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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Oct 08.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46. 별일 없이 무탈하게

 젊었을 때는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잘 모릅니다. 절은 사람들에게는 별일 없이 살아가는 게 그저 평범한 것에 불과하고, 그래서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하기가 쉬우니까요. 하긴 청춘의 에너지는 ‘별일’을 만들지 않고서는 못 견딜 만큼 강력하지요. 어쩌면 그런 에너지 덕분에 청춘들이 만들어가는 수많은 ‘별일’들로 인해, 이 세상이 그동안 발전하고 개혁돼 온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나이 드신 어르신들의 시선은 다릅니다. 일례로 어르신들한테 새해 소망을 여쭤보면 열 분이면 열 분 모두 그러십니다. “새해에도 별일 없이 무탈하면 좋겠다”. 물론 나이가 들면 청춘 시절보다 에너지가 떨어지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나이 들어 별일이 있기보다 별일 없이 무탈한 쪽을 더 선호하는 건, 결코 에너지가 떨어져서 그러는 게 아닙니다. 세상을 살아보니까 큰 행복보다는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별일 없이 무탈하게 사는 게 진짜 최고라는 걸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는 ‘별일 없이 무탈한 것’을 그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고 폄하했던 분들도, 소위 산전수전, 심지어 공중전까지 겪으면서 나이 들고 보면 ‘별일 없이 무탈한 것’에 큰 가치를 부여하게 되는 거지요.     


 특히 나이 들면 ‘별일’이 갖는 의미를 잘 간파하게 됩니다. ‘별일’은 아무리 좋은 일이라고 해도,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거든요. 게다가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세상사라는 게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있기 마련이거든요. 생각해 보세요. 좋은 일 뒤에 맞닥뜨리게 되는 안 좋은 일은 얼마나 충격이 크겠어요? 아마 몇 배나 더 충격이 클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런 세상 이치를 깨달은 옛 어른들은 좋아도 별로 크게 좋아하지 않고, 나빠도 별로 낙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감정에 휘둘려 살지 않기 위해서지요.     


 물론 감정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채색해 주고 풍요롭게 해 줍니다. 단순한 팩트(fact, 사실)인 평범한 일상도 감정이 들어가면 눈에 띄는 포인트가 되고, 반짝반짝 아름다운 광채를 더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진행자나 패널들, 심지어 방청객들조차도 방송에 대해 감정을 표현하는 리액션을 몹시 과장되게 합니다. 심지어 그래야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리액션이 과장된 프로그램은 자칫 본질을 흐리게 하기도 하고, 프로그램의 품격을 3류로 전락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모름지기 감정은 솔직하게 표현될 때 감정의 가치를 갖게 되는 거니까요.     


 '악어의 눈물'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겁니다. 악어는 장기간 물 밖에 나와있을 때 눈이 건조해져서 상하지 않도록 눈물을 흘린다고 합니다. 더욱이 눈물샘을 관장하는 신경과 턱의 저작행위를 관장하는 신경이 같아서 먹이를 씹어 삼킬 때에도 눈물을 흘린다고 해요. 체내의 염분 농도도 눈물을 흘려서 조절한다고 하는데요. 사람들은 악어가 먹이를 씹어 먹으면서 눈물을 흘리는 걸 보고, 먹이가 된 동물의 죽음을 애도하는 눈물을 흘린다고 오해하면서, 위선자나 위정자의적인 거짓 눈물을 가리키는 말로 널리 쓰이게 됐지요. 말하자면 그런 소위 '악어의 눈물'은 아무리 흘려도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웃음도 아무리 좋다고 해도, 하루종일 아무 때나 큰 소리로 웃고 있을 수도 없거니와, 그러면 정상이 아니지요. 미소도 몇 시간이나 계속 지으라고 하면 여간 곤혹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미스코리아 선발 대회 참가자들은 대회 내내 얼굴에 미소를 띠느라 얼굴 근육에 경련이 일어날 정도라고 하잖아요. 그리고 그렇게 인위적으로 짓는 미소는 아름답긴 하지만 인형의 미소 같아서 왠지 현실감이 떨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나도 모르게 짓는 미소와 비교해 보면 참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감정은 솔직하게 표현될 때 포인트로서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 건데요. 모든 게 포인트면 그건 포인트가 아니지요. 반짝반짝 아름다운 광채도 어느 한 부분이 그렇게 광채가 나야 아름답지, 전체가 다 빛나면 형태도 가늠하기 어려울 겁니다. 특히 감정은 에너지 소모도 크고 폭발력이 있기 때문에 위험하기도 합니다. 자칫 감정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그냥 날뛰게 두면, 내가 그 감정 속에 매몰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이 들면 감정의 고삐를 잡기 위해 더욱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되는 겁니다.      


 오세영 시인은 ‘원시(遠視)’라는 시에서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라고 하면서 나이 듦의 지혜를 ‘머얼리에서 바라볼 줄을 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멀리 떨어져 보게 되면 웬만한 ‘별일’은 ‘별일’로 보이지 않게 되거든요. 멀리 떨어져서 차분하게 보게 되면,  어느덧 뜨거운 감정은 다스려지고, 냉철한 지혜가 다가오게 되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겁니다. ‘별일’이나 ‘탈’이라는 것은, 내가 ‘별일’이나 ‘탈’이라고 생각해야 ‘별일’이고 ‘탈’이 되는 겁니다. 그 어떤 ‘별일’과 ‘탈’도 늘 ‘이만하길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면, 결코 ‘별일’도 아니고, ‘탈’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 늘 별일 없이 무탈하게 한 해를 보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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