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서로 모른다

착각 속에 서로를 가두고

by 연꽃부용

서로서로의 삶을 살짝 들여다보며 우리는 착각 속에 빠져든다. 그를 조금 알게 됐다고, 그를 파악했다고, 그래서 그를 대하는 게 좀 편해졌거나 반대로 조금 더 불편해졌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진정 그에 대해 무엇을 알겠나, 내가.


한창 기말고사 기간이다.

글자를 읽어내는 데 힘들어 하는 중2 남학생은 노트해 놓은 학습지를 읽어내는 것도 어려워한다.

뭐든 소리와 영상으로 습득하는 게 더 용이하게 생겨먹은 뇌인지, 태중에 있을 때부터 그랬다.


큰아이를 임신했을 때 나는 나름 날카로운 직업여성으로 피도 눈물도 없는 편집자에 디자이너였다.

그 아이가 태중에 들고는 더 날카로운 사람이 됐고, 안 보이는 것도 볼 수 있을 만큼 직관력도 발달했다.


물론 그 아이를 낳은 즉시 내 능력이 아니었던 듯 사라졌고, 중2 남학생을 임신하고 전혀 다른 캐릭터가 됐다.

애 하나 딸린 아줌마에 과자 부스러기를 껴안고 하루 종일 음악을 듣고 영화를 봤다.


즐겨 먹지 않던 쫄면과 김밥이 주식이 됐다. 여분의 에너지가 없기도 했지만 크림빵에 바나나킥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당 충전에 직빵인 식품이다.


몇 가지 특이점은 꼭 제철 과일이 아닌 귀하디 귀한 철이 오기 전의 과일이 미친 듯 먹고 싶었고, 갑자기 만다라를 그리기 시작했고, 또 요가를 시작했다.

불룩한 배를 끌어안고 요가 수련을 했고, 시간이 나면 기하학 무늬를 섞어 만다라를 그렸다.

물론 이 자를 출산하고 나서는 본래 내 것이 아니었던 듯 흥미를 잃고 향후 몇 년 뒤까지 만다라와 요가 근처도 가지 않았다.


뱃속에서 아주 몹쓸 것만 섭취한 녀석은 전신아토피를 갖고 태어났고, 나는 그 덕에 큰 죄인이 됐다.

결과적으론 모친의 죄가 큰 벌을 녀석이 받은 셈이다.


전후 사정이 그러하니 아무리 기말고사라고 해서 서머리해 놓은 것을 보라고 재촉해도 볼 리 없으며, 맏딸이 그간 모아놓은 해당 학년의 자료들을 들춰볼 리도 없다.


그래도 시험인데 공부 좀 해야 하지 않아?


어머니는 왜 누나한테는 안 하면서 저한테 공부 공부 하세요?


순간 어이가 없다. 누가 들으면 내가 맨날 공부공부하는 부모인가 싶겠지만, 절대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니다.


누나는 공부는 잘하는데 사람이 되어야 할 것 같아 사람이 돼라 한 거고, 넌 사람이 먼저 됐으니까 이제 공부 좀 하란 거지! 너 인성에 대해 내가 뭐라 한 적 있어? 인성이 갖춰졌으니 이젠 공부 좀 해야지.


돼지 어머니! 집 나갈 거예요.


그래, 따듯하게 입고 나가라.


패딩 입고 갈 거예요. 밥도 먹고 나갈 거예요.


이 자와 말을 섞어봐야 다시 원점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지만 매번 말려든다.



오늘 학교에 가지 않은 개엄마가 나와 그 자가 한 치도 다름없이 같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으면 싸움도 안 되지만 문제 해결도 안 된다고 말한다.

냉정하게 말해 그 자가 나보다 한 수 위인 것을 나는 바로 인정했다.


나의 최대 장점은 초긍정, 그래서 단점도 초긍정.

심각한 문제마저도 긍정적으로 생각한 나머지 심각성을 제대로 감지하지 못한다.

점이 개엄마 눈에 보인 것이다.

앞으로는 더 자주 면밀하게 목격할 테지.

그래서 나는 이들의 독립을 학수고대하는지도 모른다.


내 방에 와서 엄마 아빠 디스해. 자기를 너무 모른대. 자기는 글자 읽는 게 정말 싫은데 엄마 아빠는 책 좀 읽으라 한다고. 자기를 너무 모른대.


알거든. 근데 힘들다고 안 해? 너도 같이 디스해 줘! 지가 지를 너무 모르네.


아, 몰라몰라. 나도 엄마 아빠를 디스하라고? 뭐라고 디스를 해.


그냥 편들어줘, 너한테라도 말하니 다행이네.


사람 속을 어떻게 다 알까.

내 엄마도 나를 모르고, 나도 엄마 속을 모른다.

우리는 그냥 조금 아는 걸로 서로를 많이 안다고 착각하며 살 뿐이다.

그래서 나는 토마토가 좋다. 속과 겉의 색이 같아서 좋다. 한 시절에는 그 토마토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한 적도 있다. 그랬다가 호되게 당한 뒤 그냥 나도 바나나처럼 살고 있다. 시퍼랬다가 노랬다가 썩은 척했다가 그래도 까면 먹을 만할 때가 많은 바나나.


우린 서로 모른다. 서로 알면 세계는 평화로울 것이다.

이 우주의 은하계를 탐색하고 싶은 욕망도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린 서로 너무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다. 그래서 자꾸 파헤치고 부수고 섞고 분리하고 난리를 치는 것이다.


서로를 너무 잘 안다고 착각해서 상처를 주고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해서 쉽게 미안하다고 말한다.


눈에 안 보이는 것들은 보려고 하지 않고, 눈에 보이는 것들만 보고 섣불리 결단을 내리고 확정하는 것이다.

결과만 보고, 과정은 덮고.


오후가 되어 '사랑하는 아들 0 0'가 전화를 했다.


어머니, 세 과목 평균 얼마게요?


평균?


네, 평균요.


80점 넘어?


너무 높은 거 아니에요?


......


아주 기분이 째진다. 본인은 기대 이상이라고 생각하고 이미 기말고사를 다 본 기분을 만끽한다.

고등학교는 갈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국어는 69점이에요!


...자, 잘했네.


잘했죠, 어머니!


어, 어. 내일 볼 거 좀 봐놔~.


네~~


저 애는 세상 시스템과 전혀 맞지 않는 생명체 같다.


그러고 보면

나 역시 홀엄마가 크게 기대하지 않던 아이였다.

홀로 사남매를 키우기도 힘들었겠지만 나 말고 다른 자식들이 곧잘 공부를 해주었고 제 할 일들을 헤쳐나가주어 굳이 키우는 데 힘들이지 않아도 됐던 나는 관심 밖에 있기도 했다.


그 무심함이 도리어 나에게는 기회였는지도 모르겠다.

과한 기대 대신 그냥 사람구실이나 하고 살아줬으면 하는 엄마의 모자란 자식 바라보는 듯했던 그 시선이 나를 더 자유롭게 꿈꾸고 자유롭게 살게 했는지도.


그 한 가닥의 마음이 모자라 보이나 절대 모자라지 않은 저 남자애를 이해하고 있는지도.

기말고사는 기말고사로.


자유로운 영혼, 너의 인성은 존경스럽다.



옴 샨티 샨티 샨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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