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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Oct 10.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45.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예전에는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과 더불어 ‘3김 시대’를 이끌던 김종필 전 총리 등 소위 ‘정치 9단’이라고 일컬어지는 정치인들이 몇몇 계셨습니다. 이분들의 화법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이어서, 흔히 그 복심(腹心)- 본뜻을 꿰뚫고 있는 측근이 마치 ‘외국어 풀이’라도 하듯이 ‘이 말의 뜻은 이렇다’하고 풀이를 해야 했었지요. 심지어 측근들 사이에서도 그 복심(腹心)을 서로 다르게 해석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위 ‘정치 9단’들은 요즘 정치인들처럼 말실수가 잦지 않았습니다. 해석하기에 따라 다를 수 있는 소위 '두루뭉술 화법'을 구사했기 때문에, 누가 말의 꼬투리를 붙잡아 공격하면, 점잖게 그건 그런 뜻이 아니라고 하면서, 측근이 복심(腹心)을 잘못 해석해서 빚어진 해프닝으로 돌려 버리곤 해서, 오히려 말의 꼬투리를 붙잡은 쪽이 말의 깊은 뜻을 읽지 못하는 얕은 사람이 되기 일쑤였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변해서 만약 그러면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게 뭔가요?”하고 그 시절 관점으로 보면 당돌하게 요점을 캐묻는 기자들이 많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처럼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이 무엇이든 즉각적이고 직접적인 걸 좋아하는 세상이 되면서, 화법도 해석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두루뭉술 화법'보다는 톡 쏘는 ‘사이다 화법’이 호감을 얻게 됐습니다. 대중가요 가사조차도 '님 주신 밤에 씨 뿌렸네(조용필-일편단심 민들레야)' 식의 은유적인 표현보다 '방문에서 침대까지 안아주고 싶어(박진영-방문에서 침대까지)' 같은 직설적인 표현이 더 사랑받는 시대가 됐습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은 간혹 사이다의 톡 쏘는 맛에만 치중해서, 제대로 꼼꼼히 사실 확인을 하지 않고 말을 했을 때는 곤란을 겪기도 합니다. 오죽하면 요즘은 뉴스에 정치인들이 한 말들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한 건지 아닌지를 가리기 위한 ‘팩트 체크’ 시간이 따로 마련돼 있을까요? 게다가 이제는 각종 미디어에 언제 내가 어떻게 한 말들이 다 기록으로 남아 있어서, 정말 말조심을 해야 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실제 예전에 자기가 그런 말을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데, 그런 기록들이 들춰져서 잘 나가던 행보에 족쇄가 되는 경우가 있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세 치 혀의 무서움’은 이렇게 말을 밥벌이로 하는 정치인한테만 해당되는 게 아닙니다. 평범한 개인들 사이에서도 서로 상처 주고 그 상처에 소금까지 뿌리는 말을 할 때가 적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속담에는 말의 위험을 경고하는 게 많습니다. ‘세 치 혓바닥이 몸을 베는 칼’이라거나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혀 때문에 죽는다’는 말도 그런 속담들입니다. 오죽하면 예로부터 다른 사람의 입에 오르내려 어려움을 겪게 될 운수를 가리켜 구설수(口舌數)라고 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했을까요. 실제 우리 조상들께서는 자손들에게 ‘말로 업(業)을 짓지 말아라’, ‘입으로 화(禍)를 부르지 말아라’ 이런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인간이 짓는 업(業) 중에 입으로 업(業)을 짓기가 제일 쉬운데, 그 피해는 참 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정치인을 비롯해서 연예인이나 사업가 중 소위 잘 나가던 유명인이 소위 구업(口業)으로 인해 곤욕을 치르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지요. 그냥 망신만 당하면 그나마 다행이고, 그동안 자신이 갈고닦아온 이름에 오점을 남기게 되거나, 그 지위를 아예 잃어버리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얼마나 구업(口業)을 짓기 쉽고, 구업(口業)이 얼마나 큰지, 불교 경전 중에 ‘천수경’(천수경: 한량없는 손과 눈을 가지신 관세음보살이 넓고 크고 걸림 없는 대자비심을 간직한 큰 다라니에 관해 설법한 말씀)은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입으로 지은 업을 깨끗하게 씻어주는 참된 말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로 시작합니다. “아니, 그건 손오공이 도술을 부리기 전에 잘 외우던 주문인데? 여의봉야 커져라, 수리수리 마수리 얍!” 혹시 이러시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하긴 애니메이션 등에서 이 진언(眞言)이 요술이나 도술을 부리는 주문으로 많이 인용되다 보니까 그렇게 잘못 알려지게 된 거지요. 천수경을 독송할 때는 우선 그동안 지은 구업부터 반성하고 입부터 청결히 해야 하기 때문에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이렇게 세 번 독송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한편 우리나라와 지구 반대편에 있는 스페인에서도 ‘화살은 심장을 관통하지만 말은 영혼을 관통한다.”는 격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면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데는 그야말로 동서고금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두루뭉술 화법’이든 ‘팩트를 폭격하는 화법’이든, ‘사이다 화법’이든 내 입에서 나가는 말이 구업(口業)이 되지 않고, 이 세상을 향기롭고 이롭게 하려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요?     


 예전에는 이런 고사성어를 당연하게 생각했습니다. ‘양약(良藥)은 고구(苦口)이나 이어 병(利於病)이고, 충언(忠言)은 역이(逆耳)이나 이어행(利於行)이라’. ‘좋은 약은 입에는 쓰지만 병에는 이롭고, 충직하고 바른말은 귀에는 거슬리나 행동에는 이롭다’는 뜻입니다. 물론 지금도 이 고사성어의 뜻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시대가 변해서 몸에 좋아도 쓴 약은 먹기 어려우니까, 먹기 쉽게 캡슐에 넣거나 '당의정'을 입히지요. 그처럼 같은 내용, 같은 사실에 대한 말이라도, 구업(口業)이 되지 않게 하려면, 말하는 이의 품격과 듣는 이의 인격 내지는 자존심을 염두에 두고, 듣기 불편하지 않은 말로 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리고 말하기 전에 이 말을 입밖에 내놓아도 좋을까 3초만이라도 생각해 보면, 말해놓고 후회하는 일은 적지 않을까 싶네요. 아울러 이런 말을 내가 듣는다면 어떨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고 말을 하는 것도 필요하겠습니다. 특히 인간의 세 치 혀에서 나온 검이 사람을 찌르거나 세상을 더럽히기 쉽다는 사실을 잊어버리지 말고, 늘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을 마음에 되새기면서 언행을 조심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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