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기회(機會)
흔히 새해가 된다든지 취업을 하면, 부모님과 선배들이 자식이나 후배들한테 이런 덕담을 많이 하시지요. '기회가 오면 잘 잡아서 성공하길 바란다.' 그러면서 꼭 덧붙이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기회는 준비하는 사람에게만 찾아온다.' 기회가 찾아와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은 그 기회를 붙잡을 수 없다는 걸 경험으로 잘 아시기 때문에 이런 조언을 해주십니다.
이런 기회의 속성을 잘 표현한 게 바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기회의 신, ‘카이로스(kairos)’입니다. 이탈리아 토리노 박물관에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리시포스가 조각한 ‘카이로스 상(像)’이 있습니다. 이 조각상은, 발가벗고 있고, 앞머리는 덥수룩하지만 뒤는 대머리이고, 어깨와 발뒤꿈치에는 날개가 있고, 저울과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습니다. 얼핏 우스꽝스러운 모습에 웃음이 나오지만, 그 의미를 알면 가슴이 서늘해질 정도로 정신이 퍼뜩 들게 됩니다. 카이로스 조각상 아래에는 이런 소개문구가 있거든요. '내가 발가벗은 이유는 사람들의 눈에 잘 띄기 위함이고, 앞머리가 많은 이유는 내가 누구인지 사람들이 금방 알지 못하게 하면서, 내가 앞에 있을 때 쉽게 잡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며, 뒷머리가 대머리인 이유는 내가 뒤로 지나가 버리면 다시는 붙잡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어깨와 발뒤꿈치에 날개가 달린 이유는 최대한 빨리 사라지기 위함이며, 저울을 들고 있는 이유는 기회가 있을 때 저울을 꺼내 정확히 판단하라는 의미이고, 날카로운 칼을 들고 있는 이유는 칼같이 결단하라는 의미이다. 나의 이름은 기회(Opportunity)이다.'
그리스 신화의 기회의 신 ‘카이로스’는, 로마신화에서는 ‘오카시오(Occasio)’라는 기회의 여신으로 나옵니다. 기회의 여신은 한 장소에 오래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굴러가는 바퀴 위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역시 ‘카이로스’와 마찬가지로 앞머리는 풍성하기 때문에 내 앞에 다가올 때는 확 잡아챌 수 있지만, 망설이는 순간 여신이 지나가버리고 나면, 뒷머리가 없어서 잡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지나간 여신을 붙잡으려고 구차하게 따라간다면, 여신은 들고 있는 칼을 휘두른다고 합니다. 또 카이로스와 마찬가지로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어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 버립니다. 기회의 신 ‘카이로스’든, 기회의 여신 ‘오카시오’든, 한 번 지나면 붙잡을 수 없는 기회의 순간을 잘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기회는 젊은 시절에만 찾아오는 걸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흔히 ‘누구에게나 기회는 평생 동안 세 번 찾아온다’는 말을 하는데, 이 말은 평균수명이 짧았을 때의 얘기고, 지금은 백세시대잖아요. 그러니 평균수명이 50세도 안되던 시절에 평생 동안 기회가 세 번 찾아왔다면, 백세시대에는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해도 여섯 번은 넘게 찾아와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더욱이 이제는 젊을 때뿐 아니라 나이 들어도 준비하는 분들한테는 기회가 많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실제 요즘은 은퇴 후 제2의 인생에서 특별한 재능을 발휘하면서 이름을 떨치는 분들도 많잖아요.
그리고 엄밀히 말해,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내는 거지요. 준비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기회가 찾아와도 보이지 않고, 잡을 수 없다는 말은, 다르게 표현하면 기회는 결국 내가 준비하는 것이고, 내가 만든다는 얘깁니다. ‘복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일궈가는 것’이라는 말과 같은 맥락이라고나 할까요.
더욱이 기회는 위기와 함께 온다는 말도 있습니다. 성공한 분들 중에도 남들은 위기라고만 생각하고 쩔쩔맬 때 오히려 그 위기를 기회로 삼아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분들은 앞머리로 가렸어도 기회의 신을 알아볼 수 있는 눈썰미가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눈썰미는 운 좋게 그냥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닙니다. 평소에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하면서 구상했던 아이디어가 기회를 맞아 꽃 피운 거니까요. 반면에 위기를 위기로만 생각한 분들은 그동안 그런 눈썰미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에, 앞머리로 가린 기회의 신을 알아채지 못하고 위기로만 여길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심지어 소위 잘 나가는 사업가들은 '세상에 돈이 널려 있다 ‘는 말도 종종 합니다. 그간의 경험으로 어떤 것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기회가 될지 알기 때문입니다. 누구 눈에는 세상에 널려 있듯이 보이는 돈이, 누구한테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50+들이 퇴직 후 무작정 '카페나 해볼까, 치킨집이나 해볼까' 이런 마음으로 덜컥 창업했다가 망하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려면 기회를 잘 잡아야 하고, 기회를 잘 잡으려면 평소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자녀나 후배들에게만 “오는 기회를 잘 잡아서, 바라는 걸 잘 이루기 바란다”라고 덕담하지 마시고, 스스로에게도 “오는 기회를 잘 잡아서, 바라는 걸 잘 이루자”라는 덕담을 해주세요. 그리고 그런 기회를 만들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매일 조금씩 노력해 보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