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희미해진 청춘의 열망에 부쳐
눈이 빠지도록 무언가를, 누군가를 기다려본 기억이 있으신가요. 우리네 삶의 서랍 속에는 저마다 애틋하고 절절했던 기다림의 사연 하나쯤은 고이 간직되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시간의 더께에 바래고 닳아, 이제는 그 대상이 무엇이었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조차 희미한 잔상으로만 남아있지는 않으신지요.
백현진의 노래 '학수고대했던 날'을 부러 찾아 듣던 때가 있었습니다. 축 늘어진 듯 무심하게 내뱉는 그의 목소리와, 꾸밈없이 날것 그대로의 감정을 툭툭 던지는 가사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눈이 빠지도록 기다리던 날이 오면은, 난 아마 지쳐 쓰러져 잠이 들 거야"라는 구절은 기다림의 역설을, 그 지독한 열망 끝에 찾아오는 허탈함과 피로감마저 정확히 꿰뚫고 있었지요. 그의 음악에 매료되어 전집을 탐닉했고, 어느 브랜드의 아카이브 행사에서는 그를 직접 마주치는 행운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무대 위나 캔버스 뒤에 존재하던 아티스트가 현실의 공간에 서 있는 모습은, 마치 내 상상 속의 인물이 잠시 현실 세계로 외출 나온 듯한 묘한 이질감과 함께 강렬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걸린 그의 거침없고 자유로운 미술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성였던 기억도 생생합니다. 정형화되지 않은 형태와 색감 속에서 저는 또 한 번 그의 내면을, 그가 노래하던 기다림의 또 다른 얼굴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눈이 빠진다'는 것, '목이 빠진다'는 표현은 단순히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위를 넘어선, 온몸과 마음을 다해 갈망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젊은 날 우리에게는 그런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며 밤새 새로고침 버튼을 누르던 순간, 약속 장소에 그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애타게 기다리던 시간, 혹은 막연하지만 언젠가는 찾아올 빛나는 미래를 향한 열망. 그 시절의 우리는 기다림의 대상이 주는 설렘과 불안감 속에서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더디게 흐르는 시간의 매 순간을 온전히 감각하며, 때로는 애태우고 때로는 희망에 부풀어 오르던 그 생생한 감정의 파고. 그것은 분명 청춘의 특권이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토록 뜨거웠던 열망과 집념은 제 삶에서 조금씩 빛을 잃어갔습니다. 간절한 목마름이라는 감정은 이제는 박물관의 화석이나 사전 속의 사어(死語)처럼 낯설고 생경하게 느껴집니다. 더 이상 눈이 빠지도록 무언가를 기다리지 않게 된 나는, 과연 안정을 찾은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무뎌진 것일까요.
기다림의 대상이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기다릴 힘을 잃어버린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경험하고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탓에, 순수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갈망하는 법을 잊어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기다림의 끝이 언제나 해피엔딩은 아니라는 것을, 학수고대했던 날이 찾아와도 백현진의 노래처럼 그저 지쳐 쓰러져 잠이 들뿐인 허무한 결말을 맞이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버렸기 때문일까요.
이제는 웬만한 일에 놀라거나 설레는 일이 드물어졌습니다. 삶은 예측 가능한 범위 안에서 흘러가고, 일상의 루틴은 안정감을 주지만 동시에 내 안의 무언가를 서서히 잠식해 가는 듯한 기분도 듭니다. 더 이상 목마르지 않다는 것은 편안함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더 이상 채워야 할 간절함이 없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심장이 터질 듯한 기다림의 고통 대신, 미지근한 온도의 권태가 삶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가끔씩 옛 사연이 담긴 서랍을 열어봅니다. 눈이 빠지도록 무언가를 기다렸던 젊은 날의 나를, 그 치열했던 열망의 흔적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비록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 시절의 간절함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었음을 압니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줄 알았던 열정의 기억은, 희미하게나마 온기를 품고 제게 말을 건넵니다.
백현진의 노래는 여전히 플레이리스트에 남아, 무심한 듯 다정한 위로를 건넵니다. 그의 노래와 그림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의 삶 또한 완벽하게 이해하거나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뜨거웠던 기다림의 기억은 이제 희미한 풍경화처럼 남았지만, 그 그림을 가끔씩 꺼내보며 지금의 나를 비추어보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가 시간의 더께를 지나오며 얻게 된 또 다른 삶의 방식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비록 다시는 눈이 빠지도록 무언가를 기다리는 날이 오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 기다림의 의미를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삶은 충분히 깊어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