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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에 가장 파격적인 출근룩, 아일랜드 할로윈데이

by 관새로이

할로윈데이가 다가오고 있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할로윈데이의 시작이 아일랜드이다. 그만큼 할로윈데이는 아일랜드에서 빅이벤트 중 하나이다.

나는 운이 좋게도 그날 출근이었다. 근무 안 하고 놀러 가는 것도 좋지만 코스튬을 입고 일해보고 싶었다.


우리는 당일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상의하기 시작했다. 같은 날 출근하는 팀 리더가 '할로윈데이 때 우리는 무조건 코스튬을 입어야 한다'며 신신당부를 했다. 우리가 코스튬을 입지 않아도 자기는 꼭 입을 거라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작년 사진을 보여줬는데 꽤나 열정적으로 준비한 모습이었다.


그래서 그날을 위해 대만 친구와 바로 앞에 있는 코스튬샵에 들렸다. 생각보다 마땅히 괜찮은 게 없었는데 다른 것보다 퀄리티에 비해서 가격이 살벌했다. 무난하게 간호사와 의사 컨셉으로 코스튬을 맞출까 했지만 뭔가 좀 아쉬웠다.

결국 대만 친구는 꽤 품질이 좋아 보이는 피 묻은 드레스를 골랐는데 문제는 나였다. 뭘 고를지 고민하던 중에 대만친구가 막 웃으면서 어떤 한 코스튬을 가져오더니 내게 추천해 줬다.

"Jay, 너꺼 찾았어!!"


바로 '핑크색 아기 잠옷'이었다. 가격은 좀 비싼 편이었는데 퀄리티는 제일 좋았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걸 입는 게 상상하기 어려운 수준의 코스튬이었다.

대만친구에게 말했다.

"이거 진짜 오바야.. 입을 자신이 없어.."


대만 친구는 매우 확고했다.

"아니 넌 이거 무조건 입어야 돼. 이거 너꺼야 ㅋㅋ"


코스튬을 뜯어보면서 내 몸에 대보기도 하고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막기도 하고 이런 실랑이가 오고 가는 대화가 그 자리에서 10분이 넘도록 지속됐다.

아무리 용기를 내려보려고 해도 항상 '아 이건 아니다'로 결론이 났기 때문이다.

그만큼 자신감이 필요한 코스튬이었다..


고민 끝에 그걸 입고 출근하기로 했다. 이왕 할 거 그냥 제대로 하자고 다짐한 것이다.

대만 친구는 정말 사악하게도 내가 그걸 입고 걸어서 출근하기까지도 바랐다. 자기도 코스튬 입고 하루 종일 돌아다닐 거라면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것만큼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기대하던 할로윈데이가 왔다.

난 주섬주섬 코스튬을 입고 그 위에 옷을 덮어 입었다. 마치 바바리맨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출근하고 보니, 다들 재밌게 준비해 온 코스튬을 입고 일하고 있었다.

대만 친구는 피 묻은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까지 하며 당당히 걸어오고 있었다. 어학원에서 자기가 1등 먹었다고 자랑하기도 했는데 그녀의 자신감이 대단하다.


팀 리더는 로마 장군 갑옷을 입었는데 코스튬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진짜 장군 그 자체였고 화려함의 끝판왕이었다.


일본 친구는 머리스타일 때문인지 평소 해리포터 닮았다는 말이 많았는데 정말 그 코스튬을 입고 나타났다. 지금 그 사진을 봐도 해리포터 같다.


매니저는 간단한 메이크업과 액세서리를 달고 나왔다. 나중에 듣기로는 매니저는 출근 전에 2시간 동안 혼자 메이크업을 했다고 실토했다 ㅋㅋ


그러나 확실한 건, 나보다 파격적인 베스트 드레서는 없었다.

내가 출근을 하고 코스튬을 공개했을 때,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다.

많은 근육을 가지고 있는 몸이기도 해서 다들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할로윈데이는 바쁘지 않았다. 아일랜드는 신기하게도 특별한 날에 손님이 잘 오지 않는다. 특히 날씨까지 좋으면 더욱 그렇다. 다들 놀러 나가기 때문이다.

덕분에 우리는 같이 사진도 찍으면서 여유롭게 일할 수 있었다.

주문을 받을 때도 평소보다 뭔가 좀 다른 분위기였다. 손님들은 확실히 내가 범상치 않은 코스튬을 입었다는 걸 깨닫게 해 주었다.


어떤 한 할머니는 주문을 하더니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You're so brave!"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또 착해 보이는 틴에이저 친구들이 저 멀리서 오더니 나에게 같이 사진 찍자고 물어보기도 했다.

그 외에도 내 코스튬은 많은 손님들을 미소 짓게 만들면서 의도치 않게 선한 영향력을 뿜어냈다.


난 이런 순간들이 꽤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이렇게 특별한 날에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이 순간을 즐기는게 지루하고 평범한 일상 속에서 소소한 행복이 느껴졌다.

일을 마치고는 시티센터로 넘어가 친구들을 만나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차마 거기서는 내 숨겨진 옷을 보여줄 순 없었다. 사람들이 코스튬을 입고 잘 돌아다니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그와 반대로 나는 너무 화려했다.


그렇게 할로윈데이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이렇게 특별하게 하루를 보낸 것은 또 처음일 것이다. 내일은 다시 또 출근이다.

사실 할로윈이 꼭 파티처럼 신나고 엄청 재밌었던 건 아니었다.

아일랜드에 와서 이런 추억을 만들고, 특별한 하루를 보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의미 있었다. 이런 순간들이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하게 만드는 것 같다.


지금도 이 날을 회상하며 웃으면서 글을 적어 내려가고 있다. 아마 아일랜드에서 보낸 할로윈데이는 내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이다. 이런 게 인생을 사는 재미 아닐까.


*그 코스튬은 딱 한 번 입고 다시 입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고 아무도 구매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 누구도 입기 힘든 코스튬은 현재 내 방에 고이 접어 보관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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