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같은 주차장

길을 잃었을 때

by 연의

이사 5개월 차인데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고 있는 단 하나

지하주차장이다.


참고로 나는 평소 대단지의 동호를

찾는 것이 어렵다. 어디가 어딘지..

1001 호면 몇 층을 눌러야 하는지도 몰라 당황했었다.

자주 가는 곳도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야 할 만큼 길치다. 같은 길인데도 방향이 바뀌면 모르는 방향치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렇게 길치와 방향치인 내게

대단지 아파트 주차장은 출구 없는 미로와 같다.

때문에 나는 비가 오는 날에도 지상에 주차를 한다.

동건물 지하로 내려가면 그 동 주차장이 아니라

앞동이나 뒷동 주차장이 나온다.

왜 그런지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렇다.

그리고 홀수 동만 지하주차장이 있다.

지상주차장이 만석이 되면 어쩔 수 없이

지하로 내려가서 세운다.

경차를 운전하는 남편은 지하주차장을 자주 이용한다.

밤늦게 귀가해 지상에는 당연히 자리가 없고

지하에 경차 자리가 한 두 개 남아있기 때문이다.



오늘 아침 남편차를 쓸 일이 생겼다.

어디에 세웠는지 여러 번 물어보고 확인했다.

205동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세웠다고 했다.

(지정주차가 아니어서 어디든 세울 수 있는 시스템이다)


엘리베이터로 지하 1층에 내렸다.

내려가서 왼쪽으로 보면 차가 있다고 했다.

'응? 없는데? 어디 있다는 거야.'

키를 눌러보며 '삑' 소리가 나는 쪽을 찾아보려 시도했지만

아무 반응이 없다.

확인을 위해 주차장 출구로 나와 지상으로 올라와서

지하로 연결된 계단으로 내려갔다.

없다! 흠....


약속시간이 촉박하고 오늘따라 짐도 많아

슬슬 짜증이 올라왔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확실히 205동 맞아? 없는데?"

짜증과 한숨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다시 찾아보겠노라고 말하며 위를 보는데 이럴 수가!

아파트 외벽에 박혀있는 선명한 숫자, 207동


나는 엉뚱한 곳에서 헤매고 있었던 거다.

남편은 지상으로 연결된 계단으로 내려가라고 말했다.

그런데 나는 엘리베이터로 지하 1층까지 내려간 것이다.

당연히 같은 건물이니 지하로 내려가면

205동 주차장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 내려갔더니 '나 원래 여기 있었어' 차가 보인다.


남편 왈 "아직까지 적응 못하네. 그게 그렇게 어려워?"

네, 어렵습니다. 어려워요.


미로 같은 주차장에서 탈출했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인생이라는 복잡하고 긴 여정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주변이나 환경을 탓할게 아니라

나의 고정관념과 아집으로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도 내가 생각하는 대로 움직였던 나 자신처럼.

남편의 설명대로 했으면 문제가 생기지 않았을 텐데

'같은 건물이니 당연히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면 나오겠지'하며 따르지 않았다.

그 사실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아니냐며 화를 냈다.


참 이렇게 미성숙한 인간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되는 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주차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