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니었다가, 다시 사람

중학교 2학년 구간을 지나고 나면

by 연꽃부용

어제는 사람이 아니었던 인간이 열여섯 살 남학생으로 졸업을 했다.


고등학교 1차 지망을 성적 미달로 불합격 하고, 2지망으로 원서를 넣어 안정권에 진입하며 합격을 했다.


큰아이와 같은 학교에 진학하기를 기대했지만, 사람도 다르고 학교 시스템도 녀석이 맞추기에는 레벨이 좀 높았다.


반려의 처음 반응은 그간 공부에 소홀했던 녀석의 중2 때 시절을 원망하는 말로 시작됐지만, 이내 받아들이는 단계에 도달했다.


암암리에 꽤 노력파인 성실한 큰애의 학교 생활 태도가 다소 너그럽고 유연한 성품의 녀석을 불성실하고 둔하고 농땡이인 보통의 남학생 범주보다 더한 캐릭터로 인상을 굳혔던 것을 감안하면, 1차에 떨어진 게 다행인지도 모른다는 안도의 감정이 밀려왔다.


"좋아하는 누나와 비교 당하며 다니지 않아서 다행이지"


이 말 한마디에 녀석은 "고등학교 들어가면 저는 그냥 생긴 대로 살래요"였다.



사람이 아닌 중2를 지나 3학년에 올라가면서 사람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엄마로서, 중년의 한 사람으로서 녀석을 존경하게 됐다.


어렸을 때부터 누군가의 흠을 입 밖에 내지 않던 녀석이라, 녀석의 엄마로 산다는 건 여간 성숙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느 날은 좋았다, 어느 날은 싫었다, 친했다, 싸웠다, 따돌림을 당하다, 호구가 되었다.


누가 봐도 부당한 태도를 보이는 어린 것들을 엄마 된 눈으로, 이미 훤히 보이는 비겁한 태도를 취하는 녀석 주변의 조무래기들을 깡그리 훈육하고 싶은 욕망을, 절대 내색해서도 안 됐고, 미리 구더기를 걱정하는 태도를 보여도 안 됐다.


한 마디로 녀석이 겪는 모든 상황들을 경험 이전에 단정 지어 무엇인가를 제시해서는 안 됐다. 그렇게 되는 순간 나는 먼저 삶을 경험하는 한 사람으로서 녀석에게 마이너스 피를 선고 받는다. 그 사실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떤 고민 과정에 있는 녀석의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한 마디를 보태서는 안 됐다.


그런 일련의 과정이 가장 힘들었던 시절이 지났다. 중3이 되면서 어느 정도 정신세계가 정돈되자 곧 열일곱 살 청춘이 기대되는 의식 수준이 되어 말 한 마디, 행동 하나가 아름다워졌다.


나의 십대 후반 시절, 여자애로 태어난 고단한 삶이 고통스럽다고 느꼈을 때, 사내 아이로 태어나지 않아 옆으로 밀쳐졌단 탄생 비화를 들었을 때, 다시 태어난다면 하고 꿈꿨던 멋진 남학생의 모습을 녀석에게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녀석이 멋진 삶을 살겠구나, 어쩌면 나는 녀석을 존경하며 스승으로 모실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한 사람이 내뿜는 인품은 전생의 공덕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멈추지 않는다.


녀석이 어느 날 긴 글 하나를 자정이 지난 시간 톡으로 보내왔다. 한장의 미닫이 문이 있는 너머의 방에서 잠든 줄 알았는데, 그 긴 글을 쓰고 있었던 거다.


그 글을 보고 확신하게 됐다. 녀석이 나를 앞선 경험자로서 신뢰하는구나. 조언을 구할 만한 자로 인정해 주는구나. 나는 내가 비추는 불빛의 방향과 거리를 가늠해 그 곳으로 가라고 녀석에게 강요하지 않았구나. 나는 옳고 너는 미숙하다고 말하지 않은 것을 녀석이 높이 평가했구나. 이제 언제든 대화할 수 있구나. 믿어 주는구나.


감사함이 밀려왔다. 중2병이 병일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참을 일도 아닌데 참는다고 이를 악물며 답답해 악도 쓰고, 서로의 인내심을 지적하며 반려와 다투던 순간들이 스냅 사진처럼 지나갔다.


어떤 어린 사람들은 절대 어리지 않은 의식수준을 갖고 있기도 하다. 그들은 오히려 어리숙한 행동 때문에 미련스레 보이기도 하고, 교육 시스템에 적응을 못한 발달이 덜 된 캐릭터로 보인다. 그들의 눈을 보면 아는데, 투명하고 맑다.


그 눈이 난 가장 두려웠다. 그 눈빛을 다른 색으로 물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 눈빛이 그대로 그 사람의 눈빛으로 남게 되기를 바랐다.


이제 겨우 10분의 2에 가까운 생의 구간에 진입해 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녀석도 서로를 깊이 신뢰할 수 있게 되리란 믿음이 깔린다.


아직 사람이 아닌 구간을 목전에 둔 덜 여문 육신의 훌륭한 의식을 가진 미래 주축들이여, 당신들의 부모된 역할을 맡은 과거의 사람들과 조화롭게 센 물살을 지나가기를 바란다.


부모 역할을 맡은 앞 세대나, 자식의 탈을 쓴 후세대나 처음인 듯 사는 윤회의 수레바퀴 안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것은 매한가지가 아니겠는가.


고등학교 3년의 구간을 조금 더 본인 생긴 대로 사는 데 집중하겠다는 청춘을 응원하며, 더불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버릴 청춘에 흠뻑 빠져 있는 그들의 삶에,




당신이 주인공입니다. 이 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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