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슝이모 Jun 27. 2022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태국의 월요병

아침.

핸드폰 알람을 끈다.

눈을 게슴츠레 뜬다.

자명종 시계 알람도 끈다.

침대에 앉아 잠을 쫓는다.


라면포트에 물을 끓인다.

커피가루를 종이필터에 털털 쏟는다.

물을 라면포트째 그 위에 한 번에 붓는다.

커피에 대한 모욕인 줄 알지만. 잘 알지만

월요일 아침의 뻔뻔함이라고 하자.


빵에 치즈를 얹는다.

여전히 눈은 반쯤 감겨 있다.


의자에 걸터앉는다.

빵을 우물우물 씹는다.

커피를 마시면서

월요일은 무슨 색 옷을 입어야 하지 기억을 더듬는다.

요일마다 복장 색깔이 정해져 있는 태국의 별난 문화.

월요일은 노란색이었지.

노란색 블라우스를 꺼낸다.

구겨진 옷자락 위에 분무기로 물을 뿌린다.

여전히 눈은 반쯤 감겨 있다.     


집을 나선다.

집 앞에서 지나가는 오토바이 택시 기사를 불러 세운다.

이십 밧.

적절한 흥정에 한마디를 더한다.

코쿤 카.

오토바이 택시는 차 행렬 사이로 요리조리 묘기를 한다.

검정 치맛자락은 바람에 날갯짓을 한다.

여전히 눈은 반쯤 감겨 있다.      


학교 정문 앞 도착이다.

경비 아저씨가 와이(태국의 합장 인사) 대신 거수경례를 한다.

얼결에 나도 거수경례를 한다.

정문에서 교무실까지 이백 미터.

걸어가는 이백 미터 안에서 마주친 한국어반 학생들이

‘안녕하세요’ 반갑게 인사말을 던진다.

간간이 ‘오하이오 고자이마스’나 ‘니하오’가 들린다.

동북아 인사의 차이를 아직 잘 모르는 학생들이다.

“아니 아니, '안녕하세요'라고 해야지!”

이제야 눈이 삼분의 이쯤 떠진다.     


출근 도장을, 아니 출근용 지문 스캔을 한다.

이런 족쇄.

이 신문물이 없는 학교들도 많다던데.

인석 때문에 외국인 교사라면 눈감아 줄

지각도 이른 퇴근도 그림의 떡이다.


교무실 문 앞에 잠시 선다.

노란 옷으로 착복한 교사들, 노란 물결이 되어 내 앞으로 흐른다.

그래도 아직 들어가지 않는다.

교무실 문 앞에 커다랗게 걸린 시와 그림을 본다.

곧 시작될 월요일 전투를 앞두고

시어들을 천천히 혀 위에 굴리며 의례 하듯 숨을 고른다.       


조용한 일     

김사인     


이도 저도 마땅치 않은 저녁

철이른 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그냥 있어볼 길 밖에 없는 내 곁에

저도 말없이 그냥 있는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오랜 나의 애송시.

명치끝까지 파고드는 아득한 시어들은

월요병 백신이 된다.     

누가

어찌 나를 알고,

이 시를 사랑하는 내가

태국의 어느 작은 학교로

월요일 아침의 묵직함을 승모근에 얹어 올 줄 어찌 알고

미리 이리 붙여 놓았을까.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

.

.

.     

월요일이 시작되었다.


교무실 문 앞에 걸려있는 나의 울트라 백신.


매거진의 이전글 태국에선 채식해도 괜찮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