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치속젓배달
바다가 좋다. 비릿한 갯내음이 좋다. 그 푸르름이 좋다. 성난 포말로 바위를 때리는 장쾌함이 좋고 몽돌을 쓸어내는 그 소리도 좋다. 더할 나위 없이 바다가 좋다. 태어난 곳도 바닷가 마을이었고, 이름에 물 수(水) 변이 두 개나 들어 있는 걸 보면, 물과는 뗄 수 없는 인연인가 보다. 仁者樂山 智者樂水(인자요산 지자요수)라 했던가. 지혜로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 바다 앞에 서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지랄, 지혜는 무슨. 니 이름에 물 수(水) 자 들어가서 그런다니까.”
상념을 깬 것은 친구 녀석의 목소리였다. 녀석은 갓 잡은 우럭을 능숙하게 회를 뜨며 피식 웃었다. 고등학교 1학년, 연합고사 성적순으로 매겨진 번호표처럼 만났던 네 명의 친구 중 하나. 바닷가 마을 유지의 아들이었던 녀석은 이제 제법 손맛 좋은 횟집 주인이 되어 있었다.
“근데 말이다. 살다 보면 염치없는 인간들 만날 때가 제일 황당하지 않냐?” 내가 소주잔을 채우며 물었다. “한두 번 베풀면 그걸 당연한 권리로 아는 사람들 말이야.”
내 말에 녀석은 칼질을 멈추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어. 너 같은 놈.” “뭐?” “고등학교 때 우리 엄마가 싸준 계란말이, 그거 거의 니가 다 먹었잖아. 세 번째부터는 아예 니 도시락 반찬인 줄 알더라?”
얼굴이 화끈거렸다. 스무 해가 훌쩍 넘은 기억을 그는 어제 일처럼 꺼내놓았다. ‘나 또한 타인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며, 염치없는 인간으로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부끄러운 마음 금할 길 없다.’ 거울 속 내 얼굴에서 어린 시절의 순수를 찾기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건 철저하게 자신을 위장하며 살아온 가면의 흔적이 아니라, 그냥 염치없음이 세월과 함께 두껍게 굳어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나, 이제 낚시 안 해.” 화제를 돌리려 불쑥 말했다. “왜? 손맛 좋다고 난리 더니.” “어떤 스님이 그러시더라. 살려고 버둥대는 고기를 잡는 행위가 썩 유쾌한 일이 아니라고.”
그러자 녀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었다. “야, 그럼 지금 니가 먹는 이 우럭은 불경 외우다 자진해서 횟감이 됐냐? 하여간 넌 옛날부터 남들이 뭐라 그러면 그냥 접어. 순둥이인 척은.”
‘난 아닌데.’ 속으로 되뇌었다. 모나지 않고 순둥순둥하다는 평판. 그것은 어쩌면 치열한 고민 없이 남들의 의견에 나를 맞춰온, 수양이 덜 된 소시오패스적 성향의 다른 이름은 아니었을까. 부끄러움은 다시 파도처럼 밀려왔다.
나는 결심했다는 듯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래서 나, 시월이 오면 바닷가 자전거길을 달릴 거야. 국토종주 마지막 여정, 통일전망대에서 포항까지. 저 푸른 심연을 보면서 페달을 밟다 보면, 이 부끄러운 마음도 파도에 좀 쓸려나가지 않겠냐.”
삶이라는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나약한 존재임을 깨닫고, 겸허한 마음으로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비장한 선언이었다. 내심 친구의 격려를 기대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녀석이 무릎을 탁 쳤다.
“오! 그거 진짜 좋은 생각이다!” 드디어 내 깊은 뜻을 알아주는구나 싶어 감동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럼 포항 가는 길에 우리 처갓집에 들러서 이 갈치젓 좀 갖다 줘라. 마침 잘 됐네!”
녀석은 환하게 웃으며 주방 냉장고에서 커다란 젓갈통을 꺼내 내 앞에 턱 내려놓았다. 통일전망대의 비장한 바람과 동해의 푸른 파도, 내면의 부끄러움을 씻어내려던 나의 거룩한 여정은, 순식간에 ‘친구 처갓집 갈치젓 배달’이라는 소박하고도 염치없는 심부름으로 바뀌어 버렸다.
나는 큼지막한 갈치젓 통과 친구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어쩌면 삶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거창한 깨달음과 자기 성찰의 길 끝에는 늘 ‘갈치젓 배달’ 같은 지극히 현실적인 무언가가 기다리고 있는 것. 부끄러움을 씻어내는 방법은 장엄한 다짐이 아니라, 친구의 염치없는 부탁 하나를 군말 없이 들어주는 것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소주 한 잔을 털어 넣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바다에서는 여전히 비릿한 갯내음이 불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