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책의 에세이 (1) 퇴사의 풍경

사람은 결국 관계로 남는다

by 푸른책

퇴사를 준비하며 오랜 시간을 돌아보던 어느 날,
마음속에서 계속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희한하게도 가장 화려했던 순간이나 큰 성취들은 잘 기억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조용한 두 장면이 오래 남았다.
기대했지만 오지 않았던 누군가의 빈자리,
그리고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끝내 전하지 못한 말들.



그 두 장면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마음 한구석에 작은 파문처럼 남아 있다.
왜 그때는 아무렇지 않게 넘기지 못했을까.
아마도 그 순간들이 내게 조용히 묻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많은 역할을 맡는다.
책임을 다해야 하는 순간도 있고, 선택을 해야 하는 자리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결국 오래 남는 것은
얼마나 바빴는지, 어떤 일정을 소화했는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마음을 어떻게 대했는가 하는 작은 선택들이다.



어떤 사람은 신념을 말한다.
믿음과 사랑을 이야기하고, 정의를 이야기하지만
정작 가까이에 있는 사람의 기쁨과 슬픔에는 둔감하기도 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스스로에게 다시 묻는다.
“나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나는 누군가의 시간을, 마음을, 존재를 어떻게 대해왔는가.”



신앙이든 가치관이든, 결국 그것이 드러나는 자리는
큰 무대가 아니라 아주 사소한 순간들인 것 같다.
말로는 누구나 따뜻할 수 있지만
진짜 따뜻함은 ‘잠깐 내 시간을 내어주는 일’ 속에서 드러난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누군가의 마음을 살피는 일.
그 모든 것이 삶의 무게를 가볍게 하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힘이다.



어떤 공동체는 위로를 주겠다고 말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잘 꾸며진 말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실제로 들어줄 수 있는
단단한 공감과 성찰일 때가 많다.
아무리 큰 소리로 믿음을 외쳐도
그 믿음이 사람을 향하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가벼운 울림에 머물 뿐이다.



퇴직을 앞두고 나는 다시 생각한다.
삶은 결국 관계로 기억된다는 것.
누구와 어떻게 웃었는지,
어떤 말을 건넸는지,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나는 조용히 다짐한다.
앞으로의 삶에서는
큰 성공이나 화려한 명분보다
단 한 사람의 마음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 작은 선택들이 결국
내가 남기는 세계가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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