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확장되는 말, 정리되는 소리
뉴욕의 밤, 소리는 혼자가 될 수 없었다. (Flickr The Commons / No known copyright restrictions)
재즈는 말하는 법을 배웠다.
시카고에서 그 말은 이름을 얻었고,
그 이름은 곧
더 넓은 자리를 요구했다.
그 자리는
뉴욕이었다.
뉴욕은
머무르라고 말하지 않는다.
이 도시는 늘
더 많이, 더 빨리, 더 크게를 요구한다.
사람이 많고,
소리가 겹치고,
시간은 잘게 나뉜다.
하루는 짧고,
밤은 연달아 이어진다.
이곳에서 음악은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커지지 않으면
들리지 않는다.
시카고의 재즈는
한 사람이 시간을 책임지는 음악이었다.
앞으로 나와도 무너지지 않는 목소리,
이름을 부를 수 있는 소리.
그러나 뉴욕에 도착한 순간
그 말은 혼자가 되기엔
조금 커져 있었다.
여기서는
말이 이어지고,
소리가 건네지며,
자연스럽게
자리가 나뉜다.
이건 규칙이 아니라
도시의 습관에 가깝다.
뉴욕에는
하나의 중심이 없다.
대신
여러 개의 중심이
서로를 밀며 공존한다.
극장과 공연장,
신문과 음반,
거리와 실내가
동시에 말을 건다.
이 도시에서 음악은
자기 자신만을 위해
존재하기 어렵다.
누군가에게 닿아야 하고,
여럿에게 동시에 들려야 한다.
그래서 재즈는
여기서 다시 정리된다.
정리는
자유의 반대가 아니다.
자유가 오래 남기 위한
방식에 가깝다.
소리는
서로를 덮지 않도록
조금씩 물러나고,
말은
자리를 나눠 갖는다.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는
할렘이 있다.
할렘은
음악이
공동체 안에서만 머물지 않게 된
첫 장소였다.
여기서 재즈는
속삭임이 아니라
발화가 된다.
자기들끼리의 신호가 아니라
사회 전체를 향한 말.
그래서 이곳의 음악은
혼자만의 언어로 남을 수 없다.
뉴욕의 밤은
밝고, 길고, 붐볐다.
무대는 커졌고,
청중은 많아졌으며,
음악은
사람을 넘겨 받아야 했다.
여기서 재즈는
처음으로
조직을 필요로 한다.
그 조직을
조심스럽게 만들어간 사람이
플레처 헨더슨이다.
그의 음악은
유난히 차분하다.
각자의 소리는 살아 있지만,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
그는
자유를 줄이려 하지 않았다.
대신
자유가 오래 버틸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했다.
헨더슨의 음악에서
재즈는
도시의 크기를 배운다.
한 사람의 말이
여러 사람에게 닿기 위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그는 몸으로 알고 있었다.
이 준비는
완성을 위한 것이 아니라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이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인물이 있다.
듀크 엘링턴.
그에게 재즈는
악기의 모음이 아니라
사람의 모음이었다.
누가 어떤 소리를 내는지,
그 소리가 어디까지 나아가는지.
그는
연주자를 배치했다.
엘링턴의 음악에서는
구조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즉흥은
틀 안에서 숨을 쉬고,
그 틀은
사람의 성격에 맞춰 움직인다.
이 지점에서 재즈는
처음으로
도시처럼 운영되는 음악이 된다.
뉴욕의 재즈는
안정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이 안정은
도착이 아니다.
이것은
다음 질문을 위한
잠시의 균형에 가깝다.
자유는
얼마나 큰 자리에서
유지될 수 있는가.
한 사람의 말이
여러 사람의 합의가 될 때,
즉흥은
어디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가.
뉴욕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는다.
전쟁 이후의 세계,
질서와 관리가 일상이던 시대.
자유는 허락되었지만,
끝까지 방치되지는 않았다.
뉴욕의 재즈가
정리되고, 배치되고,
조직되는 이유는
이 공기와 닿아 있다.
그래서 뉴욕은
재즈를 바꾼 도시가 아니다.
재즈가
바뀌지 않으면
머물 수 없게 만든 도시다.
재즈는
이곳에서
말을 키웠고,
그 말을
여럿의 자리에 올려두는 법을 배웠다.
이제 남은 것은
다음 시험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정리가
어디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하는지를 따라간다.
질서는 점점 빽빽해지고,
속도는 더 빨라지며,
말은 다시
숨이 가빠진다.
재즈는 곧
다른 방식의 말을
찾게 된다.
— 〈새로 쓰는 재즈 히스토리〉 5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