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차가워지고 세 번째 김장을 했다
처음에는 20킬로그램
두 번째 30킬로그램
어제 저녁엔 40킬로그램
사실 포기가 크면 몇 쪽 되지 않는다
농사 지은 무와 쪽파에
엄마가 내려준 액젓
여름 내 태양 볕에 익은 청양고추와 달달한 풋고추를
빨갛게 익혀 만들어 놓았던 고춧가루
신선한 새우젓 등에
알맞게 비율을 맞춰 담아낸 김장은 맛이 정말 좋다
어제따라 팔목이 좀 아파
쓰지 않던 채칼을 꺼내 무와 당근 등을 채썰었다
채칼의 날카로운 이가 꼭 앙 물려고 달려드는 상어 이빨처럼
생겨서 조심조심 또 조심하며 썼는데
양념을 다 만들 때쯤 그 놈의 중2 남학생이 반려와 부딪혔다
그냥 보아 넘길 수 있는 상황인데
놈은 성격이 유순한 나머지 능글맞고
그는 예민하고 성질급한 데다 까칠하니
사이에 낀 나는 늘 북 신세이거나 이 집안이 징글징글하단
소리를 내뱉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둘을 조율하다 순간 채칼에 손을 스쳤고
상어 이빨은 왼손 엄지손가락과 약지손가락을 아작냈다
손 끝이다 보니 순식간에 피가 솟구쳐 올라 바닥에 쏟아졌다
놈은 무서워서 내빼고
반려는 혼비백산 난리가 났다
그 자리에서 손을 높이 올리며
티슈와 밴드 등을 요구했다
그들의 입이 서로를 향해 일갈하던 상황이 멈추고
2인 1조가 되어 움직였다
양념은 간까지 맞춰 해놓은 상황
그 순간에도 김장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마음이 일어나는 게
어이없었다
하지만 피가 꽤 나는 상황이어서 손을 내릴 수가 없어
반려가 자리를 잡고 김장을 하기 시작했다
놈은 나의 치켜든 팔이 아플까봐 붙잡고 섰다
그 즈음 퇴근한 동생이 함께 김장을 하러 왔다
평소 같았으면 손도 대지 못하게 하고 혼자 다
해치웠을 입장인데 뭘 해도 션찮아 보이는 두 사람이
김장을 하겠다고 덤빌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동생은 고새를 기다리지 못해 사고를 친 나를 션찮아하고
나는 혹 맛있어야 할 김장이 맛없을까 그들이 션찮고
그래도 이제는 하는 수 없이 그들 손에 맡기는 수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언니가 또 다 하려니까 우리 보고 하라고 다친 거 아니에요!
기회다 싶은지 동생은 못믿어워하는 평소 나를 꼬집는다
그래, 내가 다해버려서 당신네한테 해볼 기회도 안 주니
이번엔 잠자코 구경이나 하라나 보다
물론 내가 김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해치웠으면
그들은 김치 포기 하나 못 만졌을 테고
또 나는 세 번째 김장을 해냈다는 자부심에 심취해
그들 앞에 좀 으스댔을 수도 있었겠다 하는 마음으로
상황을 바라봤다
오로지 이웃과 나눠먹는 그 맛 때문에
돈 들여 공력 들여 김장을 몇 차례씩 하는데
이들도 공덕 쌓는 일에 동참할 기회를 주라는 뜻이겠지
하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원 답답해서, 내가 하지 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기회도 주지 않는 일이 될 수도 있다는
넓고 넓은 깊고 깊은 뜻이구나 생각했다
며칠 손가락을 쓰는 일이 불편하겠지만
스스로 김장을 해낸 두 사람은
뿌듯하였으리
혼자해도 되는 게 있고
더불어 함께해도 되는 게 있으니
답답해도 좀 봐주며 살기로 하자
나에게 전한다
매순간 지혜롭게 하소서
옴 샨티 샨티 샨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