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책의 음악노트 (14) 북구의 겨울 속으로

한겨울의 작은 방과 Tord Gustavsen의 음표들

by 푸른책

한겨울. 방 안은 아주 작은 세계처럼 고요하고, 기름난로의 열기가 공기 속에 둥근 원을 그리며 퍼진다. 주전자에서는 물이 조금씩 뜨겁게 숨을 뿜고, 고양이는 그 앞을 당연한 듯 차지하고 반쯤 감은 눈으로 천장의 어둠을 바라본다.


밖은 유리창을 두드리는 찬바람이지만, 실내는 난로의 냄새, 금속 주전자의 미세한 떨림, 잠결과 깨어 있음 사이에서 얼쩡거리는 고양이의 숨소리로 가득하다. 시간은 거의 멈춰 있는 것처럼 느려지고 손끝은 따뜻한데 마음은 오히려 더 맑아진다.


책상 위에서는 아직 가지 못한 한가람 미술관의 전시 목록이 조용히 펼쳐져 있다. 사진 속 작품들은 모두 정지된 채지만, 미리 떠올려보면 내일의 걸음과 시선이 이미 그 공간 안을 천천히 지나가고 있다. 이런 밤의 준비는 외출을 ‘예상’하는 시간이 아니라 작은 여행을 먼저 마음으로 다녀오는 듯한 의식 같은 것.


바로 이런 순간에 Tord Gustavsen Trio – The Ground를 틀면 방 안의 공기 밀도가 바뀐다.


피아노는 난로의 열기와 부딪히지 않고, 그 위에 아주 얇게, 거의 투명한 레이어처럼 겹쳐진다. 드럼의 브러시가 고양이의 졸음 같은 리듬을 만들고, 베이스는 주전자 안에서 울리는 물소리처럼 한 음씩 깊게 내려앉는다.


The Ground는 걷는 음악이면서 동시에 머물기 위한 음악이다. 내일의 길을 떠올리며 오늘의 방 안에 충분히 머무를 수 있게 하는, 조용하지만 방향성 있는 기류가 있다.


난로 앞에서 고양이가 몸을 말아 잠에 드는 동안, 책상 위의 전시 목록이 한 장씩 넘어가고, 피아노의 선율이 천천히 방을 순환한다. 이런 시간에는 음악이 풍경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풍경이 음악을 품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미 내일의 미술관을 걷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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