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도 키 크는 나무
요즘은 가을마다 은행 열매에서 풍기는 고약한 냄새 때문에 은행나무 가로수들을 모두 베어 없애거나, 인위적으로 수나무나 암나무만 남겨서 은행 열매가 맺지 않도록 하는 곳들이 많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단지에도 오래된 은행나무들이 여러 그루 있는데, 다행히 은행나무를 베어버리는 데 반대하는 마음 따뜻한 주민들이 많아서, 여전히 제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다만 은행나무가 점점 크게 자라서 아파트 5층 높이에 육박하게 되니까, 10여 년쯤 생장점이 있는 나무 기둥 꼭대기를 썽둥 잘라낸 적은 있습니다. 요즘은 가지치기를 이런 식으로 하면 식물학대라고 할 텐데, 어쨌든 그 후로 은행나무가 절대 키가 크지 못할 것 같더니, 자연의 힘은 정말 우리가 상상하는 그 이상입니다. 10년쯤 지나니까 잘린 생장점 옆에서 다시 가지를 내서 지금은 은행나무 키가 예전만큼 커진 걸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은행나무가 ‘내가 어떤 은행나무인데, 그까짓 시련쯤이야!’ 하는 것 같았습니다. 문득 속으로 '저러다 또 생장점이 있는 기둥 꼭대기가 썽둥 잘리면 어떡하지?' 걱정이 됐지만 전 이내 '아, 그럼 또 옆에 가지를 내서 자라겠구나 ' 하는 생각에 걱정을 접었습니다.
사실 제가 끈기도 약하고, 도전의식도 약한 '귀차니스트'여서 중도에 포기하거나 멈춰 있을 때가 많은데 오늘도 하늘을 향해 키를 키워가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또 한 가지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