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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Oct 03.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49.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 찍으면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효도’를 ‘우선하는 미덕’으로 자식들을 가르쳐왔지요. 특히 아들의 경우 어렸을 때부터 아내에 대한 사랑보다 엄마에 대한 효도가 더 우선이라는 걸 은연중에 강조해서 가르치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갈등도 많았고, 그런 고부갈등 속에 아들이자 남편인 남자들은, 어머니 앞에서는 어머니 편을 들고, 아내와 둘이 있을 땐 아내 편을 드는 척을 해야 했습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남성들은 어머니와 아내라는 두 여성의 틈에서 남편의 역할과 아들의 역할을 골라하느라, 졸지에 ‘새와 쥐 사이에서 왔다 갔다 했던 이야기의 주인공’, ‘박쥐’ 같은 행세를 해야 했습니다.      


  지금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부모, 특히 어머니와 관련해서, 부부간에 갈등이나 다툼이 있는 댁이 있을 있을 텐데, 본의 아니게 박쥐 행세를 해야 하는 남성들은 참 안 됐습니다. 어찌 보면 정작 갈등의 주인공들보다 더 고달픈 신세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타고나길 융통성 있는 성정이라면 모를까, 그게 얼마나 스트레스받는 일이에요? 딴에는 둘 사이를 외줄 타기 하듯이 왔다 갔다 잘했다가 여겨도, 어느 순간 양쪽으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도 많잖아요.     


 그런데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고전적으로 흔히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질문에 대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머니와 배우자가 동시에 물에 빠지면, 혹은 남편과 자식이 동시에 물에 빠지면, 누구를 먼저 구하시겠습니까?’     


 뭐라고 답을 하셨나요? 아마 박쥐행세를 하시는 분들의 경우, 그나마 현명한 대답일 거라고 생각해서 내놓는 대답이 ‘그런 일을 대비해서 미리 수영을 배우도록 한다’ 정도일 텐데요. 정신건강의학과적으로 건강한 답은 바로 ‘배우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배우자는 바로 내가 선택한 관계이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먼저 구해서, 둘이 힘을 합쳐 어머니나 자식을 구하는 게 맞다는 거지요.      

 우리는 간혹 자식 사랑 때문에 잊고 살 때가 많은데, 어머니와 아들이 한 팀이 아니고, 부부가 한 팀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어머니와 딸,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을 조합한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모든 상황에서 부부가 우선 되어야 합니다.      


 지금은 서로 데면데면한 사이가 된 부부라 해도, 예전에 데이트하던 추억을 떠올려보면 감회가 새로우실 거예요. 풋풋하던 청춘 시절, 만물이 생동하던 봄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축제에 참여했던 추억이 있는 분들은, 이제 성인이 된 자녀에게 이렇게 옛 추억 얘기를 꺼내실 수도 있겠습니다. “너희 아빠랑 여기서 데이트했어. 그때 봄에도 지금처럼 일교차가 컸는데, 예쁘게 보이려고 낮에 하늘하늘한 옷을 입고 나왔다가, 저녁에 추워서 내가 달달달 떠니까, 네 아빠가 웃옷을 벗어서 걸쳐 줬어.” 물론 자기도 추웠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용감하게 웃옷을 벗어준 남자, 그 가상한 남자를 지금은 혹시 삼시 세끼 차려달란다고 구박하고 계시진 않으신지요? 또 배우자가 애정표현을 원하면 ‘가족끼리 왜 이래?’라고 대응한다는 유머도 있는데요. 부부는 가족애를 넘어 ‘전우애’로 뭉친 사이입니다. 이 세상에 없던 가정을 일궈 지금까지 지켜온 사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평소에 그리 애틋한 사이인 것 같지 않은 부부들도 ‘어느 60대 부부의 이야기’라는 노래를 들으면 특히 마지막 소절에서 대개 눈시울을 적신다고 합니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다시 못 올 그 먼 길을 어찌 혼자 가려 하오. 여기 날 홀로 두고 여보 왜 한마디 말이 없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김목경 작사)' 아마도 이 가사에서 비로소 ‘아, 우리가 부부라는 한 팀이었지’라고 깨닫게 돼서 나도 모르게 눈가가 촉촉해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 새삼 ‘중년인 우리 부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가?’ 한번 자가점검을 해보시지요. 부부가 서로에게 애물단지가 되면, 인생 후반전에서 가장 중요하고 많은 부분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효자가 악처만 못하다’라는 속담에는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사신 조상들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세상에 부부처럼 가까운 사이가 없지만, 아시다시피 부부는 무촌입니다. 자식이나 친척은 남처럼 돌아서서 안 보고 지내도, 자식이나 친척이라는 사실이 달라지지 않지만,. 부부 사이는 세상에서 둘도 없는 ‘님’의 사이라도, 돌아서면 너무 쉽게 바로 ‘남’이 되지요. ‘님’이라는 글자에 점하나 찍으면 바로 ‘남’이 되는 것처럼요.     

 만약 지금 부부사이가 예전 같지 않다고 느끼시면, 예전에 둘이 만나 하나가 되기로 약속했던 때를 떠올려 보시고, 얼른 그때의 반만큼이라도 상대에게 노력을 해보세요. 아니면 반의 반만큼이라도 노력을 해보세요. 어쩌면 그동안 살면서 식구라는 이름으로 당연한 듯이 서로에게 애정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살았을 수 있습니다. 예전에 데이트하던 곳을 찾아 나들이를 해보셔도 좋고, 좋아하는 음악을 같이 들어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항상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부부는 어느 상황에서도 우리 팀, 한 팀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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