그 외할머니나 외할아버지께 피해가 갈까 봐 나는 너그 할머니가 시키지 않은 일까지 죽어라고 해댔다."


할머니는 그 동네에서 아니 그 지역 내에서 세기로 유명한 분이셨다. 일도 잘하고 재주도 좋아 못하는 것이 없으셨지만 그 지금도 그때 소꿉친구들이  이야기한다.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너네 엄마 애썼다고. 아무도 너네 할머니 감당 못한다고"

나는 그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냥 웃는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쏟아낸다.

'나도 애썼어, 나도 무서웠어~'

할머니도 사납고 억척스럽게 살수 밖에 없는 이유가 분명 있었으리라. 없는 집에서 무시당할까 봐 두려워 더 강한 척, 센 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세고 강하고자 선택했던 행동이 할머니를 더 외롭게 했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할머니는 양반인 사돈집에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엄마를 더 힘들게 했고 엄마는 그저 묵묵히 할머니의 모든 감정들을 받아내었다. 할머니는 할머니를 지키기 위해 센 척하는 것으로 엄마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착한 척하는 것으로 나는 또 나를 지키기 위해 웅크리고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최선을 다했던 것이다.


우리 모두 참 고생했다. 엄마도 참 고생했다. 대단하다. 그 험난한 길을 스물한 살의 새색시가 도망치지 않고 걸어왔으니.....


그런데 나는 또 슬프다. 그 시간의 나는 엄마의 마음을 오롯이 함께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울면 나도 울었을 것이고, 엄마가 고단함에 지쳐 쓰러지면 나 또한 함께 했을 것이기 때문에. 그때 엄마는 내 엄마도 아니었고, 아버지의 아내도 아니었고, 오직  며느리 역할에만 충실했다. 그것 또한 아이러니한 게 할머니나 할아버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의 엄마 아빠 즉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욕먹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결혼하고 난 목표가 하나였어. 느그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 욕 안 먹게 하는 거. 내가 잘못하면 느그 할머니가 욕하고 다니고 외할머니 외할아버지가 욕먹을까 봐 난 열심히 살았다."


그럴 거면 아빠를 만나 연애를 하지 말았어야지~ 아니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지, 먼 훗날 엄마가 넋두리처럼 들려주는 그 변명을 들으며 나는 깊은 슬픔이 꺼이꺼이 올라옴을 느낀다.


그냥 그 시간들이 안타깝고 아프다.

그래서 엄마는 태교를 강조하고 임신했을 때 편안하게 쉬도록 나를 배려하셨나 보다. 당신은 하고 싶지만 알지도 못했고 할 수도 없었던 그날들에 대한 보상으로.


나를 보듬어 줍니다.

엄마 뱃속에서 10달 동안 힘들었을 나무야

엄마 뱃속에서 엄마의 두려움을 고단함을 불안과 외로움을 그대로 느꼈을 나무야

많이 무서웠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넌 그 시간들을 잘 이겨내서 건강하게 태어났고

그리고 엄마 또한 너를 지켜내었구나

너는 어떠한 환경에서도 지켜지는 아이라는 것을 기억하렴

그것이 먼 훗날 어떤 상황에서도 너를 지켜내는 힘을 발휘하는 저력이 될 거야.

너는 그만큼 소중하고  가치 있는 존재란다.

꼭 기억해.



엄마는 한 맺힌 듯 그 시절의 이야기를 하고 또 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쏟아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라며 나도 모르게 올라오는 불편함을 눌러야 했고 그 불편함도 엄마와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는데 한 몫했다. 엄마의 그 이야기는 나에게 '너만 아니었으면 나는 그 시집살이하지 않았을 거야'라고 들렸다. 그런데 듣고 싶지 않았던 이야기를 도망치거나 대충 흘려듣지 않고 직면하니 엄마가 전달하지 못했던 다른 이야기가 들린다.


엄마 인생의 발목을 잡았고 아무에게도 온전히 사랑받지 못했다고 생각했던 내가, 상처받고 소외되었다고 느꼈던 시간들이 그 상황에서도 자신이 지켜졌음을 인식하니 내가 대단해지고 소중해진다. 엄마는 아마 그렇게 어렵게 나를 지켜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그 시집살이를 견뎌냈음을 알아주기를 바랐던 모양이다. 이제야 엄마의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 


또한  태교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엄마는 태교를 그리도 강조하셨고 그 덕분에 나는 임신했을 때 엄마로부터 충분한 돌봄을 받았다. 당신이 하고 싶었던 태교를 딸이 할 수 있도록 충분한 배려를 해주셨다. 


나무님들은 부모님들에게 환영받으며 태어나셨나요? 그렇다면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것은 존재 만으로도 나무님들이 이 세상에 꼭 필요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니까요~그런데 저처럼 환영받지 못하고 태어나면서부터 누군가를 힘들게 했다고 느껴 자신의 존재를 가끔 부정하고 싶어지고 자신도 모르게 숨고 싶어질 때가 있나요? 


그럼 생각을 바꿔보세요. 가슴이 아프고 슬퍼져 누군가로부터 전달되었던 말을 듣지 않으려고 하지 말고 끝까지 듣고 생각을 바꾸는 거예요. 생각은 그 사건에 대해, 그 시간에 대해 내가 선택한 해석이잖아요. 그 해석을 바꿔보세요. 나는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이라는 생각이 들면 그 시간들 속에서도 굳건하게 살아남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켜진 이라는 생각을 하면 자신이 소중해지고 단단하고 강한 자신을 만날 거예요.  단단하고 강한 자신을 만나면 세상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고 자신을 더 소중하게 대하게 돼요. 자신이 사랑스러워져요. 


꼭 생각을 바꿔보세요. 생각은 그 사건에 대해, 그 시간에 대해 내가 선택한 해석이니까요. 해석을 바꾸면 내 존재가 다르게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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