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책의 음악노트 (11) 숲의 노래

by 푸른책

- 음악은 오래된 감정을 조용히 깨워내는 일이 종종 있다.

오늘의 노트는, 폭신한 숲에서 들었던

숲의 노래에 대한 작은 기록이다.




날씨가 좋을 때면 숲에 올라가곤 했다.
그중에서도 땅이 부드러운, 폭신폭신한 숲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곳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발바닥이 흙을 누르는 순간마다
털신을 신은 듯 폭 하고 묻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아래는 흙이 아니라, 오래된 이끼와
누가 몰래 흘리고 간 구름 조각을 켜켜이 쌓아 만든 바닥 같았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아주 가벼운 숨결처럼 땅이 나를 되받아 올려 주었다.
마치 숲이
“괜찮아. 천천히 와도 돼.”
하고 조용히 말하는 것처럼.



바람도 그 숲에서는 힘을 내지 못했다.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며 휘파람을 부는 대신
누구의 손처럼 부드럽게 어깨를 스쳐갔다.
햇빛도 잔잔하게 가라앉아
내 그림자가 숲 바닥에 드리우면
그마저도 폭신하게 번져 보였다.



그 숲을 걷는 동안만은
어떤 마음도 단단해지지 않았다.
오래 굳어 있던 생각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밟히며 풀려나
저 멀리 떠오르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곳은 내 몸이 아니라,
내 마음이 먼저 눕는 자리였다.


- Recommended Listening

Isaac Stern – Rubinstein: Romance in E-Flat Major, Op.44 No.1

러시아 작곡가 안톤 루빈스타인의 서정적 소품.
부드러운 선율과 따뜻한 조성(E♭)은
마음속 깊이 고요한 숲을 꺼내는 힘이 있다.
Isaac Stern의 활은 이 곡을 마치 나무가 부르는 노래,
혹은 숲의 숨결처럼 들리게 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푸른책의 작은 시집 (9) 인사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