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메타럽 Sep 05.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20. 영원히 청춘으로 살기

 사람 마음이라는 게, 소위 ‘립서비스’ 인사인 줄 짐작하면서도 ‘젊어 보인다, 예쁘다, 멋있다’ 이런 얘기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나이 들수록 더 그렇습니다. 그래서 예전 같으면 젊은 사람이 연세 있으신 분들한테 ‘누님’이나 ‘형님’이라고 하면 버릇없다고 할 텐데, 요즘은 기분 좋게 듣는 분들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10여 년 전, ‘오빠만 믿어’라는 노래를 발표한 트로트 가수 박현빈 씨가, 콘서트 때무대에 등장하면서 이모 또래인 팬들과 관객들에게 ‘립서비스’로 제일 먼저 외친 말이 ‘오빠 왔다!’였을까요? 당시에는 건방질 수도 있는 그 소리를 들은 이모 나이대의 팬들과 관객들은 쓰러질 듯 좋아하면서 환호를 했었습니다. 요즘 최고 인기를 누리는 트로트 가수 임영웅도 처음에는 겸손한 이미지만 고수하다가, 이젠 이런 '반존대 스킬'로 확실한 팬서비스에 나섰다고 하더군요. 공연 중에 "젊게 사시고 싶으면 오빠처럼 생각해 주세요"라고 넉살을 떨어 팬들을 설레게 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누구나 본능적으로 늙는 걸 꺼립니다. 심지어 은발이 멋있는 것 같아서, 흰머리가 나도 염색을 안 하고 1년이 넘게 버틴 끝에 드디어 원하는 은발을 만들었는데, 지하철에서 예의 바른 한 청년이 큰소리로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하고 자리를 양보하는 바람에, 그날 집에 와서 바로 염색했다는 분도 계십니다. 마음은 여전히 청춘인 중년이고, 적어도 나는 아직 나를 절대 늙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누가 나를 ‘노인’으로 본다는 건 정말 기절초풍할 일입니다. 20대 미혼인 여성에게 '아줌마' 하고 불렀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하지만 야속하게도 시간은 흐르고 우리는 나이와 함께 늙어갑니다. 그럼 이런 ‘립서비스’ 말고, 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몇 살부터 ‘노인’이라고 생각할까요? 일단 예전처럼 ‘환갑이 넘으면 노인’이라는 시각은 없어졌습니다. 지하철 무료승차 등 각종 노인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기준연령이 만 65세여서 그렇지, 이제 60대를 노인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2021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이 생각하는 노인 시작 연령은 만 70세가 46%로 가장 많았다고 합니다. 더구나 흥미롭게도 그런 70대 분들에게 여쭤보면, 당신들도 아직 젊다고 하십니다. 실제 100세를 넘긴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백 년을 살아보니'라는 저서에서, '인생에 있어 가장 황금기가 언제였던가 뒤돌아보니 60세에서 75세 때였다'라고 쓰셨습니다. 


 아직 늙어보지 못한 청춘들은 이 말이 이해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청춘들은 장년과 노년의 차이도 잘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청춘들의 눈에는 5,60 대건 7,80 대건 그저 다 같은 나이 든 사람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실제로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고 젊게 활동하시는 분에 대해 얘기하면서 "이분 참 젊어 보이지? 이 분이 70대라는 게 믿어져?"하고 기껏 사진을 보여주면, 기대했던 대답과는 달리 청춘들은 대뜸 "아뇨. 그 나이대로 보여요" 이럴 때가 많습니다. 심지어 아무리 젊은 사람처럼 머리 염색을 하고, 청춘처럼 찢어진 청바지 차림에 비교적 얼굴과 몸매 관리를 잘한 분인데도, 젊은 사람들이 보면 귀신같이 자기들과 다르다는 걸 간파합니다. 아직 늙어보지 못한 그들에게는 청춘만이 중요해서일까요? 중년, 장년, 노년 구분 없이, 그저 나는 청춘이고 나머지는 청춘이 아닌 사람들로 보는 것 같습니다. 


 하긴 지금 50+세대도, 청춘시절에는 그런 차이를 미처 알지 못했습니다. 평균수명이 늘어나고 시대가 달라지면서 이런 변화들이 급작스럽게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나이대여도 마치 세대차처럼 차이가 날 때가 적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같은 50대, 같은 60대라고 해도 20여 년 전과 같은 마음과 태도로 사는 분들은, 지금의 70대, 80대보다 더 늙게 사는 셈입니다. 지금의 50대, 60대 중에는 20여 년 전의 30대, 40대처럼 사는 분들이 훨씬 많으니까요.


 게다가 이런 변화는 스스로 관심을 갖기 전에는 알 수 없습니다. 나이 들어봐야 알게 되고 보이게 되는 것들이니까요. 그래서 한 살이라도 더 젊을 때 미리 관심을 갖고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준비하는 분들이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게 나이들 수 있습니다. 영원히 청춘일 수는 없지만 영원히 청춘으로 살 수 있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늙음’의 기준도 연령보다는 의식 수준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심지어 요즘은 40대도 예전의 고루한 생각과 고집에 젖어 있으면, '젊 꼰(젊은 꼰대)'이라고 해서 늙은 사람 취급을 받는 시대잖아요. 그러니 나이 들어도 젊게 살려면 젊은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어야 하고, 그러자면 젊은 사람들을 이해하는 노력이 필수입니다.

 

 물론 요즘 청춘들은 이해하기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가령 극장에 가서 일반 티켓 값을 내고, 스크린에서 장작이 조용히 타는 장면만 30분을 보고 나온다면 어떻게 생각하시겠어요? 지금의 시니어 세대는 대개 어려운 시절을 겪었기 때문에, 일단 뭐든 돈값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래서 극장에 가는 수고로움과 티켓 값을 지불했으면 그에 응당한 영화를 봐야 한다고 여기는 게 보통이지요. 반면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멍 때리기’를 위해 그런 수고로움과 돈을 지불한다고 합니다. 그동안 하도 정보의 홍수 속에서 이리저리 떠밀려 살고 현실에 지치다 보니까, 이제는 그런 것들로부터 물러나 잠시 쉬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한 공중파 TV(EBS)에서도 그런 ‘멍 때리기’를 위해,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을 아무런 설명도 없이 그냥 죽 보여주는 ‘가만히 10분 멍’이라는 프로그램을 1년 6개월이 넘도록 방송했을 정도입니다. 혹시 ‘아니, 쉬고 싶으면 눈을 감고 쉴 일이지 굳이 그런 걸 보면서 쉬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바로 대화가 안 통하는 ‘옛날 어른’이 되는 겁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쉴 때도 그런 걸 보고 듣고 돈을 써야 쉰다고 한답니다.


 책도 그렇습니다. 펼쳐보면 글자는 몇 글자 안되고, 흰 여백이 훨씬 많거나 낙서 같은 그림이 주요 내용인데 값도 결코 싸지 않다면, '옛날 어른'들은 ‘그런 책을 뭣하러 돈 주고 사서 보냐’는 말씀을 많이 하실 겁니다. 반면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그런 책을 보면서 감성과 창의성에 자극을 받는다고 해요. 오히려 활자만 가득한 책은 답답하고 지루하게 느껴져서, 값이 싸도 손이 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공연이나 전시회 등도, ‘옛날 어른’의 경우 한 번 봐서 내용을 다 아는 걸 또 가서 돈 주고 보는 건 낭비라고 생각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좋아서 몇 번이고 또 가서 봅니다.

 배달 사업이 호황인 것도 비슷한 이유입니다. '옛날 어른'들은 음식을 시켜 먹을 때도 배달비가 아까와서 배달비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면, 주문하려다가도 멈칫하게 되지만, 젊은 층은 커피 한 잔도 배달비를 추가로 지불하면서 배달시켜 먹고, 그게 바로 하루 고생한 자신을 위한 위로라고 여깁니다.


 이런 몇 가지 사례만으로도 세대차를 많이 느낄 수 있지요. 그러니 '청춘'들을 이해하지 못하면 아무리 외모가 나이보다 젊어 보이고 스스로는 젊게 사는 척 해도, '청춘'들이 보기에는 어쩔 수 없는 ‘찐 노인’이 되어 버립니다. 그러니 ‘요즘 젊은것들은..’하면서 쯧쯧 혀를 찰 게 아니라, 일단 머리로라도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 때와는 다르구나 인정하고, 나아가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하시면 좋겠습니다. 청춘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야, 말이 통하고 청춘처럼 살 수 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