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마음짓기 11화

나를 다스리는 통제감(統制感)

by 한꽂쌤


통제감(統制感, sense of control)은 자신과 상황, 세상을 대함에 있어서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다는 느낌을 말한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다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통제감이 상실된 경우이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못하는 사람인지, 무엇을 하고 싶은 사람인지에 대한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 사람도 통제감이 없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향한 주장을 잘하지 못하고 마음속에는 생각하는 바가 있는데 겉으로는 그 생각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하는 사람의 경우도 통제감을 갖지 못한 사람이다.


통제감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self)에 대한 느낌과 생각에 있어서 어느 정도 인식할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있다. 목표하는 바가 있다면 그 목표를 이뤄낼 자신이 있으며 자신이 가진 소신대로 선택할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으며 자신감 있는 행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어떠한 결정을 하기가 어렵게 된다. 왜냐면 내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목표 자체가 불안정하고, 불안정한 목표이다 보니 그 목표를 향해 가려는 발걸음 자체가 불안정할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상관없이 잘 파악하고 있고 자신의 성향을 잘 이해하며 받아들이고 조율하는 사람들은 통제감을 갖고 주도적인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만연한 사람은 부정적인 자기 개념이 형성되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자신이 없고 의기소침해질 수밖에 없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스스로 낮게 내리며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심한 열등감을 갖게 된다.


사람들은 행복을 꿈꾼다.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통제감을 갖는 것이다. 통제감은 책임감과도 연결되는데 행복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는 자만이 행복해질 수 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너무 일이 많고 밥 먹을 시간조차 없을 때 '누가 나를 대신해서 밥 좀 먹어줬으면', 운동을 해서 체력을 길러야 하는데 하기 싫을 때 '누가 나를 대신해서 운동 좀 하고 왔으면', 시험공부를 해야 하는 데 하기 싫을 때 '똑똑한 누군가가 내 대신 시험을 봐줬으면.....'

이러한 바람이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 내 대신 무언가를 해주기를 바랄 때가 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내가 원하는 바를 대신 이뤄줄 수 없다. 오롯이 나만이 내가 가야 할 길을 찾아야 하고, 찾은 길을 성실히 가야 할 주인이다. 그래서 인생은 참으로 공평하다. 누군가 대신해줄 사람이 있어서 행복을 소유한다면 얼마나 억울할까 싶다. 혼자서 이루지 못하는 일에 있어서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도움받은 것에 대한 책임은 내가 감당해야 한다. 이렇듯 그 무엇도 내 삶을 책임지는 통제권이 없이는 이뤄지는 법이 없다.


요즘 시대는 누가 더 많이 상상의 세계를 즐기는가에 흥분되어 있다. 상상의 세계는 현실세계가 결코 주지 못하는 즐거움과 행복감을 잠깐 동안은 줄 수 있을지 모른다. 상상과 몽상으로 이룰 수 있는 욕구는 그 세계뿐이다. 어차피 그 꿈은 깨어나게 되어 있고 현실 속의 나로 되돌아와야 한다.


통제감을 갖지 못한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한다.


' 그 사람이 나를 열 받게 했어요'

'그 사람이 먼저 시비를 걸었어요'

'그 사람이 먼저 기분 나쁘게 말했어요'

'그 사람만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제 성격이 이렇지 않아요'


다른 사람 때문에 내 삶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자신에 대한 통제감의 권리를 타인에게 이양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이 내 삶을 책임져 주고, 내 행복을 책임져 줄 권리가 있음을 인정하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내 삶이 온전해질 수 없다고 여기는 삶이 과연 가치로운 삶일까.


'그때 그 일이 터지지만 않았어도 충분히 제 일을 끝냈을 거예요'

'그때 그 사람이 내게 일을 떠맡기지만 않았어요 내가 마감기한을 넘기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 사람이 자꾸 분위기를 조장해서 집중을 할 수가 없어요'


외부 환경으로 인해 자신이 목표하는 바가 이뤄지지 못했다고 투덜거리는 사람들의 예이다. 누구 때문에 못했고, 무엇 때문에 할 수 없었다는 말로 자신이 조절할 수 있었던 시간들을 포기하고 있다. 살다 보면 주변에는 늘 예기치 못한 복병이 있게 마련이다. 복병까지 통제를 할 수는 없지만 내 안에 있는 복병들은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용기 있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거절해야 하는 순간에는 거절해도 좋다. 양해를 구해야 할 때에는 양해를 구하고 단절해야 할 때는 가감 없이 잘라내야 할 때도 있다는 말이다. 주변 사람, 주변 환경을 탓하다가는 자신의 삶은 자신도 모르게 뒷전이 되고 만다.


통제감에 대한 통솔권을 자신이 쥐고 있어야 한다. 자신에게 직분을 주고 권리를 부여했다면 그 권한을 잘 사용해야 한다. 통제감에 대해 지나치게 부담감을 가지는 사람이 있다. '너무 이기적인 건 아닐까?' '이렇게까지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말로 자신의 나약한 마음을 숨기려 한다. 마음 깊숙이에 자리 잡은 불안이 통제권을 내어놓게 만드는 원인이다. 통제권을 가지고 책임감의 주체가 되어 산다는 것은 오히려 불안을 잠재우는 역할을 한다. 나 아닌 타인, 외부환경은 예측이 불가하기 때문에 더 많은 불안요소가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통제감은 언제부터 만들어지는 것일까


어릴 때부터 지나치게 과보호를 받은 경우 아이는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해 볼 기회를 상실한다. 자신이 할 일을 하면서 실수도 하고 실패를 경험하면서 자신이 가장 잘해 낼 수 있는 방향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상실된 경우이다. 다른 이유로는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비난이나 부정적인 반응을 받으면서 살아온 경우이다. 무엇을 할 때마다 좋지 않은 피드백을 듣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소심해지고 눈치 보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통제감 키우기가 어렵다. 다른 예를 들어보면, 통제감을 일시적으로 상실한 경우가 있다. 현재 자신이 하려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의도치 않은 어떤 좋지 않은 상황들로 인해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방법을 찾지 못했을 때가 안타까운 경우이다. 이럴 때 개인은 좌절하거나 무기력감에 휩싸여 어떤 노력도 하기 싫은 상태가 된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심한 우울감에 잠식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통제감을 얻는 환경도 중요하지만 통제감을 유지시키는 것 또한 중요하다. 현재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할 수 있는 양만큼만 덜어내어 시도해도 충분하다. 지나치게 높은 목표를 잡게 되면 현실적으로 목표를 이루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결국 좌절하거나 중도에 포기하게 된다. 심한 경우, 시도조차 하지 못한 채 망연자실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그러니 지나친 욕심보다는 의연한 자세를 통해 작은 목표를 세우고 이뤄가는 자기 속도가 필요하다. 우리 모두는 자신에게 맞는 속도가 있게 마련이다.


사람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고 관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결국 각자의 삶으로 돌아온다. 내가 속한 가족, 친구, 배우자, 자녀, 동료 등 다양한 관계로 얽혀 있지만 결국 한 사람의 삶을 책임질 사람은 바로 자신이다. 타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법은 좋지만 그 결과에 대한 부분까지 타인에게 요구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누구도 다른 사람의 삶을 책임져줄 힘과 권리는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가끔 '누구처럼 되고 싶다' '누구 정도는 되어야 자신감 있게 나를 선보일 수 있겠다'라는 말을 한다. 그러나 누구처럼 된다고 해서 의미 있는 삶이라고 그 누가 증명해줄 수 있겠는가. 이 세상은 각자의 고유성이 있고, 그 고유성이 발현되기에 아름다운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색깔을 입고 다른 사람의 향기를 빌어온다면 무색무취의 사람이 된다. 이런 사람은 그 누구에게든 대체될 수밖에 없기에 잊힐 사람이 될 뿐이다.


통제감을 얻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다른 사람 눈치를 무시해볼 용기, 다른 사람의 인정을 무시할 용기, 긍정적인 결과만을 기대하는 자신을 무시할 용기이다. 두렵지만 해보는 것이다. 누구나 두려움이 있지만 해보는 것이다. 누구나 갈등을 싫어하고, 실패를 싫어한다. 그러나 해보는 것이다. 일단 시도하다 보면 실패 경험과 성공경험이 엎치락뒤치락 쌓이면서 통제감이 자란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통제감은 다른 사람이 내게 줄 수 없다. 통제 감은 자신밖에 만들 수 없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부여하리라는 기대는 방해물이 될 뿐이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외부요인들까지 책임질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것들은 스스로 감당해야 한다. 자신이 가진 통제감을 통해 얼마든지 자신의 삶을 만족하며 살 수 있다.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의 나를 빼내야 한다. 고유한 자기를 지켜내는 삶을 살고 싶다면 통제감을 가지자. 통제감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대한 책임감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 선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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