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든지 예민할 수 있어'
예민하다는 말의 어감은 부정적인 요소가 많다. '저 사람은 왜 이리 예민하게 굴어' '별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굴지 마'라는 말을 하며 예민하지 말기를 권유한다. 진정한 예민함이 뭘까? 하는 궁금함에 사전을 찾아보니 '무엇인가를 느끼는 능력이나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르고 뛰어나다.'로 해석되는 듯하다. 이 정도의 풀이면 절대 부정적이지 않은데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용어에서는 부정적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내가 뭘 예민하다고 그래?
그럴만하니까 그러지
상황도 모르면서 함부로 말하네
내 마음을 제대로 알아봐 주지 못한다면 서운하고 무시당한 느낌이 들 수 있다. 이해를 받고 안 받고 여부를 떠나 예민하게 굴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다. 피부질환으로 인해 피부가 벗겨지는 증상이 있는 있는 사람은 피부의 속살이 드러나기 때문에 피부가 예민해진다. 예민한 부위를 종이를 스치기만 해도 아픔을 느끼게 되는데 이런 경우 '피부가 예민해졌구나'라는 말이 사용된다.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피부질환이 있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러운 예민함이다. 즉, 예민할만한 부위니까 예민한 것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다양한 부분에서 예민함을 드러낸다. 후각이 예민한 사람, 청각이 예민한 사람, 분위기에 예민한 사람이 있다. 마음의 예민함은 무엇일까? 마음의 고통을 더 잘 느끼고, 다른 사람의 말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주위 상황에 눈치를 보는 등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보다 다른 사람이나 주변 상황에 더 에너지를 쓰는 경우다. 이렇듯 사람마다 마음의 예민한 부위가 다르다. 어릴 적부터 술에 취해 가정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사람은 '술'에 대한 예민함이 있다. 술병을 보면 화가 난다든지, 술 마시는 사람은 절대 만나지 않는다든지, 술자리는 절대 사절하고 술 취한 사람을 보면 피하고 싶을 것이다. 술에 대한 예민함으로 인해 대인관계가 원활하지 않게 되고 관계를 맺는 사람의 폭이 줄어든다. 이 세상의 사람들을 술 마시는 자와 안 마시는 자로 나누기 때문이다. 예민한 부위가 있다는 것은 상처받는 부위가 다른 사람과는 달라서 공감을 얻어내기가 어렵기 때문에 자신의 속마음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다.
아무도 내가 이런 생각하고 있는 걸 모를 거예요
대화중에 이런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 쌓인 이유 중에도 '너만 별나'라는 반응을 얻게 될까 봐, 아니면 이미 그러한 반응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경우다. 사람마다 쉽게 아픔이 느껴지고 고통스러운 부위는 제각기 다를 수 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을 겪게 된다. 무례한 사람들로부터 자존심을 습격당하고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청천벽력 같은 배신감을 경험한다. 기대만큼 일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는 다반사여서 실망감으로 가득한 마음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경우도 생기게 마련이다. 이러한 경험은 비단 누구 한 사람에게만 집중적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정체성이 제대로 확립이 되지 않거나 가치관이 제대로 서지 않은 상태일 때 더 강한 진동으로 느껴질 수 있다. 삶이 꺾여버린 느낌이 들고 자포자기하고 싶은 순간들이 늘어나 세상을 원망하게 되는 경우이다. 그러나 한편 어떤 사람은 이런 순간일지라도 다른 반응을 보인다. 휘청임은 겪지만 다시 제 페이스를 찾는다. 처음에는 똑같이 예민하게 반응이 오지만 그 시간은 길지 않다.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지'라는 생각으로 다시 툭툭 털고 제 갈길을 간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향한 신뢰가 있고 자신의 일을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있다. 이런 차이를 '저 사람은 자존감이 높구나'라고 표현하는 것 같다.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일도 내 일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기분이 그저 나빴을 뿐인데 '나 때문인가?'라는 생각을 하며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자신이 잘못해서 일을 그르친 게 아닌데 '내가 잘못해서 이런 결과가 나왔어'라고 착각하며 산다. 이렇듯 예민한 사람들은 나와 타인, 세상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아이가 학교 적응을 잘 못하거나 또래관계가 원만하지 않을 때 '내가 잘못 키웠구나'라며 지나치게 자기 비난을 하는 부모가 있다. 또는 반대로 '부모님이 나를 이렇게밖에 못해줘서 내 삶이 이모양이지'라며 지나치게 부모탓을 하는 경우도 있다. 절대 연결성이 없지는 않지만 전후 사정 무시한 채 모든 것을 자신 위주로, 타인 위주로 해석할 필요는 없다.
자녀가 엄마한테 반항한다는 이유로 '엄마한테 이렇게 말하면 버릇없어'라며 다짜고짜 호통을 치게 되면 아이는 죄책감을 느낀다. 오히려 더 반발심을 키우는 경우도 있지만 그 반발심 또한 죄책감을 밑에 숨겨두고 드러나는 행위일 때가 많다. 자녀 입장에서는 부모에게 버릇없이 굴고 반항하는 것이 달가울 리 있겠는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내가 져야 할 책임과 타인이 져야 할 책임이 불분명할 때다. 다른 사람이 져야 할 부분을 지나치게 자신이 짊어지는 경우 모든 것이 내 책임인양 자책하게 된다. 이러한 습관은 처음엔 자신의 잘못으로 억누르며 살다가 지속적으로 누적되다 보면 적대감으로 번질 수 있다.
앞서 소개한 사례처럼, 다른 사람이라면 그저 술 먹는 자리일 수 있는데 술에 예민한 사람은 과거의 폭력성과 연결된 경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에 술은 예민한 자극이 된다. '사람들은 뭐가 좋다고 술을 마시지?'라며 술 마시는 사람들을 가까이하지 않으려 하고 지나친 음주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음주행위 자체를 폄하하게 된다. 다른 사람은 자연스러운 일상일 뿐인데 술에 예민한 사람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지나치게 예민함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표정과 말에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다른 사람들이 내 얘기를 하지는 않는지, 나를 나쁘게 보지는 않는지에 대해 살핀다. 전혀 자신과 상관없는 정보를 부여잡고 자신을 향한 일인 양 곱씹어보다가 지친다. 자신과 상관없는 일은 흘려보내야 하는데 내 일로 간주하며 붙잡아두며 힘을 쓰기 때문이다.
작은 단서에도 크게 반응하며 나와 상관없는 일인데도 내 일인 양 고민하는 사람들은 주위의 지나친 자극에 날이 서 있다. 바로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가 된다. 당사자도 예민함을 줄이고 싶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예민함을 내려놓는다는 게 쉽지는 않지만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해 볼 만한 방법들이 있다. 우선은 자기 스스로가 자신이 예민한 사람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너는 왜 그렇게 예민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좋을 리 없다. 그러나 그러할지라도 의지적으로 '그래 나 예민한 부분이 있어'라고 인정해주어야 한다. 자신을 좀 더 제대로 바라보고 솔직해지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예민함에 대해 얘기를 나누는 방법이다. 친구 관계라면 ' ○○아, 내가 이 부분은 좀 예민함이 있어'라고 미리 알려주면 불필요한 오해를 줄일 수 있다. 또한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기 때문에 오히려 예민하지 않게 된다. 이러한 표현방법은 예민한 사람들이 불필요하게 끌어안고 있었던 짐을 하나씩 내려놓는 과정이 된다. 예민하다는 반응을 자주 듣게 되는 경우라면 자신의 언짢은 마음을 오랫동안 품고 있지 말라고 권하고 싶다. 예민한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불편감이 빠르게 감지된다. 이러한 불편감이 쌓이면 한꺼번에 폭발하거나 폭발시키지 못하는 경우 관계를 끊어내 버린다. 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맺고 있는 것보다는 낫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기 때문이다. 그만큼 힘들다는 반증이다. 이렇듯 극단적인 결말로 귀결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속상하고 불편한 마음이 든다면 분노 감정이 쌓이기 전에 가볍게 표현해보는 것도 좋다. 마음의 건강은 얼마나 자신의 마음을 자유롭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자신에게 찾아온 감정은 나쁜 게 아니다.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러니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그대로 바라봐주어야 한다.
'네가 그런 마음이구나'
'그럴 수 있지'
'그럴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들었다는 걸 표현해도 돼'
'표현한다는 건 나쁜 게 아니야. 그걸 망치는 사람이 나쁜 거지'
담아두고 있다가 표현하는 것은 폭발이 되기 때문에 관계를 어긋나게 하지만 적절한 순간의 표현은 오히려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는 경험이 되어 관계를 돈독하게 한다. '내 상황이 이렇단다' '내가 이런 마음이 들었단다'는 정보를 상대방에게 알려주는 것도 각자 자신의 몫이다. 그 누구도 당신을 대신해서 당신을 표현해 줄 수 없다. 소소한 표현일지라도 시도해보자. 예민함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