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은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순간이기도 하다.
임신을 확인했을 때 그 코끝 찡한 벅차오름과 설렘은 나보다 아이를 먼저 생각하게 하는 모성애라는 또 다른 자아를 만나게 했다.
그토록 좋아하던 산내 가득한 커피도, 일주일을 열심히 보낸 나에게 보상처럼 주었던 토요일 저녁의 맥주 한 캔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포기하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소리만 듣고 좋은 것만 먹으려고 노력하던 때였다.
임신을 한 나는 아이가 궁금한 만큼 내가 궁금해졌다.
"엄마~ 나 태교 어떻게 했어~"
마당의 감나무잎이 바람과 햇살이 전해주는 시간을 머금고 떨어져 바스락 거리고 있었고
남은 가지엔 어른 주먹만 하게 열린 주황색의 대봉시 감이 유혹하던 11월의 주말 오후,
오직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려주신 엄마의 밥상을 좋아라 받으며 생각 없이 툭 던졌다.
"태교? 그게 뭔디?"라고 말하며 엄마는 김밥 접시를 내 앞으로 가까이 당겨준다.
그때 나는 임신 8주째였다. 임신 소식을 들은 엄마는 "잘 먹고 좋은 것만 보고 좋은 말만 하고..." 주저리주저리 당부를 하셨었다.
그리고 밥 먹으러 오라고 했다. 먹고 싶은 것 제때 못 먹으면 눈이 작은 아이가 태어난다고. 난 그 기회를 냉큼 잡았고 내가 주문한 것은 소울푸드 김밥과 콩나물 국이었다.아무리 먹어도 엄마 김밥은 내 입맛엔 딱이었다. 입안 가득 넣고 초등학생처럼 좋아라 하는 내게 엄마는 세상을 다 줄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많이 먹어~"
표정에서, 눈빛에서, '많이 먹어'라는 말에서 사랑이 묻어난다.
(글로 엄마와의 관계를 직면하기로 마음먹고 한 발 내딛는 순간 내가 임신했을 때 밥상을 차려주며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또렷하게 떠오른다.)
찾았다. 엄마사랑 하나.
처음이었다.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고 포근한 온도. 이게 바로 사랑의 온도인가 보다.
우리 뇌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부정적인 것을 더 기억한다고 하는데 그래서인가? 내 어린 시절은 생각만 해도 아팠고 외로웠고 억울해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오르면 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그 시절로부터 벗어나려 몸부림을 쳤었다.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었다. 엄마는 나를 사랑했다는데 나는 사랑받은 기억이 없었다. 그 경험이 무의식에 자리해서인지 엄마와의 관계는 편안해 보이지만 불편한, 가까이하고 있지만 멀어지고 싶은 명료하게 정의 내리기 어려운 그런 관계였다.
물론 엄마도 불편한 지 아니면 나만 불편한 지는 모른다. 우리는 한 번도 그것을 수면 위로 떠올려 이야기해 본 적이 없으니까. 그저 나는 엄마를 만날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가면을 쓰고 대했으며 가급적이면 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그럴수록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분노가 쌓이고 있었고 엄마와의 관계는 꼬여갔으며 엄마가 좋으면서도 만나면 싸우게 되는 일이 반복되어 글로 엄마와의 관계를 직면하는 관계 공사를 시작하자마자 선물을 받은 것이다.
나를 보고 김밥 접시를 밀어주던 엄마의 표정에서 그토록 찾아 헤맸던 사랑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물론 엄마는 나를 위해 무수히 많은 밥상을 차렸지만 나는 엄마에 대한 서운함과 원망이 있었기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랑이 보인다.
난 대단한 보물을 찾은냥 의기냥냥 해진다. 어깨에 힘이 들어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호기심이 생긴다. 가시밭길이 대부분인 내 인생의 여행길 중간중간에 나타날 선물들에 대해서. 보물찾기 하는 일곱 살 아이가 되어 엄마 사랑을 찾아 내가 살아온 날들을 기웃거린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넋두리 같은 엄마의 소리가 들린다.
"태교는 뭔 태교~ 느그 외할아버지가 결혼 안 시키려고 서울에 있는 니 외삼촌 자취방으로 보내버렸으니까~ 근디, 올라간 지 몇 달 안돼 니가 배속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그래서 다시 내려왔지~ 외할아버지는 소리 지르고 외할머니는 어떻게 살 거냐고 미쳤다고 했었다. 그 난리난리 속에 무슨 태교, 오늘은 살아보자 내일은 죽어야 하나, 그 상황에서 너는 자라고 있었던 거지~"
(엄마와 아빠는 요즘으로 말하면 고3의 끄트머리에서 연애를 하셨다. 같은 마을에서 아버지는 머슴의 아들이었고, 엄마는 머슴을 거느리고 사는 그 일대에서 알아주는 부잣집 딸이었다. 그 둘이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니 그 시작 또한 가시밭길이었으리라.)
엄마의 불안함과 힘겨움이 느껴진다.
"그랬구나~무서웠겠다 우리 엄마, 힘들었겠다 우리 엄마~근데 아버지가 그렇게 좋았어? 용감했네"
"알고~ 그땐 미쳤었지 내가~" 짙게 패인 주름들 사이로 세월이 지나간다.
엄마의 고단했던 청춘이 기차밖 풍경처럼 거꾸로 달린다.
그런데 내 가슴이 아리다. 큰 화산이 무서운 속도로 올라오듯 55년 동안 외면하던 깊은 슬픔이 올라온다. 당황스럽다.
내가 갑자기 올라오는 슬픔과 싸우고 있는 그 시간, 엄마는 세월을 거슬러 갓 스무 살 나를 임신하던 무렵 그 어느 날을 거닐고 있는 듯하다. 용감했던 그때, 꽃처녀였던 그때. 엄마의 입가에 미소가 찾아왔다 분노가 찾아왔다 한다. 엄마 마음에 추억이란 손님들이 바뀌고 있나 보다.
55년 동안 외면하던 깊은 슬픔이 슬금슬금 내 의식에 닿으려고 한다. 난 그 감정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무섭다. 있는 힘을 다해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또 통제한다.
오열하는 슬픔도, 엄마와의 관계를 망가뜨리는 분노도 아닌, 관계를 지키면서 감당하지 못한 슬픔은 조절하면서 이해받고 싶었나 보다. 찰나에 무의식과 나는 협상을 한다.
'너의 두려움과 슬픔을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내 방법대로 위로해 줄게. 천천히 알려주고 알아줄게'
가슴에서 꺼이꺼이 우는 나를 달래며 용기를 낸다.
"근데 엄마, 배 속에 나도 무서웠겠다. 살 수도, 혼자 죽을 수도, 함께 죽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웅크리고만 있어야 하는 엄마 배 속의 콩알만 한 그 아이도 무서웠겠다."
그 아이의 아픔이 느껴진다. 조금만 불편해도 긴장하고 두려워하며 싸워보지도 않고 좌절하고 순응하는 아이, 타인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얼까를 먼저 생각하고 그들이 웃어야 편안해지는 아이.... 그 모습이 이해가 되었다. 나는 내가 궁금했었다. 왜 늘 포기하고 피하려고 하고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지... 그 삶의 태도의 실오라기 같은 시작점을 찾은 듯하다.
"야~ 태어나지도 않은 것이 뭘 알아?"엄마답게 쿨하게 대답이 날아온다. 그런데 쿨한 그 대답이 나는 또 아프다. "엄마, 알아~다 알아. 그 손톱 크기 만한 생명체도 살기 위해 알아야 하거든."
'그랬을 거야~ '한 마디를 듣고 싶었다. 그거면 되었다. 그 한 마디면 나는 위로가 되었을 것이고 평정심을 찾고 엄마의 착한 첫째 딸로 돌아왔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밥 한 숟가락이면 된다고 칭얼거리는 아이의 쪽박마저 깨버렸다. 태어나지도 않은 것이 뭘 알아~라는 한마디로.
'그랬을 거야~힘들었을 거야' 한 마디면 내 심리적 허기가 채워질 것 같았는데 엄마는 엄마 식대로 엄마를 지켜냈다. 엄마를 지킨 그 말이 나에겐 또 상처가 되어 엄마와의 마음의 거리를 멀어지게 한다. 그 아이 마음까지 이해하기엔 엄마의 깊은 한을 만나는 것이 엄마도 두려웠으리라.
그래, 엄마는 엄마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자기를 지키며 삽시다. '태어나지도 않은 것이 뭘 알아 한 마디를 듣는 순간 ' 갑자기 이성이 확 달려든다. 입맛이 뚝 떨어진다. "나 갈게. 많이 놀았어. 그리고 김밥 맛있었어."
당황하는 엄마를 등지고 허겁지겁 일어선다. 더 상처를 받을까 두려웠다. 나는 나를 보호하기 위해 엄마에게서 도망치고 있었다. 회피라는 방어기제로 나를 보호하려 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의 심리적 거리가 좁혀지기를 기대했었나 보다. 그런데 너무 가까운 거리는 상처가 됨을 또 확인했다. 엄마와 나의 거리는 70미터로. 모르는 사람이 100, 아주 가까운 사람이 10(배 속에 있는 보물), 남편이 20, 동생과 아버지가 30, 친구가 50 , 사회적 지인이 50~100 사이. 엄마는 오늘 70미터로. 심통이 난 나는 마음에서 엄마를 저 멀리 밀치고 있었다.
20년 전 그 시절엔 그냥 아프고 서운했었다. 그래서 그 장면 또한 상처로 마음속에 저장했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용기를 내어 다시 살피니 그 상처 안에 엄마의 사랑이 보인다. 김밥 먹는 나를 한없이 포근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엄마의 마음이 느껴진다. 또한 엄마에게 더 사랑받고 싶어 용기를 내어 다가가다가 상처를 받고 놀라 허겁지겁 도망치는 나도 보인다. 우리는 순간순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며 살았던 것이다. 인식하지 못했을 뿐.
그동안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아니 환영받지 못했다는 것을 알아 비참하고 아프기에 나 마저 그 상처를 외면했었다. 그랬더니 더 외롭고 아파서 용기를 내어 나를 찾아 여행을 시작한다. 내가 나를 사랑했던 흔적을 엄마에게 사랑받았던 흔적을 찾아 떠난다. 내가 소중해지기 시작한다. 내가 사랑스러워진다.
나를 보듬어 줍니다.
엄마를 찾아온 순간부터 불안하고 긴장하고 두려웠을 나무야(나무는 나의 애칭입니다.)
환영받지 못해서 속상했을 나무야
엄마 인생의 발목을 잡았다는 부담감으로 살았을 나무야
내가 너를 환영한다. 그리고 내가 너를 안전하게 지켜줄게.
너는 엄마의 발목을 잡은 것이 아니라 엄마의 사랑을 지켜낸 것이고
엄마는 또 그 힘든 상황에서도 너를 지켜낸 거야.
너는 그만큼 소중한 사람이란다.
그러니 어깨 쫙 펴고 당당하고 자유롭게 살아보렴
그리고 기억해
너의 안에는 그 힘든 상황도 이겨낸 강인함이 있다는 것을
환영한다 나무야
사랑한다 나무야
눈치 보고 긴장하고 있는 내 안의 어린아이가 빙그레 웃는다. 조심스레 어깨를 펴며 품에 안긴다.
나무님들의 태몽은 어떻게 되나요? 나무님들의 부모님들은 어떻게 만나셨나요? 태교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나무님들과 엄마 뱃속의 10달을 만나보세요. 그 안에 숨겨진 소중함과 사랑이 보일 거예요. 그것을 발견한 순간 나무님들이 더 사랑스럽고 더 소중해질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