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억압
좋은 걸까? 싫은 걸까?를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어떠한 상황이 닥치면 스스로의 감정에 도달하기 전에 강요받는 감정이 먼저 도달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해야 해서 하는 일이 되고 만다. 싫어서 하기 싫은 게 아니라 싫어해야 해서 하지 않게 된다. '좋구나'를 느끼기 전에 '과연 좋을지'가 걱정이 된다. 이 무슨 말장난 같은 말인가.
'자연(自然)스럽다'라는 의미가 무엇이지 생각해보자. '억지로 꾸미지 않아 어색한 데가 없다.' '일이나 현상에 있어서 힘들이거나 애쓰지 않고 저절로 그렇게 되는 상태이다.'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부자연스럽다는 건 뭔가 인위적인 작업이고 힘이 들어가고 애쓰는 행위가 된다. 감정을 억압하다 보면 이러한 부자연스러움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되는 현상이 빚어진다.
어린아이들은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런 날 저런 날을 경험한다. 이럴 때 우리는 다양한 감정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감정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런데 이러한 느낌들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바로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그러하다. 기쁘고 행복한 느낌은 환영하지만 우울하고 화나는 감정은 느끼고 싶지 않아 한다. 그런 느낌이 들 때면 '내가 문제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 억압은 오히려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감정은 순간 떠오르다가 순간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자신에게 찾아온 감정에 놀랄 필요가 없다. 감정이 느껴지면 그 감정을 바라보고 흘러가게 놓아두는 것일 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감정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감정이 내게 득이 되느냐 해가 되느냐를 판가름할 것이다.
감정은 단순하지 않다. 단순하지 않기에 더 소중하다. 소중함을 간과한다 보면 '자기 비하' '자기혐오'가 나타날 수 있다. 어떤 상황에 있어서 일어나는 수치심, 죄책감, 열등감, 화 등은 언제라도 찾아오고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다. 그런데 이러한 감정이 부정적 감정이라 하여 구석에 넣어두고 드러나지 않게 단속을 하려 한다. 감정은 복합적이고 자연스럽게 느끼는 정서임을 인정해주자.
아기는 생후 6~7개월이 되면 낯선 사람들과의 접촉에 불안해한다. 이러한 현상을 '낯가림'이라고 하는데 이러한 낯가림은 엄마 이외의 다른 세상에 대해 갖는 두려움이나 공포이다. 아기가 엄마와 낯선 사람을 구분하고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긴장하고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낯가림은 아기의 정상적인 발달단계로 해석되며 엄마와의 애착관계를 잘 형성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어린아이는 사소한 것에 재미를 느끼고 호기심을 갖게 되는데 부모가 이를 차단하고 통제한다면 아이는 '자연스러운 감정'느끼기를 멈춘다. 자신이 느꼈던 자연스러움을 억압하고 '이럴 때 느껴야 할 감정'을 만드는 작업을 만들기 시작한다. 많은 사람들은 '이 때는 이런 감정이 제격이야'라며 감정까지 규격화하려 한다. 그 틀에서 벗어나는 모습을 보일 때 참지 못한다. 이러한 반응을 당하는 사람이나, 이러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 모두 일그러진 '자아상'을 선택하게 되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자기주장이 강한 A는 소심한 B가 하려는 일을 간섭하려 한다. B가 하려는 일이 분명히 '재미없는 일'로 보였기 때문이다. A는 B에게 '그렇게 따분한 일을 뭣하려 하려는 거야'라며 B의 행동을 저지한다. A의 말을 들은 B는 자신이 하려는 일을 시도도 하기 전에 '재미없다'라는 느낌이 각인이 된다. 이러한 각인을 통해 재미있는 일일 수도 있었던 일이 재미없어야 하는 일로 바뀌게 되어 A가 원하는 다른 일을 찾는데 관심을 돌릴 것이다. B가 느낀 감정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감정이다. B는 당연히 누려야 할 재미없음을 뒤로한 채 '재미있어야 할 일'을 찾아 열심히 노력해야만 할 것이다. 있는 그대로의 감정을 허락받지 못한 사람은 불행하다. 누군가 바라는 감정만을 골라 느끼려 하기 때문이다.
통제하고 지배하려는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을 억누르려 한다. 지배를 당한 사람은 자신의 감정을 통제당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감정 대신 인정받을 만한 감정을 담는다.
'이거 괜찮지 않아요? '
'이거 재밌지 않아요?'
라며 타인의 인정을 받으려 한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마저 타인의 허락을 받는 삶이 자연스러울 리 없다.
감정은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감정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찾아오는 자연스러운 부분이다. 사람이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감정을 느껴야 하는데 억압하거나 회피한다면 오히려 힘을 과하게 키우는 역효과가 난다. 더욱 강해진 감정은 흘러가지 못하고 엉겨 붙어서 다른 감정마저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 감정은 흐름을 갖고 있다. 내게 찾아온 자연스러운 감정이 이 또한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놓아두자.