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화. 불 없는 화재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시끄럽게 사이렌이 울리며 소방차와 구급차 여러 대가 급박하게 건물 앞에 멈췄다. 소방관 몇 명이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가고, 곧바로 두 명이 정신을 잃은 여자를 들것에 싣고 나온다. 들것 옆으로 튀어나와있는 손톱장식이 화려하다.

두 명의 소방관이 허탈하게 걸어 나오며 건물의 주변을 툭툭 건드려 보지만 그들의 관심을 끌 만한 화재의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이거 화재신고 아니었어요? 불은 없고 여자 한 명 하고 남자 한 명만 쓰러져 있었잖아요? 게다가 남자는 그냥 치매환자 같던데 이게 왜 화재로 신고가 된 거지?”


작은 흔적이라도 찾으려는 듯 두터운 장갑을 끼고 있는 손이 벽과 화단을 신경질적으로 스치며 먼지 사이를 휘저었다.


“어디 그을음이나 열기 흔적 같은 것도 없고. 에이씨, 뭐 이렇게 먼지가 많아?”


다른 한 명도 인상을 쓰며 말했다. 그는 무전기를 들고 현장을 지휘하고 있다.


“그러게, 잘못 봤나 보지. 뭐 한두 번 겪어? 그래도 사람 둘은 살렸으니까 일단 옮기고 보자고.”


한쪽 팔로 상황을 지휘하며 무전기를 입으로 가져왔다.


“현장상황 보고, 현장상황 보고. 화재는 아니다. 환자 둘 병원 이송 예정. 상황 종료 상황 종료.”


보고를 마치자마자 짜증을 내며 투덜거린다.


“도대체 누가 화재로 신고한 거야? 아직도 심장이 다 벌렁거리네.”

“트라우마가 그렇게 쉽게 없어지겠어요?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지.”


무전기를 들고 있는 팔을 좀 더 빠르게 휘저으며 소리 지른다.


“야! 빨리빨리, 안에 한 명 더 있어.”


침을 흘리며 초점을 잃은 남자가 건물 안쪽에서 추가로 들것에 실려 나온다.

주택가 한가운데에 위치한 건물이라서 주변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그중 현장이 제일 잘 보이는 앞집 계단에는 흙과 먼지를 뒤집어쓴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가 다른 구경꾼들과 섞여 망연자실 앉아 있다. 멍한 얼굴로 건물을 보고 있지만 수많은 구경꾼들과 어둠으로 눈에는 잘 띄지 않는다.

소방관 한 명이 뛰어 다가왔다.


“정리 끝났습니다. 근데 아까 처음에 들어가자마자 바로 불꽃같은 거 엄청 떠다니는 거 봤어요? 와~, 그거 대단하데? 조금 있으니까 흔적도 없이 그냥 사라져 버렸잖아요? 내 소방관 생활 나름 오래 했지만 이런 불꽃은 또 처음이네. 뭔진 모르겠는데 진짜 멋지지 않았어요?”


무전기를 들고 있던 소방관이 한심하게 듣고 있다가 짜증을 내며 말했다.


“불꽃? 야! 너 술 좀 그만 먹자. 와이프가 집 나가서 힘든 건 알겠는데 그렇게 맨날 퍼 마시니까 일할 때 그런 게 보이지.”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그게 안보였어요? 진짜? 그 왜 작은 불꽃같은 것들, 색도 여러 가지고, 막, 막 부서지고 그랬잖아요. 그게 안보였다고? 진짜? 사방에 다.. 와, 나 진짜 미치겠네.”


양손을 허우적대며 열심히 설명하던 그의 말을 자르고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야야야, 그만하고 짐 챙겨. 너 같은 놈이 신고했나 보네. 불은 무슨. 집 안이고 밖이고 아무 흔적도 없잖아. 어디 뭐 그을린 흔적이라도 봤어? 그런 거 있음 나 좀 보여줘. 괜히 사람 놀라게 만들지 말고. 바빠 죽겠는데.”


옆에 있던 소방관도 맞장구를 친다.


“그래 맞아. 지난번에 그, 사람들 몇 명이나 죽은 화재 사고 때문에 대장 트라우마 생긴 거 몰라? 그거 치료하다 말고 사람 부족하다고 여기까지 끌려 나온 거잖아!”

“아니, 난 진짜 봤다니까? 저 안쪽에서 불꽃 반짝이는 거. 무슨 불꽃놀이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서...”


결국 무전기를 들고 있던 팔을 올리며 철수 명령을 내린다. 찜찜한 표정이다.


“어이, 철수! 모두 짐 챙겨, 철수!!”


눈을 흘기며 돌아가려다 멍하게 앉아있는 게스트하우스 주인아저씨에게 시선이 멈춘다. 먼지며 흙이 묻은 모습과 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이상한 낌새를 느끼며 그의 눈을 들여다봤지만 두 눈의 초점도 명확하지 않다.


“아저씨!”


일부 소방차가 출발하는 소리 때문에 좀 더 큰소리로 불러야 했다.


“아저씨! 괜찮으세요? 아저씨!”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으로 앉아 있던 주인아저씨는 크게 부르는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려 눈을 맞춘다. 다시 한번 큰소리로 물었다.


“괜찮으세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잘 못 알아듣는 것 같았지만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일단 안심이 됐다.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쳐다보다가 체념한 듯 다른 소방관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모두 철수. 장비 챙기고.”


떠나면서도 쉽게 눈을 떼지 못했다. 소방관이 떠나자 주인아저씨는 두 손에 얼굴을 묻는다.






좁은 원룸의 현관 옆, 오래된 체리색 싱크대 위로 수돗물이 한 방울씩 ‘똑’, ‘똑’ 떨어진다. 물방울 소리가 상대적으로 크게 들리는 아침이다. 나란히 세워진 정돈된 그릇의 느낌이 상쾌하지만, 그 위로 가로 세로 한 뼘 반 정도의 좁은 창이 마치 비염환자의 환절기 콧구멍처럼 답답하게 뚫려 있었다. 그곳으로부터 창문보다 커 보이는 밝은 기둥 모양의 햇빛이 경사져 들어왔다.

바닥에서 30센티미터 이상 툭 튀어 올라온 화장실 입구가 오래된 건물임을 증명했고, 시커멓게 변해버린 한쪽 벽에는 끈적이듯 커다란 매트리스가 바닥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붙어있었다. 그 위에 목이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있는 기영이 엎어져 자고 있다.


팔 하나가 매트리스 옆으로 스르르 흘러 내려오며 바닥으로 미끄러졌다. 원치 않던 움직임에 잠을 깼는지 기지개를 켜는 기영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피곤함이 묻어 있었다.

눈을 비비던 기영이 놀란 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순간적인 움직임에 핸드폰이 바닥으로 구르며 화면이 밝아진다. ‘8:08 (토) 요일’이 선명하다. 발작하는 것처럼 일어나던 기영은 갑자기 동작을 멈추고는 긴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을 툭 던져버렸다. 그리곤 다시 새카매진 벽에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휴~. 나 어제 잘렸잖아.”


어제는 날씨가 꽤 괜찮은 날이었다. 햇빛도 따뜻했고 바람도 솔솔 부는 것이 김밥을 싸서 소풍 가는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딱 그런 날이었다. 실제로 그런 적이 있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머릿속 이미지는 그랬다.


일상처럼 출근했던 편의점에 들어서자마자 기영은 해고 통보를 받았다. 아침부터 급작스러운 통보가 미안했는지 인심 좋은 주인아저씨는 꽤 불편한 눈빛으로 그동안의 아르바이트 비용을 하루도 미루지 않고 현금으로 쥐어 줬다.


“요즘 손님이 없어서 알바를 더 이상 못쓰게 됐지 뭐야. 자! 그동안 수고했어. 오늘 기분 좀 내라고 내가 이번엔 이체 안 하고 현금으로 찾아왔지.”


밀린 급여도 받지 못하고 당일에 쫓겨났던 다른 아르바이트들을 떠올리면 그다지 나쁘지만은 않은 상황이었다. 한편으로는 꽤 감사하다고 느껴졌다.

기영은 멍한 얼굴로 앉아 있다가 다시 이불을 뒤집어썼다. 때마침 멀리 개 짖는 소리가 들리며 그대로 잠이 들어 버렸다.






옛날식 연립주택 마당에서 어린 기영이 등과 얼굴에 커다란 갈색 점이 있는 강아지와 뛰어놀고 있었다. 바둑이였다. 갑자기 짖는 소리가 사라 지더니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바둑아~, 바둑아!”


놀라며 눈을 떴다. 꿈이었다.

바둑이는 기영이 어릴 적에 키우던 강아지였다. 그 등과 얼굴의 갈색 점은 어떤 종류의 혈통에서도 비롯되지 않은 듯했다. 바둑이는 그냥 바둑이였다. 이젠 기억도 잘 나지 않았지만, 주둥이가 약간 길었고 눈 주변에 있던 점도 등의 커다란 점처럼 갈색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바둑이의 마지막이 기억나지 않는다.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는 것조차 죄책감이 느껴지는 아침이다. 바쁘게 살다가 갑작스럽게 생겨버린 이 평온함은 뭔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당한 듯 가슴을 조여왔다. 잠깐 깜박한 사이에 세 시간이 흘러 버렸다. 서둘러 일어나려다 어지러움을 느끼며 책상을 붙들었다.


집을 나와 살았던 일 년여 동안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고민했었지만, 유일하게 떠오른 것은 음악밖에 없었다. 기영이 음악을 잘해서도 아니었고, 남들처럼 우연한 기회에 그쪽 일을 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자기 삶에서 처음으로 직접 선택한 일이었고, 그 때문에 작건 크건 기영이 느끼는 의미는 컸다.


작년 여름, 기영은 부모님께 등록금을 받아 배낭여행을 떠났다. 많이들 저지른다는 비행을 그의 일생에 단 한번 실행에 옮겼던 것뿐이었다. 그 나이 또래 학생들이 저지를 수 있는 일 중 가장 큰 사건에 속했지만 사실 입에 담기 민망할 정도의 흔해 빠진 스토리였다. 기영은 그것을 통해 삶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서 사라지고 싶었고,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에서 지워지고 싶었다. 그의 삶은 다른 사람들에게 등 떠밀려 살아온 관성이 그를 태양계 밖까지 밀어내 다시는 돌아갈 수조차 없게 돼 버린 엔진 없는 인공위성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그렇게 떠났던 여행은 그의 의지와는 반대로 그를 변화시켰다. 그 과정과 결과가 어떻게 됐든 간에 기영은 결국 사라지지 못했고, 돌아와 같은 음악 동아리의 친구들 중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밴드를 꾸렸다. 그리곤 그 밴드의 리더가 됐다.

이것도 결코 기영이 뛰어나다거나 원해서가 아니었다. 그냥 왠지 리더라는 사람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 멤버들 중에서 가장 할 일이 없는 기영에게 그 자리가 넘어왔다. 이렇게 기영은 마치 떠맡듯 무기한 임기의 선출직 밴드리더가 됐다.






서장연과 이영천이 서로 반대편 벽을 보고 기타를 치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 정체 모를 박스들이 사방 벽에 지저분하게 쌓여 있고 바닥에는 라면사리 봉지가 흩어져 있었다. 넓지 않은 공간의 가장 안쪽에 통기타 두 대와 전자기타, 앰프 세트, 키보드가 나란히 놓여있다.

서로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듯 각자 자기 기타를 들고 서로 다른 노래를 부르다 갑자기 이영천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야, 근데 기영이 그 새끼는 왜 맨날 그렇게 푹 쳐져서 다니는 거냐? 다 같이 고생하고 와서 저 새끼는 왜 맨날 혼자 쳐 죽을 것 같은 얼굴이냐고?”


상대적으로 부유한 집안의 이영천은 항상 힘들어 보이고 처져 있는 기영이 달갑지 않았다. 학비며 생활비등의 걱정이 없었던 그는 모아 놓은 돈과 등록금까지 탈탈 털어서 인생을 정리하기 위해 여행을 갔다는 것 자체도 이해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 그런 건 삼류 싸구려 영화에서 다루는 너무나도 평범한 설정이었기 때문에 그 내용 만으로도 지루하게 느껴졌다. 그런 상황에서 밴드라는 것을 하자고 사람을 모았다니.

이영천에게 밴드란 그냥 하고 싶었던 일을 해 보는 경험 같은 것이었다. 다른 두 명과는 다르게 ‘노는 것이 일이고 일하는 게 노는 것’이라는 명제가 비슷하게 맞아 들어갔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멋진 말은 밴드를 같이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서장연은 사정이 달랐다. 어릴 때부터 독립적인 생활을 해 왔던 그는 기영보다 사회에 대한 강한 내성이 있었다. 항상 약해 빠진 기영이 안쓰럽긴 했지만 자신의 과거를 떠올려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이영천에 비해 너그러웠던 것이 아니라 단지 그동안 살아왔던 환경이 그 이해의 수준을 자연스럽게 조율해 놓았던 것이다.

그는 아직도 각종 아르바이트를 겹쳐서 하고 있다. 배달, 세차, 밤에는 대리 운전까지 하면서도 남에게 부끄럽지 않게 그 일을 한다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도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생활비며 학비며 자신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고, 그렇다고 학교를 그만두자니 사회에서 요구할 최소한의 기준보다 떨어지는 것 같았다.


기영이 연습실로 들어오며 뭔가를 하고 있어야 편하다는 압박감을 전달하듯 큰소리로 물었다.


“굿모닝, 뭐 함?”

“어, 왔냐? 우리 놀지.”

“연습은 안 하냐?”

“무슨?”

“글쎄? 뭐라도······”

“미친놈. 크크크.”


당연히 아무도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런 스케줄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기영의 얼굴이 방금 뭔가 새로운 것을 깨달은 것처럼 멍청해 보였다.

안고 있던 기타의 목을 한 손으로 잡고 장연이 다가왔다. 한 발자국씩 다가올 때마다 담배 냄새가 짙어졌다. 기영은 상체를 뒤로 빼며 자신의 코를 잡는다.


“야, 너 얼굴도 시커먼데 담배 좀 그만 피우면 안 되냐? 꼭 무슨 담배 연기로 만들어진 사람 같잖아.”

“크크크, 그냐? 알았다. 내 한번 노력해 보지.”


서장연은 주먹을 불끈 쥐며 말했다. 그리곤 의자 깊숙이 등을 넣고 한쪽 다리를 꼬았다. 마지막으로 마치 기타가 자신의 몸의 일부인 것처럼 다리 위로 올렸다. 이로써 언제라도 기타를 칠 수 있는 그만의 고유한 폼이 완성 됐다. 마지막 마무리로는 쩝쩝 입맛을 다신다.


“야! 어제는 뭐 좀 해봤냐? 일찍 나가더니.”


어제 기영은 아르바이트에서 잘린 후 잠깐 들렀었지만 알 수 없는 조급함으로 바로 짐을 챙겨 나갔었다. 하지만 이후의 기억이 확실치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장연의 물음이 도화선이 되어 추적해 나갔다. 장연이 그 뒤를 따랐다.


“생각이 안 나는데? 잠시만, 음.. 어제, 나는, 아르바이트에서 잘렸다.”

“어. 그치.”

“그리고 여길 왔다가 시끄러워서 나갔는데?”

“그랬는데?”

“그리고는.”

“그리고는?”


기영이 갑자기 흥분하며 소리를 질렀다.


“아! 나 어제 알바거리 찾았어.”

“헐! 대박!! 이 새끼 아침에는 잘려서 오더니. 크크크크. 그럼 첫 월급 받으면 쏴라~잉?”

“걱정 마, 내가 알바비 받으면 비싼 라면 한 묶음 쏜다. 저 박스에 있는 라면사리 따위 말고. 그리고 연습실 월세 밀린 것도 계속 조금씩 보탤게.”


벽에 있는 박스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네. 너, 라면 한 묶음 쏠 때 우리 전통대로 그 옆에 있는 거, 그게 뭐가 됐든 추가로 넣는 거다. 그게 뭐든, 뭐, 비싼 거 걸리면 대박인 거고. 크크크.”


악보에 뭔가를 열심히 끄적거리고 있던 이영천이 말이 끝나자마자 쳐다보지도 않고 소리를 지른다.


“야, 난 라면 안 먹어! 라면 옆에 있는 게 다른 라면이겠지, 병신. 전통은 무슨. 한번 그러면 전통이냐? 지난번에 결국 다른 라면 하나 더 산 거 기억 안 나냐? 그리고 그런 거 사놓으면 서장연이 저 새끼가 다 처먹잖아. 그런 거 말고 좀 더 먹기 힘든 거 없냐?”

“크크크, 병신아. 먹기 힘든 거 한번 사놔 봐. 내가 어떻게든 먹어 낼 테니까. 그리고 이렇게 전통이 만들어지는 거지. 짜식! 저 새끼 저거 좀 아까도 곡 하나 만들었다더니, 또 표절이었어.”

“뭘 그게 표절이야 또!”

“표절 맞잖아. 그게 표절이지 다른 게 표절이냐?”

“아 씨, 아니라니까 그러네. 다시 들어봐!”

“됐다. 그만해라 쫌!”


이영천은 신경질적으로 악보를 덮어버리고 벌떡 일어나더니 기영에게 묻는다.


“야! 근데, 라면은 왜 사는 거라고?”


기영은 모두 떠오른 듯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에서 잘린 기영은 연습실이 불편했다. 신경이 곤두선 탓인지 둘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두 세배는 크고 날카롭게 들렸다. 결국 조용히 짐을 챙기고 있을 때 눈치 빠른 서장연이 물었다.


“야! 어디 가냐?”

“오늘 알바도 잘리고 집중도 안되고 해서 그냥 가려고. 혹시 아냐? 이런 기분에 조용한 곳에 있으면 명곡이라도 나올지”


악보를 보며 노래하던 영천은 쳐다보지도 않고 짧게 인사를 하고는 급하게 다음 부분을 이어서 불렀다.


“잘 가!”


딱히 갈 곳은 없었지만 집으로 다시 들어갈 생각만 해도 반지하의 꿉꿉함으로 목욕을 하는 느낌이었다.

기영은 길거리 무대를 준비하고 있는 팀들을 보며 걸었다. 큰길 바로 옆 무대에는 공연을 준비하는 팀이 앰프를 설치하고 있었고, 아직 문도 열지 않은 주점 앞 그늘에서는 세 명이 나란히 앉아 열심히 토론을 했다. 앰프를 설치하는 팀의 인원처럼 보였다.

공연을 기다리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다시 걸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어제자 밴드의 블로그 방문자는 총 열한 명. 개인 블로그보다도 못한 수준이었고, SNS에 ‘좋아요’를 눌러 준 사람도 밴드 멤버와 몇 명의 친구들뿐이었다.

SNS의 어디에서도 친구들의 사진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대신 하나도 닮지 않은 그들의 조카들, 이름도 알 수 없는 음식들, 그리고 수많은 광고들이 자리를 채웠다. 슬슬 짜증이 났지만 기영의 눈은 그 쓸모없는 정보들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결국 신경질적으로 화면을 올려 버리고는 팔을 떨궜다. 왜 궁금하지도 않은 그 사람들의 조카 사진과 음식 사진을 보고 있어야 하는 건지 아무리 좋게 생각하려고 해도 단 하나의 이유도 떠오르지 않았다. 더욱 불행한 건, 기영도 이 쓸모없는 SNS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이런 예쁜 쓰레기들 같으니라고!


“당신이 보고 싶다고요. 여러분. 애들이나 먹을 거 말고.”


핸드폰에서 눈을 떼니 특별히 눈을 둘 곳이 없다. 뭔가 정보가 들어와야 하는데 막혀버린 느낌이었다. 다시 조급함이 느껴졌다. 결국 하늘로 고개를 들었다. 정말 오랜만에 숙제를 하듯 하늘을 보는 느낌이었지만 광고로 둘러 쌓인 수많은 정보들은 그곳엔 없었다. 파란 하늘에는 옛날 바둑이와 뛰어놀던 때와 같은 하얀 구름이 천천히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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