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교를 넘어, 목소리로 세상을 짓는 사람들
마이클 부블레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건 어느 늦은 밤,
운전 중 라디오에서 우연히 흘러나온 노래였다.
달콤하면서도 부담스럽지 않은 저음,
그 안에서 오랜만에 진짜 ‘목소리의 매력’을 느꼈다.
그의 보컬은 스윙이 아니라 부드러운 보사노바의 결에 가까웠다.
살짝 뒤로 눌린 리듬, 여유로운 호흡, 그리고 미소 짓는 듯한 톤.
그는 멋을 부리지 않아도 멋이었다.
프랭크 시나트라보다 앞서 크루너의 미학을 세운 냇 킹 콜의 따뜻한 정서를 이어받아,
오늘의 언어로 낭만을 노래하는 사람이었다.
헤르만 프라이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그 따뜻하고 반질반질한 음색, 고급스러운 울림에 단번에 매료되었다.
그 시절 나는 음악 잡지사에서 초벌 번역을 하며
리트(Lied)를 들으며 독일 성악의 세계를 배워가던 중이었다.
그러다 프라이를 만났다.
모차르트의 〈Così fan tutte〉 중 아리아
〈Rivolgete a lui lo sguardo〉에서 그는 빛이 났다.
그의 목소리는 화려하지 않았지만, 듣는 이를 편안하게 감싸 안았다.
그 음색 속에는 언어의 감정과 음악의 품격이 동시에 숨 쉬고 있었다.
그는 노래를 연기하지 않았고, 그 노래 속 인물로 ‘살아 있었다.’
코지 판 투테를 들으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다.
바로 〈쇼생크 탈출〉이다.
영화 속에서 울려 퍼지던 이중창의 순간,
나는 이상하게도 헤르만 프라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절망의 감옥 속에서도 한 줄기 희망처럼 퍼져나가던 그 목소리,
그 따뜻한 인간적 음색이 바로 프라이의 세계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목소리는 시대도, 언어도 다르지만 닿아 있다.
부블레는 일상의 낭만을, 프라이는 인간의 존엄을 노래한다.
둘 다 기교보다 진심을 택하고, 노래를 이야기로 만든다.
그래서 그들의 노래를 듣고 나면 우리는 이렇게 말하게 된다.
“노래가 좋다”가 아니라 “그 사람이 좋다”고.
- Recommended Listening
Hermann Prey – Rivolgete a lui lo sguardo (Mozart, Così fan tutte)
Michael Bublé – Quando, Quando, Qua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