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안개가 무척 짙다
가을께가 되면 임진강 줄기가 실핏줄처럼 뻗어
논과 밭, 도로 온갖 사물을 분별할 수 없을 만큼
짙은 안개가 일어 주변을 집어삼킨다
7시 반, 봉사활동이 약속돼 있는 쥐를 데리고 학교로 향한다
개.돼.쥐 중 속이 가장 깊고 늙은 할매가 들어앉아 있는 듯한 캐릭터 쥐.
나의 인생에서 가장 바닥까지 영혼이 꺼져내려갈 때
고작 세 살이었던 쥐는 내 영혼을 지키는 수호신이었다
그 순간을 비켜서 먼 곳까지 와 돌아보면
어떻게 지나왔을까, 혹 왜 그토록 힘들어 했을까
숨이 막힐 듯해하던 모습도, 또 목숨줄을 잡고 견뎌낸
대견한 모습도 아련하게만 생각된다
하지만 당시는 분명 영혼이 다 털리고 육신의 껍질만
텅빈 인형처럼 나부낄 때로, 더는 스스로 무엇을 지키고
내려놓아야 하는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때였으니
세살배기 쥐 눈에도 멀쩡해 보이지는 않았던 게 분명하다
영혼 없는 인형처럼 하루를 견디고
관에 눕는 심정으로 잠자리에 누우면
어린 쥐는 작고 동그란 얼굴을 내 얼굴 바짝 가져다 놓고
마주보며 누웠다
그리고 미니 붕어빵 같은 보들보들한 손으로
나의 한쪽 볼을 쓸며 세 살 아기가 아닌
팔순 할매처럼 말을 건넸다
힘내, 엄마니까 힘내, 알았지? 엄마잖아
어쩌면 그 작은 손이 한쪽 볼을 스칠 때 나에게 주문을 걸었는지, 나도 모르게
응
하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속으로, 아, 나도 엄마구나
세 아이의 엄마구나, 이 아이 눈에 보이는 이 육신이 엄마 노릇을 하는 데 필요한 몸뚱이구나
영혼이 털리면 이 몸을 누가 간수해
엄마를 하지...
쥐는 그 사태에 대해 다 알고 있는 신 같았다
쥐가 웃는 소리는 나의 영혼을 집에 머물게 하는 소리였고
아직 살아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마법이었다
쥐는 나에게 그런 사람이다
그 쥐와 요즘 매일 출근길을 함께한다
쥐는 이른 시간 학교에 가 봉사 시간을 채우고
나는 바로 수련실로 와 요가한다
오늘도 온 우주에 평화가
모든 실존들에 경배를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의식들에 경배를
앞선 모든 인류의 스승들께 경배를
수리야 나마스카라
짙은 안개 속을 걷는 듯한 인생길
잠깐 콧바람 쐬러 나왔다 정신 팔려 집으로 돌아가는 걸 잊고
아주 독립한 줄 착각하는 의식에 등불을 켜도록
인도하소서
쥐야
오늘은 안개가 짙다 이런 날은 아무리 아는 길이어도
속도를 줄이고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해
매일 이렇다면 힘들겠지만 내일은 또 날이 다르지
비가 오기도 눈이 내리기도
같은 길을 오가지만 매일 매일 다르지
인생도 그런 거란다
같은 날을 사는 것 같지만 전혀 다른 날들의 연속이지
너도 그새 14년을 살았고 나도 그 사이 엄마가 되었다
그래서 인생은 살아봐야 안다고 하나 보다
하루 잘 보내렴
옴 샨티 샨티 샨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