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Love is touch, Touch is love
1970년에 발표된 존 레넌의 1집 앨범 Plastic Ono Band의 7번 트랙이면서, 1982년에 싱글로 발표된 노래가 바로 'LOVE'이지요. 80년대 초에는 이 노래가 라디오뿐 아니라 대학가 다방에서 무척 많이 흘러나왔습니다. 당시 한창 미팅을 하면서 사랑을 하고 싶어 하던 청춘들은, 이 노래가 마치 사랑을 가르쳐주는 교과서인양 시적(詩的)인 가사를 곱씹으면서 남몰래 전율하곤 했습니다. 함께 가사를 음미해 보실까요.
Love / John Lennon
Love is real, real is love
사랑은 실재하는 것, 실재하는 것이 사랑.
Love is feeling, feeling love
사랑은 느끼는 것, 느끼는 것이 사랑.
Love is wanting to be loved
사랑은 사랑받기를 원하는 것.
Love is touch, touch is love
사랑은 만지는 것, 만지는 것이 사랑.
Love is reaching, reaching love
사랑은 다가가는 것, 다가가는 것이 사랑.
Love is asking to be loved
사랑은 사랑받기를 요구하는 것.
Love is you, you and me
사랑은 너, 너와 나
Love is knowing we can be
사랑은 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
Love is free, free is love
사랑은 자유, 자유는 사랑.
Love is living, living love
사랑은 살아 있는 것, 살아있는 사랑.
Love is needing to be loved
사랑은 사랑받기 위해 필요한 것
당시 청춘들은 이 가사 중에서 특히 ‘Love is touch, Touch is love'라는 가사를, 글자 그대로 섹시한(성적(性的)인) 신체적 접촉으로 받아들여서, 그 부분을 듣고 부를 때 왠지 모를 묘한 흥분에 휩싸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이 들어보니 ‘Love is touch, Touch is love’에서, 청춘시절에 온통 집중하던 섹시한(성적(性的)인) 신체적 접촉은 그야말로 유통기한이 몇 년 되지 않는 사랑의 일부분이고, 사랑으로서 접촉하고 만지는 의미는 참 깊고 넓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실제 사랑하는 연인, 부부, 가족 사이에서는 일상에서 ‘Touch(신체적 접촉)’가 쉴 새 없이 일어납니다. 가령 얼굴에 뭐가 묻으면 닦으라는 말 대신 내가 직접 닦아주고, 어디를 갈 데도 손을 꼭 잡거나 팔짱을 끼고 가고, 등이 가렵다고 하면 옷 속으로 손을 넣어서 시원하게 긁어주고, 어깨가 아프다고 하면 어깨를 주물러 주고, 종아리가 아프다면 종아리를 주물러 주고... 사랑하는 사이이기 때문에 이런 신체적인 접촉들이 당연하게 이뤄집니다.
이에 비하면 혼자 사는 사람들은 등이 가려우면 기다란 ‘자’나 ‘효자손’ 같은 것으로 대충 긁어야 하고, 아파도 ‘열이 나나?’ 걱정스레 이마를 짚어 보는 손길도 없이 그저 혼자 끙끙 앓아야 하지요. 특히 혼자 사는 사람들이 가장 손길이 아쉬울 때는 어깨나 허리가 아파서 파스를 붙여야 할 때라고 하는데요. 오죽하면 ‘나 혼자 산다’라는 MBC 프로그램에 출연한 샤이니의 ‘키’, ‘김기범’이, 격정적인 안무로 공연을 마친 후 근육통 때문에 집에서 혼자 등에 파스를 붙였는데, 그 방법이 방송 화제가 되기도 했을까요? 김기범은 먼저 바닥에 자신의 등에 파스가 부착될 위치를 상상해서 파스를 놓고, 그대로 조심스레 그 위에 누워 파스를 등에 붙이는 데 성공했지요. 하지만 그렇게 붙인 파스가 너무 후끈거려서 얼른 떼어야겠는데, 도저히 혼자의 힘으로는 떼지 못해 애쓰는 장면이 더 화제가 됐습니다. 아마도 방송에선 나오지 않았지만 제작진의 손을 빌려 떼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처럼 아무리 혼자 사는 게 편하다고 해도, 사랑하는 사람, 가족의 손길이 필요할 때는 많습니다.
더욱이 일상에서 일어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신체적 접촉은, 마음을 참 편안하고 행복하게 해 줍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이 안아주고 업어주고 뽀뽀해 주고 쓰다듬어주고 손잡고 다독여주시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면서, 세상을 다 얻은 듯 마음이 안정되고 편안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거꾸로 자식들이 나이 든 부모님을 안아드리고, 뽀뽀하고, 손잡아 드리면, 부모님은 그 사랑의 힘으로 건강을 지키십니다. 실제 코로나시대에 노인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 계신 어르신들 가운데 많은 분들이, 자녀와의 접촉이 제한되면서 외로움을 더욱 많이 느끼게 되고, 그로 인해 면역력이 떨어지면서, 코로나나 다른 질병에 더 취약해져서 목숨을 잃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만큼 신체적 접촉은 사랑을 표현하고 느끼는 참 중요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더워도 사랑하는 사이에서는 손을 꼭 잡거나 팔짱을 꼭 끼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요. 그리고 사랑하는 사이에서의 신체적 접촉은 특권이기도 합니다. 남한테 그렇게 하면 바로 성추행 범죄가 되잖아요.
흔히 과학이 발달해서 알약 하나만 먹고 한 달을 버틸 수 있는 세상이 되어도, 인간의 본능적인 식욕 때문에 전통 그대로 음식을 해서 먹는 방식은 결코 없어지지 않을 거라는 말들을 하는데요. 애정표현도 그렇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인간은 손잡고 만지고 쓰다듬고 뽀뽀하고 끌어안고 이런 신체적인 접촉을 해야 마음의 안정과 포만감을 느끼기 때문에, 비대면 비접촉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습니다.
1993년에 개봉됐던 ‘데몰리션 맨’이라는 SF영화는 그런 점을 잘 간파했습니다. 수십 년간의 냉동생활을 끝낸 스파르탄(실베스터 스탤론)과 미래 인간 레니나(산드라 블록)가 처음에는 전자장비를 이용한 정신적 가상섹스를 하다가, 결국 원초적인 대면 접촉방식이 좋다는 얘기를 하거든요.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이에서는 신체적인 접촉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중년 이후 나이 들어 서로 소 닭 보듯이 데면데면해진 사이가 되는 건, 언제부턴가 알게 모르게 서로 신체적인 접촉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신체적 접촉이 줄어들게 되면 부부사이인데도 관계가 점점 어색해져서, 결국 ‘무늬만 부부’인 사이가 되어버립니다. 부부 사이가 서로 알 것 모를 것 다 알고, 볼 것 못 볼 것 다 보고 산 사이라고 하는 건, 신체적 접촉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신체적 접촉은 사랑하는 사람, 부부 사이에만 가능한 특권입니다. 물론 친구도 친밀한 관계이지만, 우정의 신체적 접촉과 애정의 신체적 접촉은 다르지요.
나이 들어 ‘무늬만 부부’인 사이가 되지 않으려면, 한 살이라도 젊었을 때 당장 지금부터 일부러라도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평소에 신체적 접촉이 줄어들지 않게 하시기 바랍니다. 부부 사이에 신체적 접촉을 늘리면 사랑도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