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만 입학하면 된다면서요!
맞다, 중2, 미친X였을 때, 내가 그랬다.
그건 열일곱 살이란 나이와 그 시점의 힘을 믿어서였다.
지나고 보니 나 그 시절에 품었던 꿈, 기대, 생각의 크기, 깊이, 폭 등이 지금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삶의 방향성에 크게 달라진 바 없이 확장돼 온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스스로에게서 답을 도출해 낼 수 있는 그 시기만의 마법 같은 생장점에 대한 기대이기도 했다.
그 점에 있어서 아직은 믿음이 크다. 물론 다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작용한다. 그래도 나를 많이 닮은 친구니까, 다른 애들보다는 그 부분에 가깝게 작용하겠지 하는 기대가 있기도 하다.
어제 첫등교 날이었다.
개학과 입학과 고등학교 1학년 인생 첫날!
어떤 기대를 했는지 안다.
좀 더 성숙한 대화가 오가고 점잖고 젠틀한 분위기를 기대하며, 중학교 때의 찌질한 모습을 다 세척한 후의 멋있는 고삐리 생활을 그렸겠지!
하교하며 전화했다.
어머니, 저는 학교 못 다닐 것 같아요. 7시간 동안 교실 안에서 뭘 배우는 건지. 차라리 돈 벌러 가는 게 낫겠어요. 하지만 일주일 정도는 다녀볼 게요.
미친X.
아! 별 같잖한 소리하고 자빠졌네!!
속에서는 울화와 불안의 감정이 소용돌이 치고, 입 밖으로는 꾹 누른 다정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별루였어?! 밥은 먹었어?아버지는 통화했고?
네, 갈 게요. 어머니한테 토요일 날 상담 좀 할 게요.
전화를 끊고 나니 심장이 벌렁거린다. 큰애 고1 때 자퇴를 하네마네로 한 달을 괴롭히더니 유전되는 병도 아닌데 2탄이 터졌다.
1번은 입을 털기라도 하지만 이 자는 입을 꾹 다문다는 게 문제다. 그게 나다. 속으로 깊이 고민하고 결정을 내리면 행동한다. 결정을 내리기 전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야 하는 과정이 아주 어렵다. 결정하는 데에 본인의 판단이 우선해 작용했음을 스스로 느껴야 결과를 스스로 책임진다.
어렵다. 어려워.
고민 과정에 있을 때 튕겨내지 않을 수준으로 참고사항들을 던져야 한다.
녜~녜
아침, 밥을 안 먹는다. 생각이 많아지면 먹을 걸 입에 대지 않는 것도 나다. 이 자는 역시 나를 많이 닮았다.
그럼 최선을 다해 생각하고 고심해서 결론을 내리겠지. 기대하면 실망이 크다는데, 비우자 마음을.
외둘러서 1번과 3번에게 하는 얘기처럼 조언 아닌 잔소리를 풀었다.
너네는 아직 성장기잖아. 아무리 배울 게 없어 보여도 그렇게 말하는 건 너희의 오만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태도야. 세 사람만 있어도 본받을 사람이 있는데, 그럼 너희는 그 안에서 너희가 젤 잘났다고 생각한다는 거고, 어떻게 그렇게 오만하고 건방진 생각을 할 수 있지?!
욕이 나올 뻔했다.
너희가 청소년 신분으로 뭘 할 수 있지?! 보호자 동의 없이! 검정고시?! 플랜을 내놔봐. 여태 너희 각자가 보여준 생활 태도와 지금 현재의 위치가 그간 너희의 신뢰도야! 무엇으로 앞으로의 선택에 대해 납득시킬 거지?! 선택 이후 어떻게 너희 인생을 꾸려갈 건지 설명해줘. 뭔가를 요구할 거면 그간의 너희가 보여온 과정이 증거일 수밖에 없는데, 신뢰할 만한가?!
입을 꾹 다문 채 양치하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잖아요! 한다.
3호가 거든다. 검정고시 난이도 높지 않아요.
빡이 돌겠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경험 부재의 실체 없는 정보들로 무장한 지극히 모지란 것들의 발언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니!
그래?! 그건 꿈을 확고하게 정하고 정규 교육에 맞는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판단해 그 시간을 단축하고 꿈에 좀 더 빠른 속도로 다가가기 위해 선택하거나, 말 그대로 학교에 매어 있을 시간적 , 환경적 조건이 맞지 않을 때 선택하는 경우가 태반이야. 배울 게 없다는 걸 너희가 어떻게 판단하지?! 너희가 배운 건 뭐지?! 그건 너희가 교실 안에서 도망가기 위해서 아니야?! 꿈이 있어?! 검정고시로 시간을 단축하겠다고 결심했다면 시간은 어떻게 운영할 거지?!
말이 안 통한다고 판단한 듯 셋 모두 말이 없다.
자퇴서를 써서 품에 넣고 다녀! 그럼 1년 금세 가더라!
난 지금 좋아. 1학년 때랑 2학년 때랑 완전 달라!
그래, 그게 경험인 거야. 경험하지 않고 어떻게 알아! 선생님들이 아무리 인격적으로 무시하는 것 같아 싫어도 이미 교직에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희는 그분들의 삶을 존중하고 인정하고 배워야 해! 미성숙한 상태인 건 모두가 해당돼. 정도의 차이야! 너희는 말 그대로 생각이 성숙할지는 모르지만 경험 부재상태라 삐꾸야!
슬슬 자리를 비킨다.
등교시간이다.
그 놈이 다정한 인사도 없이 간다.
분명, 학교에는 성숙한 선생님이 계신다. 과거에도 지금도.
오늘, 다음주 꼭 그 숨은 선생님을 그 자가 알아보길 빈다. 보석 같은 학생도 보석 같은 선생님도 서로를 알아보았을 때나 의미가 있는 거니까.
놈은 아직 깊지 못하다.
인사 없이 나가는 그 태도 자체가 아직 스스로를 판단하는 기준이며, 미성숙한 태도임을 모른다. 고개 처드는 '나도 알 거든요'와 잘 싸워, 성숙한 한 청년이 되기를 그 자의 신에게 부탁해 본다.
문득, 여든일곱에 노환으로 돌아가신 시아버님이 생각난다. 장성한 자식들, 밥상 머리에 둘러앉아 세상 돌아가는 얘기 주고 받으며 잘난 척하던 모습까지 묵묵히 지켜보던 아버님.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문 건 아닐 터였다. 살다보면 굳이 말 안해도 되는 것들은 삼켜 버리고 시시비비 따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던 탓이리라.
청소년기가 지나고 나면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에서 나는 눈을 거두고 조금은 무덤덤하게 반응하고 싶다.
그들의 삶을 그들 스스로 경작하고, 어느 때는 계획한 대로 수확을 하고, 어느 때는 혼자 힘으로 경작할 수 없는 어떤 상황을 만나기도 하며, 온전히 본인들의 삶을 살아내고, 길을 닦아가기를 바라서다.
한 편으로는 과거 시절의 내 청소년기가 더 풍요롭고 다정했고, 그러한 풍요를 요즘 청소년들이 반토막의 반토막도 누리지 못하고 있음이 안타깝다. 의식적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해 모든 경험하는 것들에서 지혜를 터득하기를 바라는 게, 이렇게나 어려워서야.
업대로 살아진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면, 그 자는 자신의 길을 잘 찾아갈 것이다. 묵묵히 또 지켜보고 아주 틀어진 길로 접어들지 않도록만 살짝 당겨보려 한다.
샨티 샨티 샨티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