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러시아 국영 방송과 푸틴의 연설은 나라가 서방의 타락에 맞서 싸우는 '요새'임을 강조하지만, 실제 모스크바는 오히려 평화롭고 화려하다. 수도에서는 '모스크바의 여름'이라는 대규모 축제가 열리며, 꽃과 공연, 아이스크림과 야외수업이 일상을 채운다. 이는 소비를 통해 시민들을 전쟁에서 멀어지게 하려는 일종의 기만이다.
동시에 푸틴은 이데올로기적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군사적 희생을 미화하며, 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대신, 시민사회의 자유를 더욱 억압한다. 새로운 법은 전시 동원 준비를 국가 기밀로 지정하고, 서방과의 접촉도 범죄로 간주한다.
전쟁은 러시아 내부에서 '멀리 떨어진 누군가의 일'처럼 여겨진다. 대규모 징병 대신 계약직 병사가 대부분이며, 전사자 대부분은 빈곤한 지방 출신이다. 수도 모스크바는 전쟁의 흔적 없이 관리된다. 이는 관료·엘리트 계층을 안심시키고, 정권의 안정을 위한 전략이다.
하지만 전쟁은 여전히 사람들의 삶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푸쉬킨 동상은 사이프러스에 가려졌고, 넴초프의 추모 장소는 꽃으로 덮였다. 반전 시위자들에게 물품을 전달하는 시민들과 화려한 거리 풍경이 한 공간에 존재하며, 시민들은 스스로의 분열을 ‘환각적 경험’이라 말한다.
전쟁을 멈추지 않는 푸틴의 집착은 권력 유지와 체제의 정당성에 뿌리내리고 있다.
사람들은 가을이 오면 이 연극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지만, 그때까지는 꽃과 공연 사이에서 자신이 가진 유일한 삶을 살고 있다.
https://www.economist.com/europe/2025/06/30/in-putins-moscow-a-summer-of-death-and-distraction
러시아는 정말 '이기는 중'일까? 전쟁 이후 푸틴과 정의의 딜레마
러시아 내부의 상황은 놀랍게도 평화롭다.
국가는 전쟁 중이고, 서방의 경제제재와 기술봉쇄를 받고 있지만, 러시아의 거리는 꽃과 조명으로 가득하다.
러시아의 2023년, 2024년 경제 성장률은 각각 3.6%, 4.1%로, 주요 선진국을 웃돈다. 전쟁 이전에 예상되던 "경제 붕괴"는 아직 현실화되지 않았다. 이는 전적으로 러시아가 에너지 자원을 자급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 세계 3위 산유국, 2위 가스 생산국으로서, 내수 수요는 충분히 충당할 수 있고, 중국·인도·터키 등의 우회 수출도 여전히 활발하다.
그러나 이 평화와 성장은 위태로운 구조 위에 얹힌 착시에 가깝다.
현재의 러시아는 에너지와 군수 중심의 전시 경제이며, 그 아래에는 심각한 기술적 불균형이 숨어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반도체다. 반도체는 전쟁 수행에 필수적인 자원이다. 정밀 유도 무기, 드론, 위성 통신, 심지어 금융 결제 시스템까지 반도체 없이 유지될 수 없다. 러시아는 90nm 이상의 구형 칩은 자체 생산 가능하지만, 5~14nm급의 첨단 반도체는 전혀 생산하지 못한다. 제재 이후 서방으로부터의 수입이 막히자, 러시아는 중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스마트폰 시장에서도 이런 변화는 뚜렷하다. 삼성과 애플은 철수했고, 그 빈자리를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압도적으로 채웠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샤오미, 리얼미, 테크노가 러시아 점유율 1, 2, 4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성장세는 계속되고 있다. 이는 러시아인의 일상 속 데이터와 통신 장비가 빠르게 중국산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구조적 우려를 마주한다.
중국의 디지털 기기는 사용자 정보가 중국 당국에 유출될 수 있다는 보안상 우려가 크다. 중국은 국가정보법(2017)을 통해 모든 민간 기업이 국가 안보기관의 요청에 협조할 법적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 법적 구조 하에서, 샤오미든 화웨이든, 민간 기업이라 하더라도 사용자 데이터를 감시, 수집, 분석할 수 있는 통로를 국가가 확보하고 있는 셈이다.
이 점은 트럼프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러시아와의 외교적 협력을 시도한 주요 배경 중 하나로 해석된다. 미국 입장에서 러시아가 중국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는 것을 막고, 잠재적인 중·러 군사·정보 협력 구조를 차단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푸틴에 대해 유화적인 태도를 취했고, 전쟁을 멈추면 제재 완화를 검토할 수 있다는 신호도 보냈다. 그러나 푸틴은 끝내 전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는 단순히 협상 조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기보다, 정권의 존립 자체가 전쟁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푸틴 체제는 오랫동안 '위대한 러시아'의 서사를 통해 국민을 결속시켜 왔다.
우크라이나 침공도 단순한 국경 분쟁이 아니라, 역사적 영토 회복, 서방의 문명적 타락에 맞선 전쟁, 나치 청산이라는 거대한 이념적 틀로 포장되었다. 그러나 현재 러시아가 실질적으로 점령하고 있는 영토는 제한적이며, 나토는 오히려 더 확장되었고, 우크라이나는 과거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무장되어 있다.
지금 멈추면 푸틴은 영광이 아니라 책임을 뒤집어써야 한다.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수십만 명의 희생이 정당화되지 않고, 강경파 내부에서 “왜 이 정도에서 그만뒀는가”라는 비판이 폭발할 수 있다.
그는 더는 물러설 수 없는 상황으로 자기를 몰아넣었다. 이 점에서, 푸틴은 현재 이스라엘의 네타냐후와 거의 똑같은 처지에 있다.
네타냐후 역시 가자 지구에서 전면전을 지속하면서 ‘전쟁 영웅’이라는 이미지로 정권의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퇴임은 사법적 처벌의 가능성과 정치적 고립을 뜻하기 때문에, 전쟁은 그에게도 정권 생존 수단이다.
두 지도자 모두 전쟁을 멈추는 순간, 정권의 균열이 시작된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전쟁의 확산을 막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결국 누군가는 협상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전쟁 범죄자’의 신변을 보장해주는 조건이 현실적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그런 사례는 있었다. 냉전 말기, 미소 간 군축 협상에서 소련 지도자들에게 일정한 면책을 암묵적으로 제공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게 정의로운 일이냐는 점이다.
푸틴과 같은 전쟁 책임자를 끝내 단죄하지 않는다면, 향후 다른 국가 지도자들도 비슷한 전쟁을 선택하는 데 두려움이 줄어들게 된다.
이는 마치 강력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처벌 없는 평화는, 단기적으로는 효과적일 수 있어도, 장기적으로는 국제질서의 도덕적 기반을 훼손할 수 있다.
그렇다고 끝까지 처벌을 밀어붙이다 보면 협상의 문은 닫히고, 더 많은 죽음과 파괴가 이어질 수 있다.
러시아 전쟁 초기, 필자는 전후에 러시아가 반드시 강력한 처벌을 받고, 다른 패권주의 국가들이 함부로 전쟁을 선택하지 않도록 하는 선례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이 바람은 국가 단위의 엄벌주의와 교화주의가 충돌하는 지점에서 복잡해지고 있다.
오늘 우리가 고민해야 할 질문은 단순하다.
당장의 평화를 위해 범죄자의 신변을 보장하는 것이 더 현실적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정말 옳은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