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타럽 Sep 08.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17. 감동이야

 아기들은 엄마아빠가 ‘까꿍’하기만 해도 좋아서 까르르까르르 웃지요. 사춘기 시절에는 소위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뭐가 좋은지 깔깔댔습니다. 청춘시절에도 장미 한 송이, 사랑하는 이가 부르는 노래 한 곡조에도 마음이 따뜻하고 촉촉해져서 온 세상이 다 내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수록 감동하기가 점점 더 쉽지가 않습니다. 어떤 남자분은 "우리 아내는 월급이 이체될 때에만 감동해" 이런 '웃픈 말씀'도 하시던데요. 최근 내가 어떨 때 많이 감동했는지 한번 살펴보실까요? 비싸고 유명한 브랜드의 선물을 받았을 때였나요? 고급 음식점에서 비싼 음식을 먹었을 때였나요? 물론 그런 일로도 감동을 받을 수 있지만 그런 감동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우리가 툭하면 감동하던 십 대, 이십 대 청춘 시절을 돌이켜보면 우리를 감동시킨 것들은 대개 아주 작은 것들이었습니다. 친구가 곱게 말려 건네준 단풍잎 하나에도 "오!"하고 감동했었고, 떡볶이에 들어있는 어묵 한 조각을 나 먹으라고 양보해 줄 때도 "와!" 하면서 감동했었습니다. 연인이 좋아하는 노래를 녹음해서 들려줄 때도 그 어떤 비싼 선물보다 감격하며 기쁘게 들었고, 토끼풀로 반지를 만들어 손가락에 끼워주며 사랑을 고백해도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은 것처럼 가슴이 터질 듯이 감동하곤 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시절 우리 마음은 그 어떤 것에도 감동할 수 있을 만큼 항상 준비가 돼 있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아주 작은 것에도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감동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매일매일이 감동의 연속이었지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렇게 말랑말랑하던 마음에 굳은살이 생겨서, 웬만한 자극에는 무덤덤하게 살고 있진 않으신가요? 자녀들과 개그 프로그램을 볼 때도 "저게 뭐가 웃기냐?" 핀잔을 하기 일쑤고, 좋아서 깔깔대는 청소년들을 보면 같이 좋아서 웃게 되기보다, ‘좋을 때다’ 하면서 왠지 서글픔부터 밀려들진 않으세요? 또 남편이 꽃다발을 사 오면 감동은커녕, 지극히 현실적인 계산으로 이렇게 힐난하지요. “먹을 걸 사 오지, 이런 걸 왜 사와?” 남편들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아내가 “우리 근사한 데 가서 밥 먹을까?” 슬쩍 운을 띄우면서 분위기를 잡아도 “난 당신이 해주는 밥이 제일 맛있어”라면서 입을 막아버리거나, “괜히 그런 데는 값만 비싸. 그냥 집에서 밥 해 먹어” 이럽니다. 물론 힘든 세상, 가족들 건사하고 사느라 어떤 자극에도 단단해지고 강해질 수밖에 없었겠지만, 아시다시피 감동이 없는 삶을 사는 건 재미도 없고, 사람을 쉬 지치고 늙게 합니다. 매일 꽃다발을 사 오는 것도 아니고 매일 외식하자는 것도 아닌데, 좀 감동하면 어때요? "와 예쁘다! 이거 나 위해 사 온 거야? (킁킁 냄새 맡으며) 향기도 참 좋네! 내가 이 꽃 좋아하는 것 아직 기억하고 있었구나? 감동했는 걸! 고마워요!" 이러면 꽃을 사들고 온 사람도 얼마나 기쁘겠어요? 또 어쩌다 한 번 손에 물 묻히기 싫어하는 아내에게 “그래, 오늘 당신이 좋아하는 것 먹자! 당신 오늘 뭐 먹고 싶어?” 이러면 아내가 얼마나 감동하겠어요?


 사실 감동을 주는 것은 별 게 아닙니다. 내 마음이 감동에 대해 열려 있고 준비돼 있다면, 조그만 것, 아무것도 아닌 것에도 마치 아기들처럼, 사춘기 청소년처럼, 그리고 사랑에 빠진 청춘들처럼 쉽게 감동하게 됩니다. 실제 개그맨들이 제일 웃기기 힘든 사람들이 ‘자, 어디 한번 웃겨봐라’ 하는 태도로 팔짱 끼고 앉아있는 중년 이상의 관객들이라고 합니다. 개그도 소위 웃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한테 빵빵 터진다고 해요. 가령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와서, 어떻게든 많이 웃어보려고 하는 연인 관객들은, 별 것 아닌 개그에도 ‘하하 호호’ 자지러지듯 넘어간다고 합니다.     

 

 흔히 하루 중 몇 번이나 웃고 사느냐는 말을 많이 하는데, 저는 여기에 더해 요즘 하루에 내가 몇 번이나 감동을 하면서 살까 하는 생각을 해보시면 좋겠어요. 어린이들은 모든 것들이 생전 처음 접하는 것들이기 때문이어서 그런지, 말끝마다 ‘와~’ 하면서 감동을 많이 하지요. 그에 비하면 우리들은 어떤가요? 물론 늘 보고, 늘 듣고, 늘 접하는 것들이다 보니, 어쩌면 당연하게 여기게 되고 감동할 줄 모르게 됐을 수도 있어요. 더구나 바쁜 일상에 쫓겨 스스로에게 감동할 겨를을 주지 않고 계속 몰아치거나, 감동을 일상의 나약함이나 사치처럼 잘못 인식해 왔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짐작하시겠지만, 나이 들어도 감동을 많이 하면 아이들처럼 세상이 즐거워지고, 활기차고, 나아가 감사하는 마음도 커지게 됩니다. 실제 나이보다 동안인 분들은 아이처럼 잘 웃고 소소한 것에도 감동을 잘하면서 얼굴 표정근육을 예쁘게 많이 쓰는 분들입니다. 누구나 나이 들면 피부탄력이 떨어지게 마련인데요. 표정근육도 여느 근육과 같아서 잘 쓰지 않으면 빠지게 되고, 그러면 얼굴이 더 쉽게 주름지고 흘러내리게 됩니다. 현대의학의 힘을 빌려도 그때뿐이지 마음이 굳어있으면 얼굴 표정근육도 굳어서 금방 다시 늙어 보이게 됩니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경우가 많잖아요. 나이 들어도 마음이 말랑말랑해서 감동을 잘하면 자연스럽게 나이에 순응하면서도 나이보다 젊게 보이고,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다. 그동안 나도 모르게 마음에 굳은살이 생겨 감동을 잘 못하시는 분들은 얼른 마음의 굳은살을 없애주세요.      

 

 그러고 보면 그나마 마음이 비교적 닫혀 있는 분들도 비교적 쉽게 감동하는 것이 바로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 어르신들이 외국 여행 다녀오시면, 그 얘기를 한 몇 년 화제로 삼으신다고 하시잖아요.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또 저 얘기야?’ 하면서 지겨울 수 있지만, 그 얘기를 하시는 어르신들은 눈빛이 반짝반짝 생기로 가득 차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요. 그만큼 외국여행은 당신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나 자신을 위한 큰일이었기 때문에 감동적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몇 년이 지나도 외국여행 갔던 추억을 떠올리면 일상에 활력소가 되는 거겠지요. 그만큼 일상에서 나를 위해 선물 같은 일을 해서, 나 자신을 감동시키는 게 참 중요합니다. 물론 어떤 분들은 '여행도 한두 번이지 힘만 들고 여행도 심드렁해진다'는 말을 하세요. 이런 분들이 잘하시는 말이 바로 이거지요. "집이 제일 편하다" 비싼 돈 들여 여행을 해도 나 자신을 위한 선물이 되지 않는 건 감동을 가로막는 마음의 굳은살 때문입니다.      

 

 그런데 마음의 굳은살은 사실 마음만 먹으면 금방 없앨 수 있습니다. 일단 오늘 한번 작정하고 감동을 많이 해보시는 거예요. 차를 드실 때도 오늘 처음 이렇게 맛있는 차를 마시는 것처럼 ‘와~ 맛있다!’, 노래를 들을 때도 ‘와~ 좋다!’, 누가 조금만 친절을 베풀어도 ‘와~ 감사합니다!’ 이렇게요. 이렇게 자꾸 하시다 보면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면서 그동안 무채색이었던 내 인생이 저절로 감동으로 채색된 풍부한 인생으로 업그레이드됩니다.     

  어떠신가요? '감동적인 인생 만들기', 참 쉽지요? 하긴 다들 예전에는 잘하시던 거였잖아요. 참 여기에 감동 잘하는 팁(tip) 하나 더 말씀드릴게요. 춤을 출 때 힘을 빼야 동작이 제대로 된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마음도 힘을 빼야 감동을 잘할 수 있습니다. 쓸데없이  마음에 힘들어가게 하는 괜한 자존심이나 교만 같은 건 버려주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