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시카고, 윈디 시티

3부 새로운 바람이 불던 곳, 이름을 갖게 된 목소리

by 푸른책


재즈는 음악만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도시는 늘 음악보다 먼저 말을 걸었다.
어떤 소리가 필요한지,
그 소리가 어디까지 허락되는지,
그리고 누가 책임질 것인지를.



뉴올리언스가 재즈를 태어나게 했다면,
재즈에게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묻는 도시는
시카고였다.



시카고는 지나가는 도시가 아니었다.
이곳은 도착의 도시였다.
강과 철도가 만나는 자리,
사람들이 흘러들어와 다시 떠나지 않는 곳.
남부에서 올라온 노동자와 이주자,
그리고 음악가들이 이곳에 쌓였다.



이 도시는 축제보다 일상에 익숙했다.
퍼레이드보다 공장 사이렌에,
행진보다 근무표에 맞춰 움직였다.
밤은 흥분의 연장이 아니라
하루를 견디고 난 뒤의 정지였다.



그래서 이곳의 음악은
걷게 만들 필요가 없었다.
대신 앉아서 버틸 수 있어야 했다.



시카고의 밤은 실내였다.
문이 닫히고, 소리가 오래 머물며,
사람들은 한자리에 앉아 시간을 맡겼다.
이 조건에서 음악은 달라진다.
모두가 동시에 말할 이유가 줄어들고,
누군가는 조금 더 오래 말해도 되는 시간이 생긴다.



재즈가 멈춘 순간이다.



멈춘 음악은 질서를 요구한다.
질서는 목표가 아니라 조건이다.
다음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바닥.



시카고가 ‘윈디 시티’로 불린 이유는
기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 도시는 말이 많았고,
자기를 설명해야 살아남았으며,
목소리를 키워야 존재를 증명할 수 있었다.
정치도 산업도 문화도
모두 분명한 발화를 요구받았다.



속삭임은 쉽게 흩어졌다.
대신 또렷한 말만 남았다.
음악 역시 그 조건을 피할 수 없었다.



이 도시에서 재즈는
분명해져야 했다.



이 분명함은
고전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중심이 생기고, 순서가 정해지며,
형식이 음악을 지탱한다.
그러나 닮음은 표면에 가깝다.



고전주의가 질서를 향해 나아갔다면,
시카고의 재즈는 질서를 필요로 하게 된 음악이었다.
도착지가 아니라 통과 의례.



이 조건을 감당하기 위해
재즈는 사람을 바꾼다.
집단의 균형을 유지하던 방식에서,
한 사람이 시간을 책임지는 방식으로.



그 전환의 중심에는
기다림을 설계한 사람이 있었다.
킹 올리버.



그의 밴드는 여전히 집단의 음악이었다.
그러나 그 안에는
특정한 목소리가 앞으로 나올 수 있는
작은 틈이 있었다.
솔로는 갑자기 태어나지 않는다.
누군가가 기다려줄 때만 가능해진다.



그 틈으로 들어온 사람이 있다.
루이 암스트롱.



그를 영웅으로 부르기 전에
조건을 먼저 봐야 한다.
암스트롱은 앞으로 나와도
음악을 무너뜨리지 않았다.
혼자가 되어도 시간을 책임졌다.
실수와 망설임까지 포함해
말을 끝까지 가져갔다.



이건 재능의 승리가 아니라
시대의 준비였다.



시카고의 실내는
한 사람에게 시간을 맡길 수 있었다.
연주는 외침이 아니라 이야기로 이어졌고,
청중은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기서 솔로는
기교가 아니라 책임이 된다.
누군가는 말을 시작했고,
끝까지 마쳐야 했다.
그 순간부터 재즈는
익명의 소리를 벗는다.



이 변화와 나란히
또 다른 목소리가 있다.
시드니 베셰.



그의 소리는 구조보다 발화에 가까웠다.
정리되기보다 튀어나왔고,
계획되기보다 말처럼 흘렀다.
베셰의 존재는
재즈가 이미 개인의 감정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전환을
모두가 환영한 것은 아니었다.
젤리 롤 모턴은
끝까지 구조를 붙잡았다.



그에게 재즈는
질서를 잃지 않는 음악이었다.
집단의 균형 위에서만
의미를 갖는 소리.
그는 틀리지 않았다.
다만 시대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시카고는 이렇게
여러 시간대의 음악이 겹친 도시였다.
집단의 질서가 남아 있었고,
개인의 목소리가 앞으로 나왔으며,
둘 사이의 긴장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이 긴장이 재즈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음악가들이 시카고로 몰려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곳에는 일자리가 있었고,
정기적인 무대가 있었으며,
음악이 공동체의 일부를 넘어
직업이 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져 있었다.



직업이 된 음악은
반드시 이름을 요구한다.



그래서 재즈는 이 도시에서
처음으로
이름을 가진 목소리를 갖는다.
누가 연주했는지가 중요해지고,
그 이름이 기록되며,
다시 듣고 싶어지는 음악이 된다.



그러나 이 명확함은
재즈를 편안하게만 만들지 않는다.
모두가 동시에 말하던 음악이 물러난 자리에
새로운 질문이 생긴다.



목소리의 한계는 어디까지인가.



시카고는
재즈가 고전주의가 되려던 도시가 아니다.
이곳은 재즈가
고전주의적 조건을 통과해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었던 도시다.



질서를 배웠기에
다시 흔들릴 수 있었고,
중심을 세웠기에
그 중심을 시험할 수 있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시험이 어디까지 도달하는지를 따라간다.
뉴욕에서 재즈는 구조를 확장하고,
속도를 올리며,
다시 한 번 한계에 도전한다.



재즈는 이제 말하는 법을 배웠다.
곧, 그 말이
어디까지 닿을 수 있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 〈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4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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