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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타럽 Oct 11. 2024

볼 빨간 사추기(늙으면 어떡하지?)

42. 늙지 마세요 vs 잘 늙어 가세요

 요즘 4050 사이에 많이 하는 인사가 ‘늙지 마세요’, ‘늙지 말자’입니다. 선배들 중에 젊었을 때는 소위 잘 나가던 분인데, 어느 날 아파서 많이 늙어있는 걸 보니까 ‘나는, 우리는, 아프지 말아야겠다, 늙지 말아야겠다’, 덜컥 그런 마음이 들더라는 거지요. 게다가 ‘늙지 마세요’, ‘늙지 말자’라는 인사는, 우리가 별로 탐탁지 않게 여기는 ‘늙는다’는 말을 부정하는 인사여서 그런지, ‘젊게 살라’는 말보다 훨씬 마음에 진하게 와닿기도 합니다. 또 자연을 거스르는 말이어서 그런지, 마치 작당모의를 하듯, 왠지 이런 인사를 나누는 사이를 좀 더 친근한 사이처럼 느끼게 해 줍니다.     


 그런데 어디 늙지 말란다고 늙지 않을 수 있나요? 생로병사가 바로 자연의 이치인 걸요. 오히려 늙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역설적으로 늙어간다는 것을 더 실감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인사를 들으면 ‘어머, 내가 그동안 많이 늙었나 보다’ 하면서 거울을 꺼내 들고 보게 되고, 새삼 안 하던 걱정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차라리 모두 늙어간다는 지극히 당연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을 바탕에 깔고 ‘잘 늙어가세요’, ‘잘 늙으시길 바랍니다’라는 식으로 인사하는 편이 어쩌면 더 낫겠다는 역설적인 생각도 해 봅니다. 하지만 우리가 늙는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여기는 상황에서는, 어찌 됐건 결과적으로 늙으라는 말이 되니까 인사말로 쓰기는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왜 ‘젊음’에만 호의적이고, ‘늙음’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을까요? 아마도 산업혁명 이후 생산과 소비가 미덕인 시대를 거치면서, 거기에 저출산고령화 현상까지 겹치는 가운데, 청춘을 찬양하는 풍조가 사회에 배었기 때문일 거예요. 실제 예전에 노인이 공경받던 시대에는 나이 많은 것을 마치 ‘벼슬’처럼 여기기까지 해서, 일부러 나이를 올려 부르기도 했었잖아요. 특히 남자들 사이에서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오랫동안 '형'으로 부르면서 대접했는데 어느 날 알고 보니 자기보다 아래여서 분개했다는 일이 적지 않았어요. 지금은 나이를 줄여 부르고 싶어 하지, 늘려 부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굳이 그러는 분들은 보기 어려워졌지만요.


 하지만 젊다고 다 좋은 건 아닙니다. 멀리 예전까지 가지 않고 각자의 청춘만 돌이켜 보더라도 아마 청춘시절이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다들 삶의 방향을 몰라 방황도 많이 하고, 실수도 고민도 많이 했을 겁니다. 실제 잘 늙어가는 분들은 젊었을 때보다 나이 든 지금, 삶의 만족도가 오히려 많이 높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런 분들은 흰머리, 주름살 등의 외모는 물론, 늙음이라는 것에 초연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청춘예찬 속에서도 잘 늙어가는 분들이 늘어나면서 다행히 사회 분위기도 서서히 바뀌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 사회 분위기에 민감한 게 바로 시장의 트렌드인데, 몇 년 전만 해도 모든 게 ‘안티 에이징’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요즘은 ‘월 에이징’으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늙는다는 것을 낡아버리는 것으로 여기면 ‘안티 에이징’을 선호하게 되지만, 늙는다는 것을 익어가는 것으로 여기면 ‘웰 에이징’이 되잖아요. 시장이 참 영악한 거지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어차피 늙는 것, 이 현실을 부정하면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이 되니까, 잘 늙어가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겁니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늙음을 막을 수는 없지만, 잘 늙어가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요. 게다가 요즘은 예전과는 달리 나이 들어도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나이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은 핑계에 지나지 않는 시대가 됐다고나 할까요? 나이와 상관없이 사회활동을 하고, 심지어 외국에는 8,90대 고령에도 스카이다이빙 같은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분들이 늘고 있다고 하잖아요.

 

 더욱이 사람 기분은 긍정적인 말에 기분이 많이 좌우됩니다. 그래서 부정적인 말보다 긍정적인 말을 많이 쓰라고 하잖아요. 가령 도서관에서 ‘떠들지 맙시다’라고 하기보다는 ‘도서관에서는 조용히 합시다’ 이런 식으로 긍정적인 말을 하라는 거지요. 그러면 ‘떠들지 맙시다’라고 할 때보다 ‘조용히 합시다’라고 할 때 사람들이 더 적극적이고 자발적으로 또 기분 나쁘지 않게 정숙함을 지킬 수 있다는 겁니다.

       

 ‘늙지 마세요’도 당연히 부정적인 말입니다. 늙지 않을 수 없는데 늙지 않으려고 하면, 마음에 불안 등 부정적인 기분이 쌓이게 될 수밖에 없어요. 반면에 잘 늙어가려고 하면 자연의 이치에 역행하는 게 아니라 순행하는 거기 때문에, 늙어가면서도 마음에 용기 등 긍정적인 기분이 솟아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늙어 간다’, ‘아플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어떻게 잘 늙어 갈까'와 '잘 늙어 가려면 어떻게 건강관리를 해야 할까'부터 생각하면 좋겠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요즘 4050 사이에 유행하는 '늙지 마세요', '늙지 말자'라는 인사말도 긍정적인 인사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아무리 긍정적인 말이라고 해도 '잘 늙어 가라'는 말이 인사로 어색하다면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 잘 익어가자’, ‘잘 익어가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이렇게 인사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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