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화. 미용실

토리네 게스트하우스

by 이작

미용실의 여러 의자 중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영천이 유일했다. 대기실 겸 휴게실에는 넓은 소파가 쇼룸처럼 놓여 있고 바리스타가 서빙하는 커피 바도 마련돼 있었다.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이라면 언제든 공짜로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 공간이었다. 직원 중 한 명이 바리스타 자격증을 가지고 있어서 손님이 원할 때 커피나 음료를 제공했다.

영천은 몇 번 와봤었는지 원장이 직접 살갑게 다가왔다. 하지만 장연과 기영은 가격표를 보고는 바로 마음을 접었다. 영천은 머리를 다듬으며 앞에 있는 거울로 공짜 과자를 먹고 있는 장연과 기영을 불만스럽게 쳐다보고 있다.

서장연이 벌떡 일어서더니 최대한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음료를 받으러 출발했다. 옆 의자로 오는 것으로 착각한 영천의 얼굴이 밝아졌다가 다시 일그러졌다. 기영이 작은 목소리로 급하게 장연을 불렀다.


“야! 야! 장연아!”

“왜?”

“너 벌써 두 번째 가는 거잖아. 그렇게 몇 번씩 가도 돼?”

“그럼. 먹으라고 있는 건데 안 주겠냐? 잠깐 기다려봐.”

“야! 야!”

“아, 왜?!”

“나두.”

“크크크.”


빈 잔을 서장연에게 넘기고 기영은 장연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폈다. 음료수 바 앞에 도착한 장연은 한잔 가득 음료수를 받더니 무척 목이 말랐던 사람처럼 한 번에 들이켰다. 두 번째 잔도 가득 채워 한번에 마시려 했지만 중간중간 힘겨워 보이는 순간이 보였다.

연달아 두 잔을 마신 후에야 컵 두 개 가득 새 음료수를 받았다. 돌아오는 그의 표정과 걸음걸이는 갈 때와는 다르게 승리를 쟁취한 장군처럼 늠름해 보였다.


“야 기영아, 저기 보이냐? 내가 갔던 테이블? 오렌지 맛도 있던데 그걸 오면서 봤네. 지금 내가 갔다 왔으니까 이번에는 네가 가라. 두 번까지는 가겠는데, 나도 사회적인 위치가 만만치 않아서. 우리 교대로 가자. 아 참! 오기 전에 거기서 한잔 마시고 받으면 두 잔 먹을 수 있다. 난 두 잔 먹고 왔지. 크크크, 봤냐?”


서장연은 자신이 대견한 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거리다가 남아있는 음료를 한 번에 들이켜고는 컵을 내밀었다.

이른 시간 탓인지 아직 미용실은 텅 비었고 대기실 소파에는 기영과 장연 둘만 덜렁 앉아있었지만 마치 둘 이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것처럼 속닥거렸다.


“그래? 알았어. 잠깐만 기다려.”


기영도 받아 든 음료를 두 번에 나누어 들이킨다.


“난 너 저기 도착하는 거 보고 우리 둘이 일행이 아닌 것처럼 화장실 좀 다녀올게. 알지? 오렌지 맛! 자연스럽게 가라.”


기영이 끄덕거리며 일어났다. 무사히 음료수를 받는 곳에 도착하는 것을 확인한 후 장연은 마치 일행이 아닌 듯, 단지 화장실만이 목적인 듯 최대한 자연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거울로 장연을 주시하고 있던 영천은 기회를 잡은 표정으로 큰 목소리로 장연을 불렀다.


“야! 책에서 스타일 좀 찾아봤냐?”


영천의 커다란 목소리가 미용실에 퍼지자 기영은 음료 테이블 쪽으로 고개를 돌려버렸고, 장연은 온몸으로 놀라며 영천을 보고 돌아섰다. 스태프들의 시선은 매장 한가운데 서있던 장연에게 집중됐다.


“어? 나? 어··· 아냐. 난 너 하는 거 보고 나중에 할 테니까 너나 신경 써라.”


장연이 애써 질문을 무시하고 화장실로 몸을 돌리자 영천이 좀 더 큰소리로 말했다.


“아 나! 진짜 그럴 거면 뭐 하러 왔어? 너희 그런 거 계속 공짜로 먹고만 갈 거냐? 벌써 몇 번짼데! 너 자꾸 그러면 대머리 되거덩? 그러면 이런데 오고 싶어도 못 온다 너.”


원장과 대기하던 보조 직원들의 시선까지도 자연스럽게 장연에게 쏠렸다. 한두 명은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탄산음료 테이블로 고개를 돌리고 있던 기영은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 작전으로 그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휴게실 한가운데에 벌떡 일어나 있는 장연은 벗어날 방법이 없었다. 미용실 내의 모든 시선들이 서장연을 향해 꽂혔다. 이영천은 거울로 쏘아보며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아니, 그게 아니고···. 지금 막 그쪽으로 가려고 했지.”


서장연의 목소리가 작아지며 사람들의 눈빛에 묶인 채 끌려가듯 영천의 옆자리로 다가와 앉았다.


모두의 시선을 장연으로부터 분산시킨 건 문 앞에서 들려오는 승용차 소리였다. 정문에서 최대한 가까이 검은색 고급 승용차가 주차를 시도했다.

직원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뒤로 기태가 들어왔다. 큰 키, 짧은 머리에 슈트를 입은 그의 손에는 하얀색 플라스틱 약통이 들려 있고 알약 하나를 꺼내 물 없이 입에 넣는 모습이 꽤나 불량스럽게 보였다. 기태는 레이더를 가동하듯 매장 전체를 훑더니 입 꼬리가 자연스럽게 올라갔다. 타깃을 발견한 포식자의 모습이었다. 단거리 달리기의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처럼 우두득 알약을 씹어버리고는 타깃을 향해 발을 옮겼다.


“어이, 원장님 안녕하세요! 나 머리 좀 하려고 왔는데. 지금 사람 없으니까 되죠?”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원장이 아니었다. 원장은 영천의 머리를 다듬으며 기태를 주시하고 있었지만 그는 원장이 서있던 반대쪽 끝, 은정이 서 있는 방향으로 거침없이 걸었다.


은정은 이 미용실의 대표급 헤어 디자이너다. 그녀의 기술 및 트렌드를 따라가는 안목은 다른 누구보다도 앞서 있었지만 과거 사고의 후유증으로 인해 더 이상 그녀의 얼굴에서 미소를 볼 수 없었다. 특히 최근 육 개월 동안은 그 어떤 표정도 찾을 수 없었다. 서비스업에는 치명적이었지만 그럼에도 원장이 그녀를 기다리는 데에는 그녀의 실력이나 정보를 따라갈 수 있는 사람이 없었고, 아직 그녀를 찾는 단골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손님, 여기는 예약하셔야 해요.”


원장이 최대한 부드럽게 말해 보지만 기태는 비웃듯 대답했다.


“에이, 왜 이러셔. 한두 번도 아니고. 여기 사람 있네. 자리는 비었고. 오래 안 걸리니까 시간 있을 때 쫌만 다듬읍시다. 네?”


기태가 찾아오면 은정은 증상이 악화되곤 했지만 다른 디자이너로 교체하려 하면 기태는 버럭 화를 냈다. 하지만 은정에게는 삐딱하게 굴긴 했어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장에서 섣불리 소란을 일으키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잠시 들렀다 가더라도 꼭 카운터에 오만 원짜리 두 장을 던져두고 나갔다. 이런 이유로 원장에게는 버릴 수 없는 카드 같은 존재였다.


“알죠? 내 스타일, 자알 해줘요~.”


원장은 인상을 쓰며 은정에게 가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매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했다. 은정은 조금의 표정 변화도 없이 기태의 깨끗하게 손질 돼 있는 머리를 확인하고는 거울을 통해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드라이 다시 해드려요?”


기태는 얼굴 여기저기를 비춰보며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아니! 머리 자른 지 벌써 삼일 됐으니까 내 스타일대로 잘라 달라고요. 아, 사람이 그렇게 와도 담당자가 스타일을 모르네. 이건 뭐 눈치가 없는 건지.”

“네.”


예상했다는 듯 가까이 있는 카트를 당기며 다가가자 기태는 누가 봐도 어색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핸드폰을 들었다.


“어엇!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아 그러니까 빨리 좀 오지. 딱 오 분 줄 테니까 빨리 좀 해줘요?”

“네? 그럼 다음에 하세요. 그 시간엔 안 돼요.”

“지금 빨리 해야 되니까 그렇지. 이럴 시간 있으면 빨리 좀 합시다. 빨리 좀.”


결국 은정은 기태의 목에 천을 둘렀다. 준비하는 내내 기태는 천이 더럽다느니, 목이 간지럽다느니 하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 은정은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침착하게 기태의 머리를 다듬기 시작했다.


서장연은 화장실이 급한 듯 몸을 배배 꼬며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지만, 기영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음료수 한 잔을 추가로 받아 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거울을 통해 장연과 눈이 마주치자 장연의 컵을 살짝 들며 입 모양으로 ‘오렌지’하며 웃어 보인다. 작전 성공을 자축하는 모습이었다. 화장실이 급한 장연에게는 음료수를 보는 것만으로도 마신 것 같은 효과가 나타났다.


기영이 과자를 입에 넣고 책을 펴는 순간 기태와 은정 간의 실랑이가 벌어졌다.


“저기요! 좀 빨리 할 수 없어요? 지금 급하다고 몇 번을 말해? 벌써 오 분 넘었네. 급하다고!”


반대쪽 끝에 앉은 장연이 작은 목소리로 동의하며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내 말이···, 급하다니깐.”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금 최대한 빠르게 하고 있는 거라서 자꾸 움직이시면 안 돼요.”

“처음 왔을 때부터 바쁘다고 빨리 해 달라고 하잖아요! 그냥 좀 빨리 하라고!”

“네. 손님 근데 자꾸 움직이시면 머리가 흐트러져서.”

“아! 짜증 나네 진짜.”


누가 봐도 은정에게 괜한 트집을 잡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마음먹고 방해를 하는 것처럼 행동 하나하나에 사사건건 짜증을 내며 계속 자세를 바꿔 앉았다.


기영이 무심코 잡아 든 스타일 책자에는 여러 모델들의 다양한 머리 모양과 가격이 적혀 있었다. 평소에 기영이 하던 가격의 두 배가 거뜬히 넘었다. 처음 한두 페이지 이후로는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스타일보다는 가격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은정의 짧은 비명이 들렸다. 장연과 영천은 미용사들에게 머리를 잡혀 있어서 고개를 돌리려다 제지당했다. 특히 장연은 무료 음료 및 과자 리필의 책임을 지듯 머리를 세게 붙들린 상태로, 미용사의 시선만 은정에게 고정 돼 있었다.

은정의 왼손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은정은 다급하게 손을 씻어내며 응급 처치 박스를 찾았다.


“아 뭐야. 급하다니까. 어이 김원장님! 여기 담당 왜 이래요? 바쁘다니까 일부러 그러나?”


원장이 은정을 쳐다보며 말했다.


“손님. 사고가 좀 났네요. 얘가 잘하긴 하지만 왜 매번 이선생만 찾고 그러세요? 다른 디자이너들도 잘하는 애들 많은데. 그리고 뭐, 안 해도 깔끔하신데.”

“뭐요? 그럼 내가 잘못했다는 거야? 미용실에서 내가 원하는 사람한테 내가 원하는 머리 하겠다는 데 그게 잘못된 거냐고? 바쁘다고 처음부터 얘기했는데, 이게 다 내 잘못이라고?”


김원장은 이런 손님이 처음이 아닌 듯 침착한 목소리로 대응했지만 기태는 그 말이 오히려 듣기 싫은 것처럼 말을 끊어 버렸다.


“아니, 손님. 그래서 처음에 내가 다른 아이를···”

“아 됐고, 빨리 마무리나 해 줘요. 나 바쁘다니까.”

“네. 정리는 다 됐으니까 다른 디자이너가 금방 마무리할 거예요. 잠시만 기다리세요.”


김원장은 기태의 머리를 힐끔 보더니 김 선생을 부른다. 김 선생이 인상을 쓰며 다가오자 기태의 머리 특정 부분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김원장 역시 김 선생을 향해 인상을 쓰고 있다.


“은정이가 대부분 다 정리했으니까 여기하고 여기 뒤처리만 좀 해줘.”


상처 때문에 손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은정의 구급 박스에서 약통이 떨어져 굴렀다. 마침 추가 음료수를 또 받으러 가던 기영의 발에 와서야 멈춘다. 은정에게 약통을 건네는 순간 그녀의 유난히 화려한 손톱장식이 기영의 눈에 띄었다. 손을 많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헤어 디자이너에게는 볼 수 없는 화려한 장식이었다. 은정은 간단히 인사를 하고는 직원휴게실이 있는 안쪽 문으로 사라져 버렸다.


서장연이 영천과 같은 눈빛으로 기영을 보고 있다가 소란이 마무리되자 큰 소리로 묻는다.


“야! 기영아! 너도 공짜 그만 먹고 여기 옆자리로 좀 오지? 크크크.”

“어? 아, 그래야지.”


장연은 아직도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표정은 굳어 있었지만 두 눈에는 야릇한 웃음을 띠고 있었다.


기태의 차가 떠나자 김 선생은 짜증 섞인 투정을 부린다.


“아~ 원장님, 저 사람 왜 자꾸 받아요? 은정 언니가 싫다고 했다고 계속 찾아와서 저러잖아요.”

“뭐 저런 사람이 한둘이야? 전에는 저런 사람들 잘 처리하더니 요즘은 은정이 쟤 왜 그래? 난 오히려 걔가 더 이상하다. 둘 문제는 둘이 끝내야지 영업장까지 와서 이게 무슨 난리야? 야! 넌 뭐, 장사 안 할 거야? 사람 가려 받아가면서? 너도 가서 일해. 저기 다음 분 음료수만 계속 드시고 있잖아.”


김원장의 손은 기영을 가리키고 있다. 마치 손가락 끝에서 특수한 광선이라도 나와 찌르는 듯 기영은 괜히 움찔했다.


“알았어요. 그래도 저 인간 오면 전 안 할 거예요. 그냥 싫은 거하고는 다르다고요! 올 때마다 기 빨리는 느낌이야.”


그리곤 기영에게 다가와 친절하게 말했다.


“저, 죄송해요. 이리 오세요.”



기태가 떠나기 직전, 자동차의 창문을 조금 열고 섬뜩한 표정으로 미용실 안을 노려보며 창문이 닫혔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기태의 눈이 잠시 검은색으로 변했다가 돌아왔지만 아무도 그의 시선을 알아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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