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부할 수 없는 건반주자에 관하여
브래드 멜다우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한밤중이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Exit Music (for a Film),
그 음들은 조심스럽게 시작했지만 금세 내 안을 휘감았다.
멜다우의 피아노는 감정을 부풀리지 않는다.
대신 한 음, 한 음이 생각하듯 흘러간다.
그의 연주는 고백보다 깊고, 설계보다 인간적이다.
감정을 터뜨리기보다 승화시키는 사람.
빌 에반스가 남긴 내면의 서정을 한층 더 내밀하게 확장한 피아니스트.
그게 멜다우였다.
그의 왼손은 늘 이야기한다.
오른손의 선율을 따라가는 대신, 대위적으로 맞서며 새로운 공간을 만든다.
그 대화적인 구조 속에서 감정은 숨 쉬고, 음악은 생각이 된다.
그래서 After Bach 시리즈는 멜다우의 세계를 가장 잘 보여준다.
그는 바흐의 프렐류드와 푸가를 재구성하며,
즉흥과 설계를 넘나드는 **‘사유하는 재즈’**를 완성했다.
2023년 발표한 The Folly of Desire에서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와 함께 클래식 리트와 재즈의 경계를 무너뜨렸다.
그의 피아니즘은 결국, 감정을 사유로 승화시키는 여정이다.
다이애나 크럴은 다른 결의 매혹을 지닌다.
처음에는 그녀의 외모와 목소리에 놀랐지만,
더 오래 남은 것은 건반의 품위 있는 여백이었다.
그녀의 피아노는 간결하고, 절제되어 있으며, 노래와 한몸처럼 움직인다.
특히 All for You – A Dedication to the Nat King Cole Trio를 들었을 때,
나는 그녀가 단지 냇 킹 콜을 존경한 것이 아니라
그의 피아노-보컬 계보를 계승한 연주자임을 느꼈다.
냇 킹 콜이 그랬듯, 그녀는 한 음의 길이와 침묵의 무게를 안다.
피아노는 그녀의 반주가 아니라, 또 하나의 목소리다.
멜다우의 건반이 ‘사유의 목소리’라면,
크럴의 건반은 ‘노래의 심장’이다.
그는 감정의 본질을 탐구하고,
그녀는 그 감정을 품위 있게 끌어안는다.
둘 다 절제 속에서 진심을 드러내며,
결국 음악을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로 만든다.
그래서 그들의 피아노를 듣고 나면,
소리를 들은 것이 아니라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 Recommended Listening
Brad Mehldau – Exit Music (for a Film) / After Bach II / The Folly of Desire (feat. Ian Bostridge)
Diana Krall – All for You / The Look of Love / I’ve Got You Under My Sk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