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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슝이모 Aug 01. 2022

‘그럼에도’ 사는 삶이니까 아름다운 거야

태국 3등석 기차를 타면 보이는 것들

1.

기차를 탔다.

방콕, 후알람퐁 기차역.

태국의 심장 격인 이 역은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열심히 펌프질 하며 태국 방방곡곡으로 사람들을 실어 보내고 있다.

새로 지은 방수(Bang Sue) 역에 중앙역의 왕관을 넘겨주고 조만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이라는 소문이다.


태국 배낭여행을 해본 이들이라면 친숙할 이 역은 내게도 그런 곳이다.

소싯적의 나는 도미토리 숙소들을 전전하던 짠내 여행의 마니아였다.

45리터 배낭에 론리플래닛을 꽂고 현지에서 구입한 물 빠지는 옷과 쪼리를 몸에 걸치고서 제대로 감지 못하는 레게머리를 하고는 이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자가 아니겠느냐는 (개똥)여행철학으로 무장한 무모한 젊은이가 나였다.

젊으니까 무모해도 괜찮았던 그 시절, 태국에서의 배낭여행을 좋아해 자주 태국을 찾았고 그럴 때마다 여행의 시작과 끝에 후알람퐁 역이 있었다.

세월은 흘러 지금의 나는 배낭이 아닌 캐리어를 끄는 몸 편한 여행이 익숙해졌지만, 나는 종종 배낭을 둘러메던 내가 그립다.      


2.

마지막 만남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정도로 오랜만에 찾은 반가운 후알람퐁 역은 여전히 노익장을 과시하며 역사(驛舍)만큼이나 나이가 들어 보이는 노후한 기차들까지 품고 있었다.

내가 사는 동네를 관통하는 동부 노선은 외국인들이 갈만한 관광지가 없기도 하고 북부, 남부 노선과 비교해 단거리를 달리는 까닭인지 기차 좌석은 단 한 종류, 에어컨도 지정석도 없다.


400원도 안 되는 기차표를 끊고서 나는 플랫폼 의자에 앉아 기차가 아직 도착하지 않아 텅 빈 기차선로 위에 멍한 눈길을 주었다.

오래전, 배낭을 메고 이 근방 어딘가에 앉아 있었을 과거의 내가 기억나 피식거리고 있는데 내 멍한 눈에 생명체가 포착되었다.

기차선로 군데군데에 빗물인지 호숫물인지가 만들어낸 물웅덩이, 그 안에 작고 까만 물고기 떼가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언제라도 말라버리거나 인간들이 청소하면 없어질 그 의미 없는 물웅덩이에서 발견한 숨 쉬는 생명체가 그 질긴 생명이, 왜일까, 경이로웠다.

생명이란 이런 것이구나.

그 어디에서도 살아가는구나.

그곳이 어디가 되던지 최선을 다해 사는구나.     


3.

기차 출발 시간 5분 전, 내가 탈 기차가 검은 연기를 뿜으며 플랫폼으로 들어왔다.

에어컨이 없어 기차의 창은 모두 활짝 열려 있고 뒤로 젖히는 기능이란 애당초 없는 기차 좌석은 고딕체 ㄴ자처럼 생겼다.

자유석이라 보이는 아무 자리에 앉으니 기차가 바로 움직였다.

해가 많이 기울어진 오후라 차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뜨겁지 않아 다행이다.



기차의 묘미인 창가 자리에 앉아 팔꿈치를 창문에 걸치려다가 기찻길 옆에 난 나무가 너무 가까이 있어 나뭇가지가 내 살갗을 긁는 바람에 화들짝 놀랐다.

차창에 닿을 듯 가까운 건 나뭇가지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의 슬레이트 지붕 끝이 차창을 건드릴 듯 가깝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도 있겠다.

기찻길과 사람들이 사는 공간의 경계가 그만큼 모호했다.



4.

궁금했다.

사람들이 원래 살던 곳에 기찻길이 들어섰고 그럼에도 갈 곳 없는 원주민들이 그냥 눌러앉아 사는 걸까.

아니면 기찻길 옆의 집이니 땅값 비싼 방콕에서 가장 저렴한 집세라는 이점으로 사는 걸까.   

이유야 어찌했던 결론은 기찻길 바로 옆에서도 사람들이 산다는 것.

기차에서 손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도 집을 짓고 사람이 산다.     


어떻게 저런 곳에서 살지.

기차의 소음과 매연을 견디고 어떻게 살지.


그러다가 다시 고쳐 생각했다.

'그럼에도' 살아가는 거라고.

저러한 삶도 있는 거라고.


불평 없는 삶일 거라는 대책 없는 낭만적 단정은 하지 않겠다.

그저 '그럼에도' 사는 삶이 있는 거다.

나는 '그럼에도' 사는 삶이 고맙다는 생각을 했다.

    

며칠 전, 내가 가르치는 고3 태국 학생들에게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한국의 학생들은 정말로 한국 드라마에서 나오는 것처럼 새벽에 학교 가고 밤늦게까지 학원을 다니냐고.

내가 그렇다고 답을 하니 한 학생이 탄식하듯이 말했다.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살아요!’     

누군가의 눈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삶이라 해도

‘그럼에도’ 사람들은 살아간다.


기차의 속도에 맞춰 내 시야 속에 담겼다 사라지는 기찻길 바로 옆의 삶들이 내게 준 깨달음은 그랬다.

그 누구라도 ‘그럼에도’ 사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400원짜리 3등석 태국 기차 안에서 나는 자신의 자리에서 꿋꿋하게 살아가는 세상의 모든 삶에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싶어졌다.

삶을 포기하고 싶은 누군가들이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이유들이 있다는 걸 알아주기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보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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